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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아

by 윤희철

조지아

조지아(영어: Georgia), 그루지야(러시아어)는 러시아 남부 코카서스(러시아 지명은 카프카스) 산맥 아래쪽에 위치한 코카서스 3국(조지아, 아르메니아, 아제르바이젠) 중 한 국가이다. 국토면적은 7만 7,000 km2로 우리 남한 면적의 70% 정도이며 인구는 376만(2023년도)으로 남한 인구의 8% 정도밖에 안되는 작은 나라이다. 서쪽은 흑해에 접해있고 북쪽은 러시아, 남쪽은 튀르키예와 아르메니아, 남동쪽은 아제르바이잔과 국경을 접하고 있다. 코카서스 산맥에 접해 있어 국토의 2/3가 산림지형으로 ‘동유럽의 스위스’ 또는 ‘물가가 싼 스위스’ 등으로 불리우고 있다.

조지아는 유럽과 아시아의 중간지역에 위치하여 과거 동로마, 페르시아, 징기스칸, 티무르, 오스만 투르크, 러시아 등의 지배를 줄곧 받아 왔다. 1936년부터는 소비에트 연방의 하나였던 그루지야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으로 내려오다가 1991년 연방이 붕괴되면서 독립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 조지아 내에는 친러 성향으로 조지아에서 독립하려고 하는 압하스와 남오세티야가 있어 분쟁지역으로 분류되고 있다. 소비에트 연방(소련) 공산당 서기장으로 1924년부터 1953년까지 약 30년간 소련을 통치하였던 스탈린이 조지아 출신이다.

대외적으로 러시아식 표기인 그루지야로 통용되었으나 2008년 러시아 침공 이후 국제사회에 자국어 표기인 사카르트벨로 또는 영어식으로 조지아(Georgia)로 수정해 달라고 요구하여 현재는 조지아로 불려지고 있다.

조지아는 4세기초 아르메니아에 이어 두 번째로 기독교를 국교로 정했던 나라로 현재 국민의 85%가 조지아 정교회를 신봉하고 있다.

조지아는 와인으로 유명한데 8,000년 전부터 와인을 생산하여 인류 최초로 와인을 만든 지역으로 알려져 있다. 마치 우리나라가 늦가을이면 집집마다 김장을 하여 장독에 묻어 두듯이 조지아도 가을이 되면 집집마다 와인을 만들어 땅속에 묻어 둔 토기에 저장한다. 풍부한 와인 덕분에 조지아 사람들은 와인을 물처럼 마시게 되어 ‘물보다 와인에 빠져 죽은 사람이 많다’라는 속담이 있을 정도이다.


수도 트빌리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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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화한 곳’이라는 뜻을 지니고 있는 조지아의 수도 트빌리시는 시내를 가로지르는 므츠바리 강을 끼고 구시가지와 신시가지로 나뉜다. 구시가지에는 재정 러시아 시절부터 유명해진 온천과 나리칼라 요새의 케이블카가 유명하다. 트빌리시를 한 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언덕 위에 4세기에 건립된 나리칼라 요새가 자리잡고 있다. 성벽 안쪽에 세워진 정교회 건물은 과거 모스크였던 장소를 정교회 성당으로 개조한 것이다. 성벽을 따라 서쪽으로 조금 걸어가면 조지아를 상징하는 동상이 하나 서 있다. 건국 1500년을 기념하여 1958년에 세워진 높이 20m의 조지아의 어머니 동상이다. 동상은 한 손에는 와인 잔을 다른 한 손에는 칼을 들고 있다. 친구와 손님은 따뜻하게 맞이하되(와인 잔) 적에게는 용맹하게 맞서라는(칼) 의미라 한다.

그림은 나리칼라 요새와 정교회 성당이 있는 언덕 아래로 펼쳐지는 트빌리시 시가지의 모습을 그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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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그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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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그나기는 조지아의 수도 트빌리시에서 동남쪽으로 120km쯤 떨어져 있는 작은 마을이다. 800m 절벽 위에 형성된 이 마을은 완만한 비탈길을 따라 여러 갈래의 골목이 펼쳐지면서 옛 풍취를 가득 담고 있는 아름다운 마을이다. 동화속 마을 같은 시그나기는 언덕 아래로 펼쳐진 드넓은 들판을 지나 저 멀리 코카서스 산맥이 병풍처럼 드리워져 스펙터클한 풍광을 보여준다.

