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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AM Aug 07. 2021

할머니의 모자

눈이 보이지 않눈데도 계속 거울을 보았다...




알 수 없는 행동들






어느 날부터 인가 할머니는 거울 앞에

서있는 시간들이 많아진 거 같아 보였다.

고개를 기웃기웃 거울 앞에서 한참을 서있었다.


이 모자를 쓰기도 하고 저 모자를 쓰기도 하고

할머니들 사이에서 예쁜 모자 쓰기가

유행 이기라도 한 건지

모자에 신경을 아주 많이 쓰는 것처럼 보였다.






어뗘?







한날은 겸연쩍게 내 방문을 살며시 열면서 할머니는

 "어뗘?"

하고 물었다.

할머니 손에는 두세 종류의

다른 색깔의 모자들이 들려 있었다.



처음엔



심심해서 물어보는 건가?

아니면 관심받고 싶어서 물어보는 건가?

왜 평소에 물어보지도 않던걸 물어보지?


역시나 난 신경질 적으로 할머니한테 똑 쏘아붙였다.

"어디 갈라고? 왜 물어봐 할머니?

할머니 맘에 드는 거 쓰면 되잖아!!"


"야이 그래도 바바 이게 나? 저게나?"








할머니의 볼 수 있는 시간들을 내가
잡아먹은 거 같았다.
더 볼 수 있을 때 더 많은 것들을
보여 줄 수 있었을 텐데 하는 미련..









이때는 진짜 의아했다.

평소에 전혀 물어보지도 않던 할머니가

갑자기 방에 와서 귀찮게 하니

여간 불편한 게 아니었다.


한 해가 지나고 반해가 더 지나서 알았다.

천원짜리 만원짜리를 눈앞에 두고도 구별 못하는

할머니를 발견하고서야 알았다.

한쪽은 아예 실명했고,

나머지 한쪽마저도 아주 흐릿하게

보인다는 것을..


"할머니 다녀왔어"

인사를 할 때도

"네가 누군고?"


하고 멍하니 한참을 바라볼 때 왜 그랬는지.

온갖 그릇에 옷에 지팡이에 고춧가루가 묻어 있어도

왜 닦아내지 못하고 후줄근하게 다닐 수밖에 없었는지 이제서야 이해가 되었다.

그냥 한숨만 멍하니 나왔다.


그렇게 좋아하던 빨간 꽃도

한결같이 고집하던 파란 옥색 옷도

더 이상 볼 수 없어진 할머니 였다.








보이는 세상과 이별할 준비
보고 싶은 것들 미리 다 담아두기
기억하고 싶은 것들 더 넣어 두기
자식들 얼굴 총명히 기억해두기...









황반 변성이라는 병이 진행되는

십 몇 년이라는 시간 동안

할머니는 할머니의 작은 세상과

이별할 준비도 했을 거고

한 번이라도 더 보고 싶은

얼굴들도 있었을 것 같다.



늙으니까 당연히 그러는 거 같고

노화의 자연스러운 일 같아 보였지만

실상은 하루라도 더 보고

한 명의 얼굴이라도 더 보고 싶었을 할머니




자꾸 없어져 가는 시력에 그냥 지나칠 거울도

한번 더 보고

한해 한해 흐드러지게 핀 꽃들도

더 열심히 눈에 담아 놓지 않았을까?




"결혼 언제 해?"


할머니의 이 말에는

이제 두 눈이 다 실명되면 아무도 못 보는데

내가  결혼하는  수나 있겠나?

조금이라도 보일   결혼하는  까진 보고 싶다.

라는 말이 포함돼 어 있다.

아는데도 쉽사리 결정되지가 않는다.

지금도 그렇고..

 








할머니는 눈이 거의 보이지 않았는데도
거울을 보곤 했다.
그리고 여전히 화장실 거울은 깨끗이
닦아 놓았다.








할머니는 눈이 거의 보이지 않아도

거울을 보곤 했다.

선크림도 아주 잘 바르고, 화장도 했다.


마치 거울이 보이는 것처럼

상상으로 옷을 고르고

기억으로 단추를 잠그고 외출 준비를 한다.


그리고 아주 흐릿한 눈 한쪽을 돛대 삼아

병원도 다니고, 교회도 다녔다.






할머니 기억 속엔
내가 어떤 모습으로
기억되고 있을까?






아직도 할머니는

나에게 물어보는 일들이 잦다.


나를 만나는 날이면

그동안 쌓아 두었던

질문들이 쏟아져 나오고

이런 말 저런 말 대잔치가 열린다.


이거 예쁘나?

이거 색깔 괜찮나?

어띠나?

오늘은 일찍 왔네?

내일도 일하러 가나?

이것 좀 바바!


"예뻐! 할머니!!"

"응"

이런 아주 간단한 대답들

한마디 하면 그만이지만

그래도 그렇게 할머니랑 말을 섞는 날엔

할머니가 너무 귀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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