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가 가꾼 마지막 정원
베란다 할머니
할머니는 유난히 베란다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았다.
넓지도 않은 좁은 공간에서 무엇을 그렇게 하는지
부스럭부스럭 오전에 한참을 베란다에 나가서 들어오질 않는다.
외출하다 무심코 밖에서 바라본 1층
베란다에는 식물들이 빼꼼 머리를 내밀고 있었다.
그중에는 꽃도 피어 있었다.
시골에서 할머니와 12살 때까지 함께 살았었다.
엄마, 아빠, 할머니, 할아버지, 동생
이렇게 나까지 포함 여섯 식구가 한집에 살았다.
아빠가 지은 넓은 빨간 벽돌집에서 살았었는데.
사업이 기울어지면서 일찌감치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큰집으로 상경하게 되었다.
언덕 위의 빨간 집
언덕 위의 첫 빨간 벽돌집이라는
별명을 갖고 있던 우리 집이었고,
봄에는 지나가는 차들이 서서 우리 집을
한참 구경하다 돌아갈 정도로 예쁜 집이었다.
울타리엔 장미 넝쿨이 자라고,
봄에는 목백일홍과 서양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고,
가을에는 감나무에 감이 탐스럽게 열려
계절마다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했다.
그런 누구나 다 부러워할 만큼
예쁘게 지어진 집이었지만
항상 어른들은 뭐가 그렇게 바쁜지
우리 집은 나와 동생을 품고 텅텅 비어 있었다.
할머니는 겨울에 잠깐 쉬는가 싶다가도.
항상 일을 했다.
농사일. 집안일
(고추장, 된장, 간장 만들기 등등)
그리고 집에 있던 꽃밭 화단을 가꾸는 일도 했다.
어느 날 보니 보일러실, 화단, 담벼락,
바깥 울타리 담벼락에도
금잔화가 피어 있을 만큼
자꾸자꾸 할머니는 뭔가를 심고 가꾸었던 거 같다.
거대한 정원
지금 생각해 보니 할머니에겐
옛 시골에서의 삶이
거대한 정원을 가꾸는 일이었다.
이때 너무 많은 일들을 해서 일까?
서울에 올라와서도
할머니의 화분 가꾸기는 계속된다.
바쁘게 화분을 돌보고
꽃 피우는 것에 기뻐하는 할머니..
꽃나무, 선인장, 계절꽃 등등
화분의 종류도 다양해서
키우는 방식도 다 다를 텐데 할머니는 잘 가꾸었다.
그 많았던 땅들과 대궐 같은 집들,
계절에는 가장 바빴던 일거리들을
시골에 둔 채 갑자기 올라온 탓일까?
할머니는 올라와서도 뭔가를 계속했고.
항상 이렇게 이야기했다.
" 이제 밭일 안 하니까 속 편해 ~ "
그러면서도 할머니는
베란다에 또 다른 밭을 만들고 있었다.
할머니의 마지막 정원
한해 두 해가 지나고
이제 할머니의 베란다는 깨끗했다.
그 미련들을 다 떨쳐 버리기까지
걸렸던 시간들이었을까?
이제 할머니는 한 개 두 개는 화분을 기르더라도
집착 하리 만큼 식물들을 돌보지 않았다.
오히려 가끔씩 화분은 사 오면
화분 키우기가 얼마나 번거로운데 사왔냐고 성화다.
나에겐
20년 전에도
10년 전에도
우리 할머니는
언제나 똑같은데
이제는 점점 그렇지 않아 보이니
마음이 자꾸 조급해진다.
아마 그때 본 베란다 정원이
할머니의 마지막 정원이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