나누고 싶은 이야기
지난 해 포천시 고모리에 위치한 고모저수지 변에 있는 대지에 계획을 한 안이다.
이 안과 관련하여 이 안을 접하게 된 배경과 진행과정을 아래와 같이 술회코자 한다.
수목원가는길
최근 경기도에서 경기북부지역에 를 조성한다는 계획에 포천이 양주시를 뒤로하고 선정이 되었다. 포천시 고모리지역에 도비 3,000억 민자 4,000억 총 7,000억이 투입되는 포천시로서는 대박이 터졌다. 포천시와 지역의 국회의원 및 도의원의 노력이 빛을 발휘한 결실이다. 여기에 심사위원들에게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생각되는 부분이 이 지역의 많은 예술가들이 지난 2011년부터 다양한 문화활동으로 문화마을 만들기 운동을 펼쳐왔다는 점이다.
본인을 비롯한 많은 예술가들이 경기도 포천 광릉 국립수목원 일대의 광릉숲이 유네스코 생물권보전지역으로 지정된 것에 발맞추어 이 지역이 난개발 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지난 2011년부터 매년 9월에 <수목원가는길>이란 예술제를 추진해 왔다.
예술제 추진의 결정적인 계기는 고모저수지에 무려 27억이란 돈을 들여 음악분수를 설치한다는데에 반기를 들면서부터 였다. 지역경제를 살린다는 미명하에 일반분수도 아닌 음악분수에 막대한 예산을 쏟아 붓는다는 것은 조용한 전원이 장점인 이 지역 정서에도 맞지 않을뿐더러 전기요금을 비롯한 매년 억대에 가까운 유지관리비도 문제였다. 유지관리비 조성을 위해 노래방처럼 이용자가 돈을 넣으면 이용자의 기호에 맞는 곡들에 맞추어 분수가 춤을 추게하므로써 볼거리와 수익을 창출하겠다는 관계자의 설명은 이 조용한 저수지를 노천 노래방으로 만들겠다는 것으로 밖에 들리지 않았다. 더욱이 이 막대한 예산을 들여 만든 음악분수가 자연경관을 헤치는 것은 물론 이를 유지하기 위해 매년 억대의 시민의 혈세를 갉아 먹는 애물단지로 전락될 것이 뻔했기 때문이었다. 일부 지역주민들이 예술가들의 이러한 반대운동에 분노하는 등 지역주민들 간에도 찬반의 극한 대립양상까지 상황이 전개되었다.
그리하여 예술가들은 우리가 반대를 위한 반대를 하는 존재들이 되어서는 안되겠다는 생각을 하였다. 이미 분수를 위한 구조체를 거의 완성한 상태였기 때문에 음악분수의 기능이 아닌 일반분수로 사업을 축소하고 남은 예산으로 저수지 둘레길을 완성하는 것으로 지자체와 타협을 보았다.
또한 예술가들은 광릉숲과 저수지 등 우수한 자연환경을 배경으로 예술가들의 다양한 문화예술활동을 통하여 이 지역을 수도권 주민들이 즐겨찾는 문화마을을 만들어 지역의 품격을 높이고 다양한 문화상품 및 먹거리 볼거리로 지역경제를 활성화해 보자고 뜻을 모았다.
그래서 지난 2011년 다수의 예술가들과 지역의 리더 및 지역주민들이 머리를 맞대어 매년 예술제를 추진하기로 하였고 그 명칭을 <수목원가는길>로 명명하는 한편 매년 9월에 행사를 추진하기로 하였다. 방법은 지원예산이 전무한 관계로 예술가들이 자신의 스튜디오를 오픈하는 오픈스튜디오 행사와 전시, 그리고 뜻을 같이 하는 음악인들이 힘을 합쳤다.
행사 사진들
위의 사진들은 지난 4년간 매년 9월에 행해온 <수목원가는길> 행사의 간단한 사진들이다.
일본에서도 <수목원가는길> 홍보를
올 해 5회 째 맞이하고 있음에도 전체 예산의 70% 이상을 스스로 마련해야 하는 어려움을 겪고 있기는 하나 해를 갈수록 KBS, SBS, YTN 및 각종 언론에서 우리의 행사를 보도해 주어 이제는 <수목원가는길>이란 예술제가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져 있는 상황이다. 최근에는 일본에서도 아래와 같이 우리 행사를 소개하고 있다.