이 마을은 혼인신고 등록소를 24시간 운영할 정도로 사랑의 도시로 유명하다. 그런 배경에는 화가 니코 피로스마니(1862~1918)의 사랑이야기가 자리잡고 있다. 가난한 화가 피로스마니와 프랑스에서 온 여배우 마르가리타와의 슬픈 사랑의 이야기가 그것이다. 이 이야기는 러시아 노래 <백만송이 장미>의 가사에 잘 나타나 있다. 국내에서는 심수봉 씨가 번안하여 불러 우리에게도 잘 알려져 있는 노래이기도 하다. 원곡은 1981년에 작곡된 라트비아의 노래 ‘마리냐가 준 소녀의 인생’인데 ‘마리냐’라는 운명의 신이 딸에게 인생을 선물하였으나 미처 행복은 준비하지 못했다는 내용이다. 당시 라트비아는 소련의 지배를 받고 있었던 터라 나라 잃은 슬픔을 노래한 곡이라 할 수 있다. 2년 후 러시아의 시인인 안드레이 보즈넨스키가 어머니에게서 전해 들은 조지아의 가난한 천재 화가의 사랑 이야기를 가사로 붙이고 러시아 국민 가수 알라 푸가쵸바가 불렀다. 이후 이 곡은 러시아는 물론 우리나라를 비롯한 많은 나라에서 번안되어 널리 퍼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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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랑 화가로 살아가던 피로스마니는 어느 날 평소 짝사랑하던 프랑스 출신의 여배우 마르가리타가 자신의 마을로 공연을 온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 그는 그녀의 마음을 사기 위해 가지고 있던 전 재산과 그림을 팔아 100만 송이의 장미를 사서 그녀가 묵고 있는 호텔 앞 광장을 장미꽃밭으로 만들었다. 이에 감동한 마르가리타는 피로스마니의 고백을 받아들여 약 40일 이상 피로스마니와 함께 트빌리시에서 살았다고 한다. 그렇지만 화려한 삶을 살았던 마르가리타는 결국 그를 버리고 프랑스로 돌아가 버렸다. 전 재산을 다 바쳐 그녀를 짝사랑했던 피로스마니는 실연의 아픔을 안은 채 짊을 옮기는 노역이나 상점 간판을 그리며 생계를 유지했다고 한다. 아픈 마음을 술로 달랬고 술이 떨어지면 잡일을 하면서 그 댓가로 돈 대신 술을 받아 술로 하루하루를 연명하였다. 기력이 떨어져 일을 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자 그는 술을 마시기 위해 자신의 피를 팔기도 했다. 그러다 결국 그는 트빌리시 기차역 주변 선술집 지하 오두막에서 영양실조와 스페인 독감으로 생을 마감하였다. 안타깝게도 그에게는 자식도 없었고 그의 무덤도 아는 이도 없었다 한다.

오늘날 피로스마니는 조지아 지폐에도 등장하고 그의 작품도 지폐에 실리는 등 조지아 국민화가로 추앙받고 있다. 그의 사랑 이야기를 담고 있는 시그나기에는 그의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이나 형상이 조형물로 제작되어 거리 곳곳에 설치되어 있다. 시그나기에 있어 피로스마니가 얼마나 중요한 인물인가를 잘 실감할 수 있는 대목이다.

그림은 들판을 지나 멀리 코카서스 산맥이 병풍처럼 드리워진 시그나기의 전경을 그린 것이다.

안드레이 보즈넨스키가 작사한 <백만송이 장미>의 가사에서 피로스마니의 가슴 아픈 사랑을 생각해 본다.


한 화가가 살았네 홀로 살고 있었지

그는 꽃을 사랑하는 여배우를 사랑했다네.

