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로써 살 것인가? 사람으로 살 것인가?

#마리아 바르가스 요사 #도시와 개들 #책 #소설 #문학동네

by 묭롶

< 곤충학자의 벼룩 실험 >



[ ~그는 결코 항상 폭력을 통해 타인을 지배하는 재규어처럼 될 수는 없었다.

또한 다른 학생들이 자신을 희생양으로 삼지 못하도록 약삭빠르게 굴고

연기에 능한 알베르토처럼 될 수도 없었다.

그들은 그가 어떤 사람인지 즉시 알아보았다.

그는 자신을 방어할 힘도 없는 나약한 노예였다. ] <도시와 개들> p202


미국의 곤충학자 루이저 로스차일드 박사는 벼룩을 뚜껑이 닫힌 유리용기에 가두는 실험을 했다. 처음 유리 용기에 갇힌 벼룩들은 탈출을 위해 계속 뛰어오르며 닫힌 뚜껑에 연신 부딪히면서 탈출을 시도했다.

하지만 벼룩들은 시간이 지나 막상 뚜껑을 열어 놓은 상태에서도 갇혀 있던 높이만큼만 뛰어오를 뿐 그 이상을 뛰어 용기 바깥으로 나갈 수 없었다. 박사가 스스로 탈출하지 못하는 벼룩들이 담긴 용기 아래를 알코올

램프로 가열하자 벼룩들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우리용기의 높이를 훌쩍 뛰어넘어 탈출했다.




< 개가 아닌 사람으로 살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되는가? >



킨: 우리는 겁쟁이라서 영웅 역할을 하고,

사악하기에 성인 역할을 합니다.

우리는 이웃을 죽이려 안달하기에 살인자 역할을 하고,

선천적으로 거짓말쟁이라서 연기를 합니다.


장 폴 사르트르



[도시와 개들]은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의 첫 소설이다. 그가 왜 이 작품을 자신의 첫 소설로 쓸 수밖에 없었는지에 대한 답은 바로 이 책 안에 있다.

내가 지금까지 반백 년에 가까운 삶을 살면서 지켜본 인간의 삶은 정말 소수를 제외하고는 누구나 저마다의 제한된 한계(상자) 속에서 주어진 개의 삶을 살아간다. 나 역시 지금까지의 삶을 되돌이켜 봤을 때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은 극히 제한적이었다. 영화 스릴러물 중 어딘지 모르는 장소에서 눈을 뜬 주인공이 자신에게 주어진 상황을 인지한 후 지극히 제한적으로 주어진 결정권 속에 자신의 목숨을 걸어야 하는 경우처럼 나라는 존재는 어느 날 국적, 성별, 가정환경이 결정된 상자 속에서 태어났다. 로스차일드의 벼룩 실험처럼 나는 뚜껑이 닫힌 상자 속에서 태어난 것이다.

자신이 속한 제한적인 세계를 상자로 인식하는 가정은 1930년, 잡지 <<조선>>에 장편소설 [십이월 십이일]을 자신의 첫 소설로 기고한 李箱을 떠올리게 한다. 1963년 발표된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의 첫 소설 [도시와 개들]은 李箱의 첫 소설 [십이월 십이일]과 닮아 있다.

상자 속에 담긴 ‘李’(나의 문학적 형상화)의 이야기를 관찰한 결과를 소설로 형상화해낸 인간 김해경(李箱)과 [도시와 개들]을 통해 제 각각의 상자에 갇힌 인간(재규어, 시인, 노예, 마리아 등)의 이야기를 한 권의 책에 배열해 놓은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가 이러한 결과물을 통해 얘기하고 싶은 것은 바로 인간이다. 그러하니 필멸의 인간으로 운명을 받아들여 패배한 채 죽어야 하는가를 묻는 [십이월 십이일]과 결국 사람이 되지 못한 채 개로 살다 끝이 나고 마는가를 묻는 [도시와 개들]을 통한 작가의 질문은 두 작가의 공통된 고민으로 보인다.


