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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육아휴직. 아이와의 순간을 남깁니다.

선생님 잠시 접고, 엄마로. 출산장려 기록.

by 아샘

둘째를 임신하면서 글을 멈췄다.

글도 멈추고 책읽기도 멈추고.

잠깐 주식에 열심이었다가,

7월 초 둘째를 출산하고 난 후 신생아를 키우다보니

글, 책, 주식, 뭐든 올 스톱하고 육아에만 열중하고 있는 요즘이다


갓생 사는 사람들 보면 4시간씩만 자고 새벽에 일어나서 글쓰고 책도 읽고 하던데..

잠이 부족하고 육퇴 후 드디어 잠깐의 1-2시간 짬이 나면 냅다 누워버린다

임신 때는 애기 낳으면 1초도 쉴 수 없으니 최대한 방탕하게 살련다 라는 합리화로

아직 아기가 태어난지 100일이 채 안되었으니 몸조리 해야지! 라는 합리화로

아무것도 안했었는데

이제 다시 글을 시작해보자라는 모종의 마음 속 동기가 일어

아기띠에 자는 아기를 품고 (캥거루마냥) 노트북을 키고 앉아 이 글을 적고 있다


22년 6월부터 24년 2월까지 첫째 육아휴직을 했었는데

다시 25년 6월부터 26년 2월까지 둘째 육아휴직이 시작되었다



유치원 선생님으로서의 삶은 잠시 접어두고 엄마라는 직업에 올인해야 할 때다

첫째 때의 육아휴직을 돌아보면,

'유아교육이지만 영아보육도 얕게나마 공부했었고 같은 아기니까 남들보단 잘하겠지'라는

막연한 생각에 시작했던 육아가

막상 닥치고 보니 너무나 어렵고 무지한 영역임을 알게 되어

꽤 당황했었고 힘들었었다



첫째는 순했고, 예뻤지만

아무 소통 없이 조용한 집. TV도 없는 적막한 집. 남편 퇴근 전까지 아기와 나 딱 둘만 있는 집.

자유롭게 나갈수도 없는 처지가 스스로 처량하고 힘들게 느껴지기도 했다


나는 유아교육자로 아이들과 교실에서 놀이하고 배워가는 것은 즐겁지만

육아는 내가 즐길 수 있는 영역이라기엔 조금 버겁구나를 느꼈다


하지만,

이번 나의 육아휴직은 이전과 달리 혼자가 아니다

하루종일 종알거리는 첫째가 있기 때문.

혼자 둘을 챙기려니 힘에 부치고 케어가 안되어,

남편도 출퇴근 전후로 육아에 참여하고 정부지원 돌봄선생님도 함께 하고 있다.

그러다보니 두번째 육아휴직은 현재 둘째 72일차에 느끼는 바

좀 더 재미있다. 앞으로도 재밌을 것 같고 아주 다채로울 것 같다.


첫째 육아휴직 때는 외로워서 힘들었는데

이젠 제발 외롭고 싶어지지 않을까- 싶기도 하고ㅋㅋ




줄줄줄 장황했는데

나를 자리에 앉게한 모종의 동기는 첫째의 등원길이었다


남편이 차려준 아침을 (항상 감사를)

다같이 맛있게 먹은 후 씻기고 옷 입혀주고 신발을 스스로 신을 수 있게 했다.

식사시간부터 자는 둘째는 여전히 아기띠에 안고 첫째 손을 잡고 어린이집으로 출발했다.

어제 비가 많이 오더니 오늘은 흐려도 날이 선선했고 바람이 좋아,

바람과 계절, 구름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바람이 너무 좋다! 이제 여름이 다 갔나봐"

"엄마, 이제 가을이 다 왔대?"

"그런가봐 가을이 진짜 이제 거의 다 왔나보다"

"그럼 지원이도 큰 거야?"

"그렇네, 여름이었는데 가을이 되었으니까 우리 지원이도 한 뼘 더 자란거지~"

"맞아 지원이 이제 어린이야. 가을 다음엔 뭐가 와? 여름이 또 와?"

"가을이 가면 겨울이 오지. 겨울 다음에는 봄이 오고 봄 여름 가을 겨울은 항상 순서대로 와"

"겨울은 추운 겨울이야?"

"맞아 가을에 바람이 점점 더 차가워지면 겨울이 와. 산타할아버지도 와!"

"그러면 구름도 바껴?"