그래서 자신의 집을 팔고, 자신의 그림과 피를 팔아

그 돈으로 바다도 덮을 만큼 장미꽃을 샀다네

백만송이 백만송이 백만송이 붉은 장미

창가에서 창가에서 창가에서 그대가 보겠지

사랑에 빠진 사랑에 빠진 사랑에 빠진

누군가가 그대를 위해 자신의 인생을 꽃으로 바꿔놓았다네

그대가 아침에 깨어나면 정신이 이상해질지도 몰라

마치 꿈의 연장인 것처럼 광장이 꽃으로 넘쳐날 테니까

정신을 차리면 궁금해 하겠지 어떤 부호가 여기다 꽃을 두었을까 하고

창 밑에는 가난한 화가가 숨도 멈춘 채 서 있는데 말이야

만남은 너무 짧았고 밤이 되자 기차가 그녀를 멀리 데려가 버렸지

하지만 그녀의 인생에는 넋을 빼앗길 듯한 장미의 노래가 함께 했다네

화가는 혼자서 불행한 삶을 살았지만

그의 삶에도 꽃으로 가득 찬 광장이 함께 했다네



카즈베기 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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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00m가 넘는 산들이 즐비한 코카서스 산맥 가운데 러시아(북오세티야 공화국)와 조지아 경계에 있는 카즈베기 산(5,047m)은 조지아 사람들이 신성하게 여기는 산이다. 이 산은 하늘에서 불을 훔쳐 인간에게 전해 준 프로메테우스의 신화가 내려오는 산이다. 불을 훔친 형벌로 프로메테우스는 제우스로부터 이 산의 바위에 묶여 독수리에게 간을 쪼아 먹히는 영원한 고통에 빠지게 되었다고 전해진다. 이 산의 중턱(2,170m)에는 14세기에 지어진 게르게티 삼위일체 교회가 세워져 한번도 외세의 침입이 없었다 한다. 커다란 카즈베기 산을 배경으로 오랜 세월을 지켜온 이 교회의 모습은 조지아를 대표하는 풍경으로 손꼽힌다.



우쉬굴리(ushiguli)

탑형 주택은 전쟁이 잦았던 중세시대에 이탈리아를 비롯한 유럽 전역에 걸쳐 선호되었던 방어용 주거였다. 그 예는 조지아의 코카서스 산맥 아래쪽에 위치한 우쉬굴리(ushiguli)라는 마을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이 마을은 해발 2,400m에 형성된, 유럽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마을이다. 이 마을은 코카서스 산맥에서 세 번째로 높고 조지아에서는 최고봉인 시하라(5,200m)를 배경으로 하여 1년 중 6개월은 눈으로 덮여 있어 접근이 쉽지 않은 곳이다.

우쉬굴리.PNG

우쉬굴리를 비롯한 주변 지역 곳곳에서 볼 수 있는 탑형 주택을 이 지역에서는 스반 타워(Svan Tower) 또는 현지어로 코쉬키(koshiki)라 부른다. 이 지역을 스바네티(svaneti)라고 부르고 있어서 스반 타워는 스반 지역에서 볼 수 있는 타워라는 의미이다. 보통 3~5층 구조로 되어 있는 이 탑들은 중세기인 9세기~12세기에 주로 만들어졌다. 외부 침입자가 쳐들어오면 가족단위로 타워로 피신하여 방어와 주거의 용도로 사용하였다. 1층은 가축을 키우고 2층은 식량저장 공간, 3층은 주거용으로 사용되었다. 망루로 사용되는 최상층은 밖으로 사방이 돌출되어 있고 각 방향으로 아래쪽으로 구멍이 뚫려져 있다. 이 구멍들을 통하여 침략자들의 동태를 살피거나 적들이 탑에 접근하였을 때 화살이나 돌을 떨어뜨려 공격을 할 수 있다. 위층으로 연결하는 사다리는 전쟁시 사다리를 들어 올려 올라오는 구멍을 돌로 막는다. 이렇게 하면 적의 접근이 어려워지므로 장기전에 유리한 구조이다. 한편 눈이 많이 내리는 지역이어서 3m이상의 눈이 쌓이는 겨울에는 눈을 피해 가족들이 이 타워로 이동해 겨울을 나기도 한다.

중세시대에 건립된 많은 스반 타워들이 지금까지도 보존이 잘되어 있어서 1996년에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코카서스 고산의 아름다운 자연과 함께 중세시대의 모습이 잘 간직되어 있는 우쉬굴리로 전 세계 트레킹인들의 발걸음이 이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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