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앨리스먼로 #책 #소설 #문학동네
「~그렇다면 이 기니를 가지고 가서 사용하십시오.
집을 불태워 무너뜨릴 것이 아니라
그 창문에서 불이 활활 타오르도록 하십시오.
그리고 교육받지 않은 여성의 딸들이
그 새집을 돌며 춤추도록 하십시오.
마차가 지나가고 행상인들이 소리쳐 물건을 파는
좁은 거리에 자리 잡은
그 가난한 집 말입니다.
그 딸들에게 '우리는 전쟁을 끝냈다!
우리는 폭정을 끝장냈다!라고 노래하게 하십시오.
그러면 그들의 어머니들이 무덤에서 웃을 것입니다.
'이것을 위해서 우리는 욕설과 경멸을 견뎌냈다!
새집의 창문에 불을 밝혀라, 딸들아!
활활 타오르게 하라!'」<3기니> p308
앨리스 먼로의 [거지 소녀]를 읽고 있는 나를 보며 딸아이가 내게 물었다.
“엄마, 왜 책 제목이 거지 소녀야?”
“이제 읽기 시작해서 아직 그 이유를 못 찾았네, 다 읽고 얘기해줄게.”
“엄마, 그런데 엄마는 꿈이 뭐였어?”
“난 꿈이 계속 바뀌고 있어, 지금은 경찰대학에 가는 것이 꿈이야.”
꿈이 무엇이었냐고 묻는 딸아이의 질문에 나는 내가 딸아이의 나이였을 때를 떠올려보게 되었다. 아버지가 사업을 부도 내고 집이 경매로 넘어간 후 단칸방에 여섯 식구가 남았던 그때도 그랬고 부도가 나기 전에도
나에게 꿈이 무엇인지 물어봐 주는 어른은 없었다. 난 언제나 동생들을 책임져야 하는 맏이였고 아버지가
세상을 버린 이후로는 빨리 돈을 벌어서 생계에 보탬이 돼야 한다는 실제적인 부담감이 나를 짓눌렀다.
내가 공부를 잘하든 못하든 나의 건강상태가 어떠하든 그 모든 것은 고려의 대상이 될 수 없었다.
상업고등학교를 진학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고 상고에서도 누구보다 더 빨리 취업해서 돈을 벌어야만 했다.
[ “이 타운에서 하수도가 가장 늦게 놓이는 곳은 이곳이 될 수밖에 없을 거야.”
플로가 말했다.
“당연하죠.” 로즈가 차분하게 말했다. “이곳은 노동 계층 거주 지니까요.”
“노동하는 계층이라고?” 플로가 말했다.
“여기 사람들이 달리 방법이 있으면 노동을 하겠니?” ] p130~131
몰락해버린 빈민가 헨리티에서 태어나 병든 아버지와 새엄마 그리고 의붓동생과 살아야 했던
[거지 소녀]의 작중 인물 로즈에게도 미래를 꿈꿀 수 있는 여유는 주어지지 않았다. 가난한 환경 속에서 그저 공부를 잘해서 장학생이 되는 방법밖에는 없었고 장학생으로 대학에 진학한 후에도 로즈는 생활비를 구할 수 있는 아르바이트 자리를 찾아야만 했다. 그런 그녀에게 부잣집 아들인 패트릭의 청혼은 혼자서 생존을 향한 불안한 투쟁을 지속해야 하는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로즈는 패트릭을 사랑하지 않는다는 걸 알면서도 왕의 선택을 받아들여야 했던 거지 소녀처럼 패트릭의 구혼을 거절할 수 없었다.
[ ~하지만 애나는 칭얼거리고 패트릭의 저녁식사는 준비가 되지 않은 채로
버스를 타고 집에 돌아가는 길이면 로즈는 왜 자신은 항상 잘못된 자리에
있는 것 같은지 의문이 들었다. ] p227
하지만 왕과 결혼을 했다고 해서 거지 소녀가 거지였던 과거를 버릴 수 없었던 것처럼 로즈는 빈곤층 출신인 자신이 갖는 수치심과 패트릭에게 종속된 존재에 불과하다는 자신의 현재를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녀는
끊임없이 자신의 불안감을 잠재울 수 있는 방법들을 모색하지만 다른 이성과의 불륜도 그녀를 꿈꾸게 만들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그녀는 패트릭을 떠남으로써 그제야 자기 자신으로서의 삶을 시작할 수 있었다. 물론 새로운 삶은 언제나 불안하고 위태로웠지만 로즈는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자신이 완벽하지 않지만 자신의 삶을 스스로 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게 되었다.
그저 주어진 삶을 받아들이기만 하다가 요양원에 입원해 생의 마지막을 기다리는 새엄마 플로를 보면서 로즈가 느끼는 감정은 안타까움이다. 단 한 번 뿐인 삶의 기회를 나로 살지 못하고 누군가에게 종속된 상태로 마감하게 된다면 그 마지막 순간에 무슨 생각을 하게 될까?
이 책을 다 읽고 난 지금 나는 딸아이에게 이렇게 말할 것이다.
“이 책은 자기 자신으로 살지 못하고 누군가의 아내, 엄마, 할머니로 살아야 했던 여자들에 관한
이야기야. 커서 무엇이 되고 싶다는 꿈을 꿀 수 없었던 여자들에 관한 이야기야.
엄마처럼 넌 빨리 커서 돈을 벌어야 한다고 꿈을 꿀 기회조차 빼앗긴 여자들에 대한 이야기야.
우리 아가는 그러니 하루에 꿈이 열두 번 바뀌어도 괜찮으니 마음껏 꿈꿨으면 해.”
버지니아 울프가 [자기만의 방]에서 여성이 주체성을 갖기 위해 ‘독립적인 공간’과 ‘3기니’가 필요하다고 주장한 1929년에서 약 백여 년의 시간이 흘렀다. 어린 시절 내가 가질 수 없었던 꿈 꿀 수 있는 자유를 찾기에
지금의 나는 늦지 않았다. 뒤늦게 만나는 자유 속에서 나는 남은 시간 동안 무수히 많은 것을 꿈꿀 것이다. 1929년의 버지니아 울프와 1978년의 앨리스 먼로는 “딸들아, 꿈꾸기를 멈추지 말아라, 현실의 족쇄에 얽매이지 않고 꿈꾸는 동안 너는 언제나 너일 수 있을 것이다.”라고 말하고 있다. 이번 대선의 실패를 실패로 받아들이지 않고 다시 시작할 수 있는 경기로 받아들이는 개혁의 딸들이 있는 한 지금의 대한민국은 잠시 암흑에 잠식되겠지만 다시 푸른 하늘을 되찾게 될 것이다. 나는 그 희망을 꿈꾸는 것을 멈추지 않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