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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희대 May 05. 2019

[꿈의 성공 에세이] 스티브 잡스 _4

제2의 창업 그리고 iCEO

[꿈의 성공 에세이] '스티브 잡스'편

노동은 인생의 대부분을 차지합니다.


그런 거대한 시간 속에서

진정한 기쁨을 누릴 수 있는 방법은

스스로가 위대한 일을 한다고 자부하는 것입니다.


자신의 일을 위대하다고 자부할 수 있을 때는,

사랑하는 일을 하고 있는 그 순간뿐입니다.


지금도 찾지 못했거나, 잘 모르겠다 해도 

주저앉지 말고 포기하지 마세요.

전심을 다하면 반드시 찾을 수 있습니다.


일단 한 번 찾아낸다면,

서로 사랑하는 연인들처럼

시간이 가면 갈수록 더욱더 깊어질 것입니다.


그러니 그것들을 찾아낼 때까지 

포기하지 마세요.


- 2005년 스탠퍼드대 졸업식 강연 중에서 -


제2의 창업 그리고 iCEO


그가 연설문에서 밝힌 것처럼 그의 일에 대한 사랑은 애플 퇴직 후에도 식지 않았고 오히려 새로운 창업에 대한 열망을 높이는 계기가 되었다. 아니 그가 그런 길을 선택한 것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애플에서 퇴사한 이후 1995년까지의 10년은 그에게 새로운 도전의 시기라 할 수 있다.  


자신의 완벽주의를 실현할 차기 컴퓨터를 만들어내고자 애플 주식을 처분한 개인재산 7백만 달러와 캐논사 등으로부터 대형 투자유치를 이끌어내 1986년 설립한 회사는 NeXT였다. ‘월드와이드 웹’과 역사상 최초의 웹사이트를 구현할 만큼의 앞서간 소프트웨어를 선보이기도 했지만 하드웨어는 상당한 고가 수준이었기에 저가형 PC가 보급되던 당시 넥스트 컴퓨터는 혁신적이라는 인정은 받았지만 시장에서의 대중적 성공을 거두지는 못했다. 1990년 프랑스 지사를 설립하고 해외시장에도 진출하는 등 기치를 올렸지만 NeXT는 구조조정까지 단행하는 어려움을 겪는다.

한편 잡스는 1986년 조지 루카스 영화 스튜디오의 컴퓨터 부문을 인수한다. 회사의 목적은 영화를 기반으로 축적된 컴퓨터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개발하고 이를 사업화하기 위함이었다. 그래서 이들 제품을 홍보하기 위한 목적으로 PC 화면 위에 올릴 짤막한 애니메이션들을 만들어내기 시작했는데 프로젝트의 책임자인 존 래시터가 만든 2분짜리 단편 ‘럭소 주니어’는 1986년 아카데미상 후보에 오른다. 잡스는 여기서 래시터의 창의적 능력을 알아보고 애니메이션 제작 투자에 대한 밑그림을 그리게 된다. 이 회사의 이름은 우리에게 익숙한 픽사(Pixar)다. 


이후 1991년, 픽사의 실력과 가능성, 잡스의 설득력에 감화된 디즈니 스튜디오는 대형 계약을 맺는다. 컴퓨터 그래픽으로만 제작되는 애니메이션 3편을 픽사와 공동 제작하기로 한 것이다. 1995년 픽사와 디즈니의 첫 3D 컴퓨터 그래픽 장편만화 영화 ‘토이스토리’가 개봉되었고 그해 초 픽사는 증시에 상장해 1억 4천만 달러의 성과를 거둔다. 

Toy Story 1995 Trailer (Pixar Animation Studios film)

반면, 이 시기 애플은 마이크로소프트의 윈도우 체제 성장과 IBM의 독주 속에 상대적인 열세에 놓였고 히트상품이 없는 건조한 라인업으로 시장 점유율이 4%대까지 떨어지고 주가도 종잡을 수 없이 급감하는 등 이젠 PC 시장에서 옛 전설로만 남는 상황이 되었다. 급기야 회사 자체의 매각까지도 시도했었으나 이마저도 쉽지 않았다. 내부 개발이 부진했던 이유로 소프트웨어 부문의 외부 수혈이 필요했고 이를 M&A로 해결해야 할 지경까지 갔으며 아이러니하게 당시 소프트웨어 부문만큼은 경쟁력이 있었던 잡스의 NeXT를 인수하는 그림으로 이어지게 되었다.


