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신 5주
올해 3월 말 결혼식을 치르고 4월의 삼분의 일을 신혼여행지에서 보내고 돌아왔다. 신혼여행은 남편과 내가 사회생활을 시작하고 가장 길게 대한민국을 떠난 기간이었다. 여행지는 그리스로 멀리 떠나온 만큼 우리 부부는 새로운 풍경에 감탄할 수 있었고 날씨가 좋으면 좋은 대로 비가 오면 비가 오는 대로 하루하루를 소중히 보냈다.
그리고 돌아온 서울에서 신혼생활이 시작되었다. 결혼 한 달 전부터 같이 살기는 했지만 그때는 결혼 준비하랴 청첩장을 나누어 주러 다니랴 집에 있는 시간이 많지 않았다. 그래서 신혼여행 후 4월부터 본격적으로 결혼 '후' 생활을 체감하기 시작했다. 퇴근 후 평일에는 저녁식사를 직접 만들어 먹으려 노력했고 삼사일에 한 번씩 빨래를 하고 각자의 짐을 정리했다. 주말에는 양가에 한 번씩 다녀오고 근교로 콧바람을 쐬고 왔다. 피곤하기도 했지만 혼자 살다가 둘이 사는 재미를 알아가는 즐거움도 있었다. 그렇게 4월을 보내고 나니 1년 중 날씨가 가장 좋아 내가 제일 아끼는 달인 5월이 되어 있었다.
나는 비교적 생리주기가 규칙적인 편이었는데 5월에 예정된 날짜에서 열흘이 지나도 생리를 시작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더군다나 속이 메스껍고 평소에 좋던 입맛이 없어지자 임신을 어렴풋이 의심하기 시작했다. 혹시 모르니 테스트를 해보자 싶어 회사 1층에 있는 약국에 내려가 임신 테스트기와 임신이 의심될 때 먹어도 되는 속이 울렁거리지 않는 약을 샀다. 그날 회사에서 나의 신경은 온통 가방 안 테스트기에 가있었다. 그래도 중요한 일은 남편이 있을 때, 집에서 마음에 준비를 하고 해야 할 거 같아 꾹꾹 참고 집까지 갔다. 설명서를 읽고 한 동작 한 동작 테스트를 시행했다. 두 줄이면 임신 가능성이 있다는 부분을 읽고 테스트기를 봤는데 당황했다. 테스트기가 임신을 나타내고 있었다.
다음 날 바로 회사를 마치고 남편과 산부인과 병원을 갔고 초음파로 '그 존재'를 확인했다. 2cm도 안 되는 '배아'와 아기집을 보았다. 임산부 수첩과 임신확인서를 받고 그 날 찍은 초음파 사진도 받았다. 이날 임신진단서를 발급받으면서 진료의사가 분만예정일을 작성해 주었는데 그 날짜를 기준으로 아이의 기원이 결정되었다. 이때 결정된 아이의 주수는 5주 차였다. 초음파를 통해 본 손톱만 한 존재는 이때부터 우리의 삶을 지배하기 시작했다.
원하고 바라던 임신이었다면 기쁘고 벅찬 감정이 들었을 텐데 나와 남편의 경우는 이제 막 결혼생활에 적응을 하고 한 숨 돌리나 했는데 새로운 스테이지에 올라간 비무장된 게임 캐릭터처럼 어리둥절했다. 임신을 확인하고 나서부터는 몸에 새로운 증상이 나타날 때마다 하나하나 검색해 가며 별의별 임신 초기 증상이 다 있구나 깨닫기 시작했다. 특히 아침에 심한 입덧으로 속이 메스껍고 울렁거리면서 매일매일 일어나서 출근하는 것 자체가 고역이었다. '아이'라는 존재로 인해 기쁘다거나 행복하다거나 즐겁다거나 하는 느낌이 전혀 없는 나 자신이 괜찮은 걸까 고민하기도 했다. 아이와 나의 물리적 거리는 어느 누구보다 가까웠지만 심리적 거리는 가늠하기 힘들 정도로 멀었다.
결혼식 날 남편의 지인이 축가로 윤종신 가수의 '오르막길'을 불러주었다. 첫 소절부터 가사는 꽤나 현실적이다.
'이제부터 웃음기 사라질 거야 가파른 이 길을 좀 봐 그래 오르기 전에 미소를 기억해두자
오랫동안 못 볼 지 몰라
완만했던 우리가 지나온 길엔 달콤한 사랑의 향기 이제 끈적이는 땀 거칠게 내쉬는 숨이
우리 유일한 대화 일지 몰라'
결혼식 날 이 노래를 듣고 울 뻔했다는 친구들이 있었는데 기혼자에 아이가 있는 친구들이다. 나도 남편도 이제 아이라는 거대한 산을, 그 오르막길을 오르게 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