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될 일보다 된 일을 하라

치유산업의 본질은 실행과 실증에서 증명된다

by 치유설계자

많은 사람들이 거대한 꿈과 미래의 가능성에만 매달려서 아직 검증되지 않은 일에 모든 에너지를 쏟는다. 나도 그랬다.


하지만 치유산업을 10년간 걸어오면서 깨달은 것은, 진정으로 지속가능하고 사회적 의미를 갖는 사업은 이미 작은 단위에서 검증된 현실, 즉 될 것 같은 일이 아닌 이미 된 일에서 출발한다는 것이었다.


치유산업에 처음 뛰어들었을 때, 나 역시 거대한 비전과 장밋빛 미래를 꿈꿨다.

하지만 현실은 냉혹했다.

중요한 건 눈앞에서 실제로 작동하고 있는 작고 사소한 성공을 하나씩 발견하고, 그걸 신중하게 확장해가는 것이었다.

그 과정에서 나는 아이디어와 상상만으로 움직이는 대신, 아, 이건 이미 된 일이다라는 감각을 기준으로 선택과 집중을 하는 법을 배웠다.


된 일을 분별하는 감각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았다.

수많은 시행착오와 좌절, 성공과 실패의 반복을 통해서만 체득할 수 있는 직관적 판단력이었다.

창업 초기부터 지금까지, 정말 무수한 실패와 좌절이 내 앞길을 막아서는 듯 보였다.

하지만 되돌아보면, 안 되는 것도 안 되는 대로, 되는 것도 되는 대로 흘러가는 과정 속에서 결국 나는 내가 가야 할 길을 걷고 있었다.


첫 번째 신호는 자생적 확산이었다.

치유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운영하면서, 참여자들이 단순히 프로그램을 소비하는 게 아니라 스스로 다음 단계를 찾아오는 순간들이 있었다.

개별 프로그램이 끝난 후에도 참여자들이 지속적으로 연결되고, 서로의 치유 여정을 공유하며, 새로운 사람들을 소개하는 모습을 봤을 때 이 치유산업이 실질적으로 하나의 정착한 허브를 만들어낼 수 있겠다는 확신이 들었다.

이건 억지로 만들어낸 네트워크가 아니었다.

치유의 필요를 느낀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모이고, 서로를 지지하며, 더 깊은 변화를 추구하는 유기적인 흐름이었다.


두 번째는 진정성을 판별하는 능력이었다.

초기에는 모든 협업 제안이나 참여 의사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였다.

하지만 경험이 쌓이면서, 진짜 치유를 원하는 사람과 단순히 유행을 따라가거나 다른 목적을 숨긴 사람을 구분할 수 있게 되었다.

진정성이 있는 곳에서는 작은 시작도 큰 변화로 이어졌고, 진정성이 부족한 곳에서는 아무리 큰 예산과 화려한 기획이 있어도 공허한 결과만 남았다.


세 번째는 실질적 변화를 목격하는 것이었다.

참여자들이 프로그램을 통해 내면의 실질적 변화를 경험하고, 그게 일상생활의 구체적 행동으로 이어지는 모습을 볼 때 이건 확실히 된 일이다라는 확신이 들었다.

창업자 치유 워크숍에서 억눌린 감정을 해방시키는 과정을 통해 참여자들이 새로운 사업 아이디어를 찾아가는 모습, 청년들이 자신감을 회복하며 적극적인 삶의 태도를 갖게 되는 변화를 직접 봤을 때의 감동은 잊을 수 없다. 이 과정에서 내가 배운 건 없는 걸 억지로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이미 있는 걸 보이게 하는 것이 진짜 창조라는 사실이었다.


네 번째는 전문성을 인정받는 것이었다. 초기에는 다른 전문가들의 방법론을 모방하거나 기존 프로그램을 변형하는 수준에 머물렀다. 하지만 점차 나만의 고유한 접근법과 철학을 정립하면서, 다른 치유 전문가들이나 기관에서 조언을 구하거나 협력을 제안하는 경우가 늘어났다. 시장에서 내 전문성을 인정받고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게 되었을 때, 이 길이 옳다는 확신이 더욱 단단해졌다.


다섯 번째는 직관적 판단력이 체화된 것이다. 새로운 프로젝트나 제안을 받았을 때, 복잡한 분석과 계산을 하기 전에 이미 이건 될 것이다 또는 이건 안 될 것이다라는 감각이 생겼다. 이런 직감은 수많은 경험이 쌓여서 나오는 것이다. 시장의 흐름과 참여자들의 반응, 자원의 효율성을 종합적으로 판단하는 내재된 역량이었다.

마지막으로는 명확한 철학과 언어를 정립한 것이었다. 처음에는 힐링, 웰빙, 치료 같은 기존 용어들을 혼용했는데, 경험이 쌓이면서 치유산업이라는 명확한 개념과 정의를 갖게 되었다. 이 용어 안에는 단순한 위로나 일시적 기분 전환이 아닌, 체계적이고 지속가능한 사회적 치유 시스템에 대한 비전이 담겨 있었다.

