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린, 리가, 그단스크
북유럽의 발틱 3국의 에트토니아 수도 탈린(Tallinn)과 라트비아의 수도 리가(Riga), 그리고 이들 도시와 인접한 폴란드의 그단스크(Gduńsk) 세 도시를 소개해 본다.
에스토니아 수도 탈린(Tallin)
탈린은 북유럽 발트 3국(에스토니아, 라트비아, 리투아니아) 중 하나인 에스토니아의 수도이다. 에스토니아는 발트 3국 중 최북단에 위치해 있는 나라로 남쪽으로 라트비아, 동쪽에는 러시아, 북쪽에 발트해 건너 핀란드가 자리잡고 있다. 1918년 발트3국의 나머지 국가인 라트비아, 리투아니아와 함께 독일로부터 독립을 하였다. 그러나 이후 다시 소련에 지배를 받아오다 1991년 소련이 해체되면서 재독립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수도 탈린은 에스토니아어로 덴마크(Taani)의 도시(Linn)라는 뜻인데, 1918년 에스토니아가 1차 독립을 하자 서둘러 이름을 붙인다는 게 그만 탈린이 되어버려 수도의 이름이 타민족(덴마크)의 도시라는 웃지못할 결과가 되어 버렸다. 러시아 내전 이후 에스토니아가 독립하면서 수도가 되었지만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소련에 점령되었고 소련의 해군 기지가 이 도시에 위치하기도 하였다. 중세의 모습이 잘 보존되어 있는 구시가지는 유네스코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유명 관광도시가 되었다. 핀란드 헬싱키와는 발트해를 두고 쾌속선으로 2시간 정도면 도착할 수 있는 거리이다. 그래서 주말이면 많은 헬싱키 사람들이 물가가 저렴한 탈린으로 건너와서 음주나 외식을 자주 즐긴단다.
한국에서는 탈린 인근에 위치한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와 핀란드 헬싱키를 함께 여행하는 코스의 여행 상품이 인기가 높다. 헬싱키는 선박으로 오가고 상트페테르부르크는 국제버스가 잘 되어있어 주로 이를 이용한다고 한다. 항구쪽에서 바라본 구 시가지의 모습을 그려보았다.
라트비아 수도 리가(Riga)
리가는 북유럽 발트 3국(에스토니아, 라트비아, 리투아니아) 중 라트비아의 수도이다.
라트비아는 18세기부터 제정 러시아의 식민지가 되었으며 제1차 세계대전 후 독립하였으나 1940년 다시 소련에 병합되었다. 그러다 1991년 8월 소련이 해체되면서 발트 3국의 나머지 국가들과 함께 소련으로부터 독립하게 된다. 리가는 1282년 한자(Hansa)동맹에 가입하여 발트 해에서 가장 중요한 무역중심지 가운데 하나로 번성한 도시였다. 오늘날 라트비아의 행정·문화·산업의 중심지인 리가에는 해안 쪽에 위치한 성(城)과 1215년경에 세워진 도마 대성당, 게르만 양식으로 지어진 중세의 상인 가옥들, 상점 등 많은 유적들이 남아 있다. 중세시대에 성을 에워싸고 적의 침입을 막기위해 파놓았던 해자(垓字)는 구(舊)시가지 주위로 운하처럼 남아 있다. 리가 만은 12~4월에는 바다가 얼어서 항구로서의 기능을 하지 못한다고 한다.
그단스크(Gduńsk)
그단스크는 폴란드에서 4번째로 큰 도시로 발트해에 면해있어 폴란드의 해양 수도로 불리운다. 997년 처음으로 도시로 언급된 이후 이 도시는 수시로 주인이 바뀌었다. 처음에는 폴란드의 영토였지만 튜튼 기사단, 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을 거쳐 프로이센에 점령된다. 1차대전 이후 베르사이유 조약에 따라 단치히(Danzig) 자유도시로 유지되다가 다시 독일 제국에 통합되었다. 이후로는 잠시 바이마르 공화국에 속해 있다가 1945년에 다시 폴란드의 품으로 돌아왔다. 그단스크는 13~17세기 독일 북쪽과 발트해 연안에 있는 여러 도시들로 구성되어 상호간의 공동 방호와 상권 확장을 도모하고자 조직된 한자(Hansa) 동맹의 가장 크고 영향력있는 도시였다. 그러나 그 이후 연이은 전쟁에 휘말리면서 도시가 많이 파괴되었는데 1945년 소련군이 이 도시를 점령하였을 때는 시가지의 90%가 파괴되어 있었다. 폴란드로 다시 편입된 이후 꾸준히 도시 복원이 이루어져 구시가지는 현재 유럽에서 유명 관광지로 각광이 높다. 8월 초 3주간 열리는 성 도미니크 축제를 피크로 전세계에서 200만 정도의 관광객들이 이 도시를 찾는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