1997년 2월, Next는 애플에 공식 인수되었고 잡스는 애플의 고문직을 맡게 된다. 이어 CEO였던 길 아멜리오는 적자 경영에 책임을 지고 퇴직하게 되고 이 파산 직전의 회사는 새 주인을 찾아 나서게 된다. 당시 애플에 대한 평가는 스컬리 이후로부터 사용자와 기술혁신, 그리고 제품에 초점을 맞추기보다 재무상의 결과와 구조조정에 치우친 경영으로 내실도 발전도 없는 회사로 전락했다는 것이었다. 이러한 상황은 잡스의 귀환이 정당화되는 바탕을 제공했다. 그럼에도 이 시기 잡스는 공석이었던 CEO 자리에 당장의 복귀를 한사코 뒤로 했다. 그러나 사실상 회사의 주도권을 잡고 있었던 것이 잡스라는 것은 공공연한 사실로 굳어지기 시작했고 이때 그가 얻은 호칭이 바로 'iCEO'였다. 일명 비공식 임시(interim) CEO다.

Steve Jobs 1997 Interview : Defending His Commitment To Apple (CNBC)

그러나, 이 'iCEO'는 장기간 소모적으로 진행되던 마이크로소프트와의 특허 소송을 투자유치로 변환해 이끌어내고, “다르게 생각한다(Think Different)"는 그 유명한 애플의 광고 캠페인을 시작했으며, 파격적인 완전 원형 디자인에 ‘인터넷을 위한 맥(Mac) 컴퓨터’라는 의미의 ‘iMAC"을 1998년 8월 출시해 단 일주일 만에 15만 대를 판매하는 등 개가를 올리며 그해 3년 만에 처음으로 흑자전환에 성공한다. 경영 구조 개선보다 사용자를 위한 제품의 혁신, 그리고 완벽을 추구하는 디자인에 이르기까지. 남들과 다르게 생각하는 이 깐깐한 iCEO가 CEO로 귀환할 자격을 입증한 것이다.

Apple's Think Different advertising campaign. 1997-2002

잡스의 CEO 복귀 이후 1999년부터 애플의 재무상황은 호전되었다. 거의 매 회계분기마다 흑자를 기록한 것이다. 물론 이 창조적 천재의 까다롭고 독불장군 같은 업무추진 스타일도 옵션으로 함께 애플에 옮겨졌다. 결국 그와 코드를 같이하는 주요 멤버들, 조너선 아이브, 팀 쿡 등을 중심으로 새로운 애플의 중심이 세워지기 시작했고 아이맥에 이어 노트북 시장에서도 아이북, 파워북을 내놓으며 시장 점유율을 높여간다. 잡스와 애플의 승승장구가 다시 시작됐음을 알리는 신호였다.

Steve Jobs' return to Apple (CNN)

(애플에서의 해고) 이후 5년 동안 저는 '넥스트', '픽사', 그리고 지금 제 아내가 되어준 그녀와 사랑에 빠져버렸습니다. 

픽사는 세계 최초의 3D 애니메이션 토이 스토리를 시작으로, 지금은 가장 성공한 애니메이션 제작사가 되었습니다. 세기의 사건으로 평가되는 애플의 넥스트 인수와 저의 애플로 복귀 후, 넥스트 시절 개발했던 기술들은 현재 애플의 르네상스의 중추적인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또한 로렌과 저는 행복한 가정을 꾸리고 있습니다. 


애플에서 해고당하지 않았다면, 이런 엄청난 일들을 겪을 수도 없었을 것입니다. 정말 독하고 쓰디쓴 약이었지만, 이게 필요한 환자도 있는가 봅니다. 


때로 세상이 당신을 속일지라도, 결코 믿음을 잃지 마십시오. 전 반드시 인생에서 해야 할 만한 일이 있었기에, 반드시 이겨낸다고 확신했습니다. 당신이 사랑하는 일을 찾아보세요. 사랑하는 사람이 내게 먼저 다가오지 않듯, 일도 그런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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