반대로, 아무리 노력해도 될 일 아닌 것임을 체감해야 했던 경험들도 분명히 있었다. 이 경험들은 단순한 실패가 아니라, 앞으로 뭘 선택하고 뭘 버려야 하는지를 가르쳐준 소중한 기준이 되었다. 절실함이 없는 사람을 치유하려는 시도가 첫 번째 한계였다. 모든 사람이 치유를 원한다고 믿었는데, 현장에서 만난 일부 사람들은 진정한 변화보다는 위로나 일시적 기분 전환만을 기대했다. 스스로 삶을 바꾸려는 의지와 용기가 없는 이들에게는 아무리 정교한 프로그램을 제공해도 근본적인 변화가 일어나지 않았다.


검증되지 않은 비즈니스 모델도 큰 교훈이었다. 치유 스타트업의 구조적 취약함이 드러났는데, 치유는 장기적이고 느린 결과를 전제로 하는 반면 스타트업은 단기 수익성과 확장성을 요구했다. 두 구조가 근본적으로 맞지 않아서 지속가능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이 모든 실패와 좌절은 내가 뭘 해야 하는지보다 뭘 버려야 하는지를 명확히 가르쳐주었다.


이런 기준으로 돌아보면, 캄스페이스가 수행한 프로젝트 중에 분명히 된 일이라고 확신할 수 있는 사례들이 있다. 청년도전지원사업의 자신감 회복 프로그램은 참여 청년들이 실제 취업과 창업에 도전하면서, 스스로 다른 친구들을 소개하는 자생적 확산을 보여줬다. 순천시 치유도시 컨설팅은 지자체가 치유산업에 대한 명확한 비전을 갖게 되었고, 이후 다른 지자체들의 유사한 요청으로 이어졌다. 창업자 치유 워크숍은 다양한 기관에서 반복 의뢰가 들어왔고, 실제 창업자들의 지속적인 사업 운영에 도움을 줬다. 제주 리트릿 프로그램은 참가자들이 삶의 전환점마다 다시 찾아와서 재참여하는 순환 구조를 만들어냈다.


사업가로서 플랫폼 구축, 치유 콘텐츠 판매 등 다양한 시도를 했지만, 결국 지속가능한 수익 구조를 만들지 못해서 사업적으로는 실패했다. 하지만 그 실패 과정에서 더 큰 확신을 얻었다. 돈을 버는 구조의 필수성, 치유의 본질적 역량이 기반이 되어야 한다는 점, 고객 맞춤형 접근의 필요성, 현실적이고 지속가능한 모델을 만드는 힘 등을 배웠다. 무엇보다 우리는 치유를 해왔고, 그것이 우리 스스로를 지탱하게 만들었다는 믿음은 흔들리지 않았다.


내가 치유산업의 길을 포기하지 않고 계속 걸어야 한다는 내적 사명감은 단순한 직업 선택이 아니다. 10년 전 치유가 사회적으로 인정받지 못하던 시절, 나는 치유적 접근을 통해 구체적으로 내 인생을 회복했다. 이 경험이 언젠가 많은 사람들이 치유를 절실하게 필요로 하게 될 것이라는 확신으로 자라났고, 현장에서 만난 사람들에게 치유가 단순한 선택지가 아니라 마지막 희망이고 생존의 끈이라는 걸 확인하면서 더욱 단단해졌다.

결국 내 사명감은 세 가지 확신에서 비롯된다. 첫째, 내가 치유로 살아남았듯이 수많은 사람들이 앞으로 점점 더 이 힘을 필요로 하게 될 것이라는 믿음. 둘째, 치유를 개인적 취미가 아니라 현대 사회를 지탱하는 핵심적 사회적 인프라로 자리잡게 하겠다는 다짐. 셋째, 내 역량과 경험이 필요한 순간들이 명확하게 존재하고, 그 순간에 응답하는 게 내 역할이라는 자각이다.


이 모든 경험을 통해 캄스페이스는 명확한 브랜드 철학을 세웠다. 우리는 작은 단위에서 검증된 것, 효능감과 반복 요청이 있는 일, 우리 강점과 맞는 기획, 전략, 교육, 케어 분야, 윤리적, 사회적 가치가 우선되는 사업만을 된 일로 삼고 집중한다. 반대로 돈이 안 벌리는 구조, 본질에서 어긋난 영역, 효능감이 없는 일, 확장성 없는 경험 등은 과감히 버려왔다. 이런 선택과 집중을 통해서 우리는 치유산업에서 진짜 현장 성과와 지속적인 브랜드 신뢰, 시장의 리더십을 동시에 쌓을 수 있었다.


나는 이 길에서의 실수와 실패를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오히려 길을 잃어도 다시 길을 찾는 경험을 통해 본질에 더 가까운 길, 더 강한 내적 사명, 더 확신에 찬 브랜드 철학을 얻었다. 결국 된 일이란 미래를 억지로 창조하는 게 아니다. 이미 내 안과 우리 공동체 안에 내재된 가능성을 현실로 드러내는 과정이다. 그 과정을 믿고, 작은 단위를 성실히 이어가는 태도 속에서 치유산업은 길을 만들어가고 있었다. 될 일을 꿈꾸는 대신, 이미 된 일을 찾아내고 확장하는 방법을 통해 진정한 치유산업의 길을 걸어가는 것. 그것이야말로 치유산업을 지속가능한 사업으로 발전시킬 수 있는 가장 확실하고 강력한 동력이다.

keyword
이전 02화치유, 복지를 넘어 산업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