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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희대 Jun 05. 2019

[꿈의 성공 에세이] 손정의 _4

"당신은 나와 같은 승부사다!"

[꿈의 성공 에세이] '손정의'편

20대 - 이름을 알린다 ... 회사를 세운다

30대 - 사업자금을 모은다 ... 최저 1000억 엔 규모의 사업자금을 모은다

40대 - 한판 승부를 건다 ... 1조 엔, 2조 엔 정도의 규모로 승부를 한다

50대 - 사업모델을 완성시킨다

60대 - 다음 세대에 사업을 계승한다


이 5가지 단계의 50년 계획을 19살 때 만들었다. 그리고 ...  50대까지 모두 이루고 있다.


"오르고 싶은 산을 정하는 것으로 인생의 반은 결정된다."


- 소프트뱅크 '손정의 LIVE 2011' 중에서 -


"당신은 나와 같은 승부사다!"


다시 회사로 돌아온 그는 장기였던 발명으로 회사를 살리는 타개책을 마련한다. 시외 전화를 사용할 때 가장 가격이 싼 통신사의 회선으로 자동 전환이 되는 NCC-BOX라는 시스템을 발명한 것이다.


그러나 손의 비범함은 발명 이후 빛을 더했다. NCC-BOX를 판매하지 않고 다수 중소기업들에 무료로 나눠준 것. 대신 통신사에서 로열티를 받는 방식을 택한다. 선택은 적중했다. 통신사간 치열한 통화료 인하 전투가 벌어지던 그 해 1987년. 이 방식은 일본 통신 시장에 파란을 일으켰고, 그의 회사는 로열티 수익으로 빚을 청산하고도 10억 엔을 확보한다.

손정의 회장과 호바루 텔레콤이 공동 개발한 LCR(Least Cost Routing)시스템 'NCC-BOX'(출처 : 호바루 텔레콤)

기사회생에 한 숨 돌릴 만도 하지만 그의 역주는 멈추지 않았다. 당시까지만 해도 ‘일본 소프트뱅크’였던 사명에서 일본을 떼어내고 무대를 해외로 돌려 미국 시장을 벤치마킹하기 시작한다. 당시 IT부문의 발전 속도에 훨씬 앞서 있던 미국. 이 미국의 성공한 제품과 기술, 서비스를 도입한다면 일본에서도 분명 몇 년 안에 성공할 것이라는 계산이었다. 그렇게 부지런히 태평양을 오가며 만난 미국의 기업 중에 마이크로소프트가 있었다.


“Masa, You are as much risk-taker as I am!”

“마사(손정의의 일본식 이름), 당신은 나와 같은 승부사다!”


빌 게이츠가 첫 저서인 『미래로 가는 길(The road ahead)』을 내고 손정의에게 보낸 책에 자필로 적은 글이었다.

1995 년 6 월, 소프트뱅크와 MS의 합작회사 '게임 뱅크' 투자 발표 행사장의 손정의와 빌 게이츠(출처 : 소프트뱅크)

90년을 전후해 오랜 기간 친분을 쌓으며 서로를 확인했던 빌과 손정의는 일본 내 MS 소프트웨어 독점 판매권 계약을 맺었고, 92년 MS의 윈도 3.1이 히트하면서 일본에서도 컴퓨터 OS의 대세가 되었고 덩달아 MS의 SW는 날개 돋친 듯 팔려나갔다. 소프트뱅크의 수익은 92년 1,000억 엔을 넘기며 신장세를 거듭한다. 95년에는 MS와 합작회사까지 설립하기에 이른다. 이 같은 성공은 당연히 빌과 MS의 성장에도 도움이 되었고 둘은 몇 달에 한 번은 꼭 만나는 사이까지 발전한다. 빌이 그의 사인에 손정의를 자신과 같은 동격으로 언급한 이유다.


이밖에도  구글 회장 에릭 슈미츠가 당시 CEO로 있던 노벨과 합작법인을 세우는 등 미국의 주요 벤처들과 연계된 그의 경영 전략들이 차례로 빛을 발했고, 94년 7월 드디어 주식 공개에 성공해 당시 최고가로 상장한 소프트뱅크는 2000억 엔이라는 자금을 거머쥐게 된다.