우리의 의지와 반하는 현상들
한편 예술가들은 이 지역을 관통하는 도로의 확장계획에 대하여 인도를 최대한 확장하여 걷고싶은 거리를 조성하자는 주장을 꾸준히 전개해 오는 등 문화마을 조성을 위한 노력을 지속적으로 펼쳐나가고 있다. 아울러 간판 정비와 같은 가로 정비와 무분별한 난개발 방지를 위한 제도적 장치의 필요성을 역설해 왔다.
예술가들의 피땀어린 노력으로 많은 사람들이 이 지역의 관광지로 이름이 높아가자 그동안 이 지역 개발을 눈여겨 보고 있던 지주들이 예술가들의 의지와 반하는 행동들을 급격히 보였다. 다름아닌 모텔들을 우후죽순 짓기 시작한 것이다. 옛날 장흥처럼 되어서는 안된다고 그렇게 역설하였건만 제도가 뒷받침이 안된 상황에서는 우리 예술가들의 순수한 열정은 죽쑤어 개주는 꼴밖에 안되었다. 하루가 멀다 않게 들려오는 소식이 모텔 몇개가 허가가 났다는 허탈한 소식들이었다.
건축주와의 만남과 진행 과정
그런 와중에 저수지 옆에 위치한 땅에 지주가 모텔을 짓는다는 얘기가 들려왔다.
이 부지는 오래 전에 이미 모텔허가가 났었는데 이제 우리의 예술활동으로 건물을 지어도 괜찮은 시기가 되어 착공을 한다는 소식이었다. 함께 문화운동을 전개하고 있는 같은 대학의 행정학과 교수의 주선으로 나는 건축주를 만날 수 있었다.
서울에 사는 나이 지긋한 여사장이 건축주였는데 나는 모텔보다는 가족단위의 가족호텔 또는 펜션을 건립하고 다양한 문화활동이 가능한 다목적 홀을 건립하면 모텔못지 않은 수익과 다양한 문화활동을 통한 많은 이용객을 유치할 수 있을 거라 설득하고 저수지와의 레벨차를 이용한 멋진 건물을 지을 수 있다고 설득하였다.
그리하여 아래와 같은 그림을 보여주었더니 건축주는 크게 흡족해 하며 나에게 설계변경을 의뢰하였다.
이후 수차례의 변경안이 만들어졌다.
헌데 포천시 조례에 숙박시설을 지을 경우 주변의 주택에서 30m 이격해야 되는 규정이 있어 대지를 모두 이용할 수가 없었다. 부득이 넓게 퍼져 있는 건축물은 최대한 폭을 좁혀 지을 수 밖에 없는 상태가 되었고 하나의 건물에 숙박시설과 문화공간을 함께 넣는 안을 마련키로 하였다.
30m 이격 조건과 비상계단의 추가확보가 추가적으로 이루어져야 하는 바람에 건물이 위로 갈수록 뒤로 set back하는 맛을 살릴 수가 없게 되었다. 최대의 객실수를 확보하려는 건축주의 요구사항에 다시 안은 변경할 수 밖에 없었다.
이후의 스케치는 연필로 밑그림을 그리고 그 위에 펜으로 정리하는 방법이 아닌 펜으로 기본 윤곽에서 마무리까지 다 완성을 하였다. 솔직히 귀찮기도 했고.
씁쓸한 이별
이후에도 몇차례 수정안을 스케치로 그려서 이야기를 나누었으나 건축주는 허가를 빨리 못낸다는 이유로 나와의 결별을 통보했다. 건축주는 내가 유도하는 가족호텔이 아닌 모텔에 대한 미련을 버릴 수 없었던 것 같다. 내가 숫하게 모텔이 되지 못하도록 객실에 간이 주방을 넣고 공간을 개방적이도록 유도하였으나 나중에 도면을 살펴보니 비좁고 욕실과 침대만 있는 영락없는 모텔로 바뀌어 있었다. 건물도 도심에 있는 여느 모텔과 같은 박스형으로.
적은 비용을 들이고 수익만 높이겠다는 사업주의 얇은 생각으로밖에 안느껴지는 순간이었다.
나의 이루어지지 않은 건축스케치의 첫 페이지를 최근에 있었던 씁쓸함으로 이렇게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