[도시와 개들]은

재규어(범죄자 형과 범죄를 묵인하는 엄마라는 불행한 가정환경이라는 상자),

시인(바람둥이 아버지이지만 재력을 지닌 아버지에게 굴복하며 어머니에게 상처를 주고받을 수밖에 없는 감정의 상자),

아라나(남성성을 강요받아 강제로 군사학교에 입학할 수밖에 없는 강제성의 상자),

마리아(이모 집에 얹혀살며 시집을 잘 가야 미래를 설계할 수 있는 빈곤의 상자) 등의 저마다의 상자에 갇힌 인물들의 이야기를 한 권의 책에 담고 있다. 작중 인물들은 모두 어쩔 수 없는 상황 속에서 군사학교에 입학했고 남자 친구를 선택했으며 어쩔 수 없이 개로 살았다. 이러한 갇힌 상자라는 구조 속에서 약자는 강자에 의해 개로 불리고 강자는 더 높은 강자의 강제 속에 그의 개가 된다.



[ ~잘 들어, 염병할 암캐야. 내가 정렬하고 서 있을 때는 귀찮게 굴지 마,

나는 네 주인이지 잡종 하인이 아니라는 걸 잊지 말라고,

내 앞에 장교가 있을 때는 내 신발을 절대로 물어뜯지 마.

암캐는 소리 없이 떨었어.

나는 암캐를 풀어준 다음에야 비로소 내가 암캐에게 무슨 짓을 했는지 깨달았지. ] p342


[ “모두가 규정을 믿네.” 대위가 말했다.

“하지만 문제는 그걸 해석할 줄 알아야 한다는 거야.

군인들은 무엇보다 현실주의자가 되어야 하고, 우리는 상황에 따라 행동해야만 하네.

~그러니까 상황에 맞게 법을 적용해야 하는 거지.” ] p517


학교와 가정 그리고 사회가 당연히 지켜야 하고 유지되어야 하는 규칙과 규범 그리고 예의범절에 대한 위반은 강자에겐 당연히 허용되는 권리이지만 그 밑의 개에게는 처벌로 돌아온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작중 인물 재규어는 이 작품 속에서 유일하게 전복적인 인물이다. 상급생들이 선배라는 이유로 폭력을 정당화할 때 강자라는 입장으로 휘두르려는 폭력에 맞서 더 강한 폭력으로 상급생들을 응징했고 동급생 시인(알베르토 별명)이 자신을 학교 당국에 고발하여 모든 학생들에게 왕따를 당했을 때도 시인의 잘못된 행동을 동급생들에게 폭로하는 대신 그 스스로 모든 것을 감당했다. 범죄자인 형과 도둑질로 생계에 도움을 주는 자신을 부추기는 엄마의 행동 속에서도 자신의 주체적 결정권을 의심하지 않은 유일한 인물이 바로 재규어이다. 자신의 한쪽 다리를 잃게 만든 고래를 찾는 것을 포기하지 않는 [모비딕]의 에이헤브 선장과 같은 재규어에게서 나는 주체적 삶을 살아가는 인간으로서의 희망을 품게 된다.





<3.1절과 우크라이나>


자신의 첫 소설로 자전적 내용을 택할 수밖에 없었던 1930년대의 작가 李箱과 1963년의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가 품었던 한계적 상황에 처한 인간의 선택지에 대한 고민은 시대를 뛰어넘어 2022년의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이어진다.

물론 아무 생각 없이 그냥 개로써 산다면 이러한 고민을 할 이유가 없겠지만 일제의 살인적인 폭압 속에서도 대한독립 만세를 외쳤던 선열들을 떠올려 볼 때 부당함과 부정부패를 그냥 눈 감고 넘기기에는 내 피에 흐르는 호국 영령들의 피가 너무 뜨겁다. 강국 러시아가 침공해왔으나 즉시 항복하리라는 많은 나라들의 예상과 달리 무기가 없이도 싸우겠다고 자원하는 무수히 많은 우크라이나 사람들처럼 현실이 옥죄어 오는 상황 속에서도 닫힌 뚜껑을 뚫고 튀어 올라야만 하는 존재가 인간이라는 사실을 나는 [도시와 개들]을 통해 다시금 깨닫게 된다. 물론 부동시로 군을 면제받은 누군가는 이러한 깨달음을 절대 깨닫지 못하겠지만 그러한 깨달음을 느끼는 사람들이 더 많아질수록 이 세상은 더 살만 한 곳이 될 것이다.

과연 우리가 꽃피는 봄을 맞이하게 될지 아니면 잃어버린 조국의 현실에 암담해하며 피를 토하던 일제 강점기의 선열들이 맞은 3월을 다시 맞게 될지 걱정이 많은 요즘이다.

내가 속한 상자가 넓어질수록 내 아이가 살아갈 세상이 넓어지고 또 그 선택지도 더 많이 주어지지 않을까.

희망을 갖고 싶은 오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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