1994년 7월, 소프트뱅크를 일본 주식 시장에 상장시킨 손정의 회장(출처 : 소프트뱅크)

승부사 손정의에게 2000억 엔은 또 다른 도전의 기회를 제공했다. 자신의 목표 ‘디지털 혁명’을 이루기 위해서는 변방이 아닌 주류 시장에 입성해 제대로 된 사업을 해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주류로 도약하는 방법론은 기존의 방식으로는 어렵다. 그는 당시 일본 내에서 터부시 했던 M&A를 시도한 것이다. 정말 치열하게 분석하고 준비해서 가장 주류이며 필요한 기업을 찾고 얻는 것이 그가 선택한 방법이다.


그렇게 95년 세계 최대 IT 미디어그룹 '지프 데이비스'를 1800억 엔에 그리고 세계 최대 정보기술(IT) 전시회인 컴덱스(COMDEX)를 8억 달러에 인수한다. 상장 후 1년 반 만에 3,100억 엔 규모의 국제적 M&A를 빛처럼 빠르게 진행시킨 것이다. 소프트뱅크는 단번에 세계 IT 미디어 부문의 주류 회사와 미국 IT 전시 시장의 70~80%를 점유한 전시회를 보유한 회사가 되었다.

소프트뱅크의 인수 후 라스베가스에서 개최된 COMDEX 행사의 기조연설을 맡은 빌 게이츠(1995.11.14)

세계 최대 IT 전시·출판 부문 인프라를 보유하게 된 그는 이들 회사를 통해 향후 인터넷 시대를 대비해 성장 가능성이 있는 최고의 회사를 찾을 수 있었다. 주류 회사의 인프라를 통해 또다시 주류가 될 회사를 분석해 내는 그의 전략은 두 번의 M&A를 무모한 결정이라고 평가했던 이들을 무색하게 한 것이다. 그렇게 그가 찾아낸 기업이 바로 ‘Yahoo'다. 최고의 나침반을 사서는 그 나침반으로 금맥을 찾은 것이다. 


아직 시작단계로 가능성만 보이던 신생 벤처 Yahoo의 창업자 '제리 양'을 설득하고 투자를 통해 미국 본사의 주요 주주가 된 손정의는 서둘러 일본에 공동합작사인 야후 재팬을 설립한다. 제리 양의 설득 과정에 지프 데이비스와 컴덱스의 전폭적 지원을 지렛대로 삼았음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그 해 95년 6월, 그가 그렇게 투자를 서둘렀던 야후는 미국에서 나스닥에 상장되었고, 97년에는 야후 재팬이 일본 자스닥에 상장된다. 99년 말 소프트뱅크의 야후 주식 보유 총액은 초기 투자액의 360배인 1조 4,586억 엔, 같은 시기 야후 재팬 주가는 주당 1,050만 엔까지 치솟았다.


이렇게 세계 IT분야 전시·출판의 수장에 이어 이제 인터넷 부문까지 성공 반열에 들어섰음에도 이어 그는 미디어산업까지 진출한다. 역시 상대는 1등. 당시 세계 최대 미디어 기업이었던 루퍼트 머독 회장의 뉴스코퍼레이션이었다. 머독과 함께 일본 내 위성 방송사업까지 사업 범위를 넓힌 데 이어 이후 M&A를 통해 테크놀로지 분야의 기업들까지 보유하게 된다. 말 그대로 ‘디지털 인프라‘라 할 수 있는 거의 전 분야를 그의 손에 거머쥔 것이다.

SoftBank Group History

당시 전 세계적인 인터넷 열풍의 바람을 등에 업고 그가 인수한 회사들의 가치가 천정부지로 올라가면서 심지어 2000년 초 그의 자산 규모는 빌 게이츠와 어깨를 나란히 할 수준이었다. 30대 외 40대, 그의 인생 50년 계획은 그렇게 지켜졌다. 2000년 3월, IT 업계의 대형 지각 변동이 있기 전 까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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