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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유, 회복과 성장 그러나 안전지대의 딜레마

성장의 이름으로 머무는 ‘위로의 함정’을 넘어서

by 치유설계자

치유의 본질은 회복이다.

그러나 진정한 회복은 곧 성장으로 이어져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치유는 멈춤이 되고, 회복은 퇴행이 된다.

이 지점에서 가장 큰 문제는 인간이 본능적으로 머물고 싶어 하는 안전지대다. 이 영역은 따뜻하고, 부드럽고, 우리를 위로해 준다. 그러나 너무 오래 머물면, 그 위로가 우리를 다시 약하게 만든다.


상처받은 사람에게 안전지대는 구원과 같다.

사랑받지 못하고, 인정받지 못하고, 늘 존재를 부정당하던 사람에게 누군가 괜찮다라고 말해주는 것은 삶의 방향을 바꿔놓을 만큼 강력한 경험이다. 그 위로는 생존을 가능하게 하고, 절망의 끝에서 사람을 다시 일으켜 세운다.

현대 심리학에서 말하는 심리적 안전감이 바로 이것이다.

심리적 안전감은 학습과 성장의 전제 조건이다. 사람은 안전할 때만 진정한 자기표현과 위험 감수를 할 수 있다.


그러나 그 위로가 전부가 되는 순간, 그 사람은 더 이상 나아가지 못한다.

위로는 고통에서 벗어나게 하는 힘이지, 삶을 이끌어가는 힘이 아니다. 아브라함 매슬로의 욕구 단계설을 보면, 안전 욕구가 충족되면 사람은 소속과 사랑, 존중, 자아실현의 욕구로 나아간다.

하지만 안전지대에 머무르는 사람들은 이 발전적 순환을 멈추고 안전 욕구에만 고착된다.

그 둘의 차이를 모르면, 우리는 위로에 중독되고 스스로 성장의 기회를 차단한다.


요즘 세상은 위로의 언어로 가득하다.

SNS에는 괜찮아, 오늘은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돼, 그대로도 충분해라는 문장이 넘쳐난다. 물론 이 말들은 따뜻하고 필요하다. 특히 극심한 스트레스나 트라우마를 경험한 사람들에게는 이런 무조건적 수용이 치유의 시작점이 된다.

하지만 그 말 뒤에는 언제나 이제 다시 나아가자라는 문장이 따라와야 한다. 그 한 문장을 잃어버린 순간, 치유는 성장의 문을 닫고 스스로의 감옥이 된다.


현장에서 나는 이런 현상을 공부 쇼핑이라고 부른다.

일부 사람들은 위로가 필요할 때마다 새로운 프로그램을 찾는다. 명상, 상담, 리트릿, 코칭, 심리학 강의, 그리고 또 다른 워크숍으로 이어진다.

마치 물건을 쇼핑하듯 치유를 소비한다.

처음에는 진심으로 자기 탐색을 위해 시작하지만, 어느 순간 그것이 습관이 된다. 새로운 감동을 찾아 끊임없이 떠도는 사람들, 늘 배우지만 실천하지 않는 사람들, 늘 위로를 받지만 삶은 달라지지 않는 사람들이 생겨난다.


이들의 공통점은 자기확신의 결핍, 즉 스스로 성장할 수 있다는 신뢰를 잃었다는 것이다.

심리학에서 말하는 자기효능감 부족이다.

자기효능감은 개인이 특정 상황에서 필요한 행동을 성공적으로 수행할 수 있다는 신념이다. 이 신념이 없으면 사람은 지속적인 외부 지원에 의존하게 된다.

산업의 관점에서 보면, 이것은 치유의 소비 구조가 순환하지만 누적되지 않는 상태라는 뜻이다. 치유산업이 단순한 체험 서비스로 머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한 번의 감동은 줄 수 있지만, 삶의 패턴을 바꾸는 구조를 제공하지 못한다면 그 산업은 무한 반복의 피로 속에서 스스로 소모된다.


따라서 진짜 치유산업은 사람을 다시 불러들이는 산업이 아니라, 사람을 다시 세상으로 돌려보내는 산업이어야 한다.

