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 앞에서도 최고만을 찾는다
노동은 인생의 대부분을 차지합니다.
그런 거대한 시간 속에서
진정한 기쁨을 누릴 수 있는 방법은
스스로가 위대한 일을 한다고 자부하는 것입니다.
자신의 일을 위대하다고 자부할 수 있을 때는,
사랑하는 일을 하고 있는 그 순간뿐입니다.
지금도 찾지 못했거나, 잘 모르겠다 해도
주저앉지 말고 포기하지 마세요.
전심을 다하면 반드시 찾을 수 있습니다.
일단 한 번 찾아낸다면,
서로 사랑하는 연인들처럼
시간이 가면 갈수록 더욱더 깊어질 것입니다.
그러니 그것들을 찾아낼 때까지
포기하지 마세요.
- 2005년 스탠퍼드대 졸업식 강연 중에서 -
2009년 3월, 미국 테네시주 멤피스 메서디스트 대학병원 이식연구소의 중환자실. 간이식이라는 큰 수술을 마친 회복 초기라 몸도 의식도 가누기 힘든 상태의 한 수척한 환자가 병실에 누워 의료진과 간병인들을 당황하게 하고 있다.
아직 말도 제대로 못 하면서 얼굴에 씌웠던 산소마스크를 벗겨내고 디자인이 별로라며 투덜대는가 하면, 마음에 드는 디자인을 직접 고를 테니 새 마스크 다섯 대 정도를 가져오라고 지시한다. 이제는 심박 수 체크를 위해 손가락에 끼운 산소 모니터도 볼품없고 복잡하다며 못마땅해하더니 이내 자신이 이를 단순하게 디자인하는 방법을 제안하겠다고 소리를 내고 있다.
며칠만 늦었어도 사실 목숨이 경각에 달했던 수술이었고 이 때문에 회복 여부도 매우 중요한 이 상황에서 이 성마르고 까다로운 환자는 그의 기질을 바꾸지 않았다. 산소호흡기에 의지해 중환자실에 누워서도 거의 본능적으로 최고만을 찾으려는 그의 기질을.
몇 번을 찾아온 죽음의 문턱 앞에서도 일상 최고만을 선택하려는 이 강박에 가까운 성격이 그가 이전까지 지상에 없었던 새로운 이기(利器)들을 세상에 연이어 내놓을 수 있도록 만든 이유일지도 모른다. 이 까다롭고 특별한 성격의 환자, 그는 스티브 잡스다.
2004년 췌장암 수술, 2009년 간이식 수술, 2011년 말기 암까지 총 세 번의 병가, 그는 생사를 넘나드는 이 시기들에도 일을, 또 일에 대한 애착을 변함없이 유지했다. 팀쿡은 병석에서 잡스의 얼굴이 특히 밝아졌던 때는 직원들이 면회를 오고 회사 얘기를 전할 때였고, 힘든 몸으로도 직접 신제품의 이름이며 서체까지 장시간 챙기는 등 일과 회사가 소재가 될 때마다 힘을 찾았다고 멤피스 병동에서의 그를 떠올린 바도 있다.
최고를 향한 끝없는 열망, 무엇보다 자신의 일을 최우선 가치에 두었던 워커홀릭(workaholic). 그의 이 같은 삶의 방식에 대한 세상의 평가는 ‘혁신가’와 ‘냉정한 경영자’라는 상반된 입장으로 나뉘기도 한다. 그러나 정작 잡스 본인은 병과 죽음이라는 명제 앞에서도 이기적이라 할 만큼 줄곧 이러한 태도를 일관되게 유지했었고 이미 그렇게 살아가겠다고 선언한 바도 있었음을 그의 옛 연설문에서 발견할 수 있다.
“오늘이 내 인생의 마지막 날이라면, 지금 하려고 하는 일을 할 것인가?
아니오!라는 답이 계속 나온다면, 다른 것을 해야 한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죽음을 생각하는 것은 무엇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서 벗어나는 최고의 길입니다.
지금 모두 잃어버린 상태라면, 더 이상 잃을 것도 없기에 가슴속 진실에 충실할 수밖에 없습니다.”
2005년 6월, 스탠퍼드 대학의 졸업식 초청 연설에서 이미 그는 가슴속 진실에 충실한 자신만의 삶의 방식을 일관되게 살아갈 것임을 밝혔고 또 지킨 셈이다. 매우 특별하고도 까다로운 방식이었던 것은 사실이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