"어, 아니~ 구름은 계속 있어 모양만 바뀌지 모든 계절에 다 있지"

"근데 왜 당근구름이 없지? 당근구름이 있었는데 지금은 왜 없을까?" (주황구름이 당근구름이다)

"당근구름은 해질녘에 있지! 지금은 흐리긴 하지만 아침이고 낮이라 당근구름은 없어. 대신 비가 오려나 하얗고 회색 구름이 하늘에 가득 차있네"

"우리 구름보러 가자!"

"그래 우리 맨날 구름 보러 가는 자리로 가자! 구름 보고 어린이집 가자!"



이제 막 38개월. 세 돌을 막 지난 한국나이 4살, 만 나이 3살 아이와 하는 이야기는 즐겁다

세상을 알아가는 과정들이 아이의 말 속에 다 들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네가 세상을 알아가는구나!

네가 발견한 것들이 머리 속에서 이렇게 얽혀서 이야기가 만들어지는구나!


더운 여름을 온 몸으로 느끼고 이제 가을 바람을 맞으니 계절이 간 만큼

본인도 자랐다고 생각하나보다

그게, 어린이집에서 들었던 말이든 책에서 보았던 말이든

자신의 것이 되어 상황에 적절하게 적용한다는 게 재밌고 기특하다

스스로 만들어낸 말이라면 그건 더 놀랍고.


이렇듯 아이들을 교육하고 양육하는 즐거움을 이렇게 마음껏 누려야 한다.

기록하고, 웃고, 함께하는 순간들을 진정으로 재밌어하면 선생이든 부모든 노력의 열매를 맛본 것 같아, 키울 맛이 난다

'말하는 거 진짜 웃기네' 하고 그냥 웃어 넘기기보다는

이야기를 만들고 논리를 쌓아가는 어린이의 보석과 같은 말들을 탐닉하길 바란다

얼마나 즐거운지!



조잘거리는 첫째와 오른손을 잡고,

가슴팍에서 자고 있는 둘째의 조그마한 손을 남은 왼손으로 잡았다.

1시간 전부터 아기띠에서 자고 있어 숙면에 취했는지 미동도 없이 가만-

부드러웠다.


갑자기 그때 글을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양 손에 조금 자란 아기, 막 태어난 아기의 부드러운 손을 잡으니,

마구마구 행복해지며 내게 주어진 육아휴직의 소중한 순간을 놓치지 말아야지싶었다.

그래서 앉았다.



두번째 육아휴직을 시작했을 때,

그리고 하루 3시간 밖에 못자던 신생아 시기에는

'왜 나만 애 봐야 되는거야? 낳고싶어하던 건 남편인데 나만 집에 박혀있잖아' 라는

못난 생각이 사실 들기도 했다.



하지만 오늘 돌아보니,

일하면서 아침밥 차려주고 애기 목욕도 시켜주고 나가는 남편과

세상에서 제일 예쁜 첫째 아들

너무너무 귀여운 둘째 아들을 가만히 보고 있자니

뭐, 이러면 괜찮잖아? 행복하잖아? 하는 생각이 드는 것


행복은 찾아가는 거라더니 진짜인가보다.

일상을 밝은 마음가짐으로 보니 행복이 주변에 산재해있다

그 행복을 손쉽게 찾게 해준 남편과 아들들, 특히 첫째 아들에게 무한 감사를!



엄마라서 여자라서 육아휴직한다 라고 생각하지 않고,

육아휴직을 할 수 있는 좋은 조건이 나에게 주어졌음에 감사하기로.

엄마임에 누릴 수 있는 오늘 아침과 같은 소중한 순간들을 평생 잊지 않기로-

그리고 남편에게 공유해줘야지

나만 느끼기 아까우니까



나의 사랑스러운 아들은 실컷 구름구경을 하고는

선생님한테 커피를 사드리고 싶다며, 가장 좋아하는 파란색 라벨이 붙은 커피를 꼭 쥐고 등원했다

다른 사랑스러운 아들은 아무것도 모른채 글이 끝날 때 까지 콜콜 잘도 잔다

앞으로 아이와 지내며 발견할 보석같은 순간들을 남기려한다

아이들은 너무나 순수하고 예뻐서 하루에도 '순간'들은 몇 번이고 찾아온다

놓치지 말고 열심히 담아야지

그래야지!



덧. 손 잡고있는 순간이 좋아 사진으로 남기려니 아들이 묻는 말

"엄마 사진 왜? 나 예뻐서?"

한참 웃고, 그래 너 예뻐서! 내 예쁜 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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