이는 의존을 만드는 산업이 아니라 자립을 가능하게 하는 산업이라는 뜻이다.

칼 융이 말했듯, 진정한 개성화는 집단 무의식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고유한 길을 걷는 것이다.

치유 역시 마찬가지다.

집단적 위로에서 시작해서 결국 개인적 성장으로 나아가야 한다.


많은 이들이 세상의 구조, 자본, 경쟁, 불평등, 냉정함을 견디지 못하고 치유의 세계로 들어온다.

이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현대 사회의 급격한 변화와 경쟁 압력은 많은 사람들에게 만성적인 스트레스와 소외감을 안겨준다.

하지만 그중 일부는 세상을 거부하고, 자신만의 세계를 만들어 그 안에서 고립되기도 한다. 나는 세속적인 삶을 버렸다, 나는 도시를 떠나 자연 속에서 산다는 식의 태도 안에는 종종 세상에 대한 미움과 두려움이 섞여 있다.


그러나 치유는 세상을 도피하는 기술이 아니다.

진짜 치유는 세상을 이해하고, 받아들이고, 그 안에서 자신답게 살아갈 수 있는 통합의 힘이다.

세상을 버리기 위해 명상하는 사람보다, 세상 속에서 흔들리지 않기 위해 명상하는 사람이 결국 더 강하다.

불교의 대승 전통에서 말하는 세간 속의 출세간이 바로 이런 의미다.

세상을 떠나는 것이 아니라 세상 안에서 깨어있는 것이다.


치유산업의 역할도 마찬가지다.

사람을 세상 밖으로 데려가는 것이 아니라, 세상 안에서 자신을 회복시켜 다시 참여하게 하는 산업 구조여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성장의 본질을 이해해야 한다.

성장은 직선이 아니다. 우리는 올라갔다가, 내려갔다가, 다시 올라가며, 결국 오른쪽 위로 향하는 나선형의 곡선을 그린다.

많은 사람들은 치유의 과정을 경험하고 나면 이제 끝났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것은 단지 방향을 바꾼 것일 뿐이다.


인간은 평생에 걸쳐 여러 위기를 극복하며 성장한다. 각 단계의 위기를 제대로 해결하지 못하면 다음 단계로 넘어가기 어렵다.

하지만 동시에 이전 단계의 과제는 나중에 다시 다룰 수 있다.

즉, 성장은 한 번에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평생에 걸친 순환적 과정이다.

오랜 세월 벼랑 끝까지 걸어온 사람은, 단번에 정상으로 돌아갈 수 없다. 몸의 방향을 돌렸다면, 이제 그 길을 다시 천천히 걸어 올라가야 한다.

그것이 회복이고, 인내이며, 성장이다.


한 번의 각성은 시작일 뿐, 삶을 바꾸는 것은 지루한 반복과 기다림이다.

신경과학의 연구에 따르면, 뇌의 신경 경로가 바뀌려면 최소 21일에서 66일의 반복이 필요하다. 즉, 인식의 변화는 순간에 일어나지만, 행동의 변화는 시간과 훈련이 필요하다.

그리고 나는 그동안의 치유 활동을 통해 인간의 탈조건화와 변화가 안착되기 위해서는 약 7년은 걸린다는 결론이 생겼다.


따라서 치유산업은 이 과정을 고객의 불완전함으로 보지 말고, 자연스러운 순환의 리듬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그래서 프로그램은 단기 성취 중심이 아니라, 삶의 흐름 안에서 무너짐, 회복, 통합이 반복될 수 있는 순환형 구조로 설계되어야 한다.


이 지점에서 치유자의 역할이 중요해진다.

진정한 치유자는 위로만 하는 사람이 아니다. 그는 참여자가 자기 안의 고통과 마주할 수 있도록 돕고, 때로는 불편함을 허용하게 만들고, 그 후 다시 따뜻하게 품어줄 줄 알아야 한다.

위로는 시작이고, 직면은 전환이며, 품어줌은 완성이다.

이 세 가지 단계를 다룰 줄 아는 사람만이 진짜 힐러다.


그런데 현실의 많은 치유자들은 자신이 경험한 방식, 자신이 살아남게 해준 방법에 갇혀 있다.

그래서 프로그램이 확장되지 못하고, 참여자에게 동일한 방식만 반복한다.

내가 과거 106명의 치유 전문가를 모으는 온라인 플랫폼을 운영하며, 그들 중 일부가 사람들의 절박함을 이용해 즉각적 효과를 약속하는 방식을 보았다.

이 프로그램 한 번이면 인생이 바뀐다는 식의 말들. 그러나 치유는 기적이 아니라 과정이다. 그리고 그 과정에는 늘 시간, 인내, 훈련이 따른다.


치유자는 위로의 기술자가 아니라 성장의 안내자여야 한다.

그의 언어는 괜찮아요에서 멈추지 않고, 이제 나아가보자로 이어져야 한다.

그의 프로그램은 감정을 달래는 데서 멈추지 않고, 삶의 태도와 행동을 강화시키는 구조로 설계되어야 한다.

이는 단순히 동기부여나 격려가 아니라, 참가자가 스스로 선택하고 실행할 수 있는 구체적인 도구와 방법을 제공하는 것을 의미한다.


치유의 완성은 감정의 평온이 아니라, 의식의 확장이다.

데이비드 호킨스 박사가 제시한 의식 지도에 따르면, 두려움, 분노, 욕망의 단계에서 벗어나 용기, 이해, 사랑으로 올라갈 때 인간은 비로소 생존에서 창조의 단계로 전환된다.

의식이 확장되면 경험의 폭이 넓어지고, 그 확장된 경험은 다시 의식을 성장시킨다.

그 순환이 인간의 성숙이다.

치유산업이 해야 할 일은 바로 이 전환을 돕는 것이다.

즉, 단순히 사람을 위로하는 것이 아니라, 그의 의식을 한 단계 확장시켜 삶을 다시 선택할 수 있게 하는 산업으로 진화해야 한다.


결국 회복은 멈춤의 예술이고, 성장은 움직임의 예술이다.

둘 중 하나만 강조되면 불균형이 생긴다. 진짜 치유산업은 두 영역을 모두 품어야 한다.

사람이 충분히 쉬어야 앞으로 나아갈 수 있듯, 프로그램 또한 안정기와 도전기를 균형 있게 설계해야 한다.

감정적으로 회복된 후에는 반드시 행동으로 이어지는 구조가 필요하다.

다시 무너질 때는 또 돌아와 회복할 수 있어야 한다.

그 반복이 바로 삶의 탄력성이다.


이 탄력성을 산업 구조로 옮기면, 치유산업은 더 이상 감정 산업이 아니라 회복탄력성 기반의 성장 산업이 된다.

회복탄력성은 단순히 고통을 견디는 능력이 아니라, 역경을 통해 더 강해지는 능력이다.

최근 뇌과학 연구에 따르면, 감정과 이성은 대립하는 것이 아니라 협력하는 관계다. 건강한 감정 조절 능력은 더 나은 의사결정과 창의적 사고를 가능하게 한다. 그리고 그 산업은 개인의 치유를 넘어 지역 공동체, 도시, 사회 전체의 회복력으로 확장될 수 있다.


우리는 모두 고통을 겪지만, 그 고통의 끝은 멈춤이 아니라 전진이다.

위로는 그 길의 시작일 뿐이며, 성장으로 나아가야 한다.

치유는 세상을 떠나기 위한 도피가 아니라, 세상 속에서 다시 자신답게 살아가기 위한 재정렬이다.

따라서 치유산업이 나아가야 할 방향은 명확하다.

사람을 달래는 산업이 아니라, 사람을 다시 세상으로 돌려보내는 산업.

그것이 진정한 치유이고, 회복 이후의 성장이다. 그리고 바로 그 지점에서, 치유산업은 복지를 넘어 한 사회의 정신적 회복력과 문화적 경쟁력을 키우는 새로운 국가 인프라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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