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송] 이방인에 대한 사회적
사형선고.

#프란츠카프카#책 #소설 #문학동네

by 묭롶



프란츠 카프카는 자신의 유고(遺稿)를 불태워 달라는 유언을 친구인 막스 브로트에게 남겼지만 브로트는

약속을 지키지 않고 카프카의 미완성 소설들을 출간했다. 그렇게 카프카의 미완성 소설인 [소송]은 1925년 출간되었고 출간 당시 브로트가 자신의 의중대로 편집한 초판본 대신 카프카가 [소송]을 쓸 당시 의도했던

바에 가장 근접하고자 연구했던 여러 버젼의 재판 본들이 계속해서 발간되고 있다.


1925년 초판이 발간된 후 10년이 지난 1935년에 베를린의 유대인 출판업자 살만 쇼켄이 발행한 [소송]의

2판 출간 이후 카프카 연구자들은 [소송]의 부록으로 카프카가 남긴 ‘미완성 장’들과 ‘원고에 줄을 그어 지운 구절들’에 주목했고 3판 후기부터는 기존의 브로트가 편집한 장들의 순서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었다. 카프카의 원고를 토대로 한 작품의 비평판은 1982년부터 프랑크푸르트 피셔 출판사에서 발간되기 시작했다. 최근에는 1997년 롤란트 로이스에 의해 [소송]의 또 다른 판본이 출간되었다.


[소송]은 왜 계속해서 다시 해석되는가? 아마도 그 이유는 내가 이 책을 읽고 느끼는 풀리지 않는 의문과도 맞닿아 있을 것이다. 가장 큰 이유는 [소송]이 미완성 작품이기 때문에 애초에 프란츠 카프카가 설계했던

소설의 전체를 완벽하게 재현해낼 수 없다는 점에 있다. 원작자가 그리지 못한 나머지 여백은 해석하는 이와 읽는 이에 따라 전혀 다른 [소송]의 판본을 낳는다.

판례가 있지만 상황의 변수에 따라 내려지는 판결문처럼 [소송]은 하나의 틀을 주고 그 나머지 해석의 여지를 독자의 몫으로 남겨 놓는다.




내가 읽은 카프카의 [소송] 속 작중 인물 요제프.K와 알베르 카뮈의 [이방인] 속 뫼르소의 죽음은 사회에

의해 사형당했다는 공통점을 지닌다.



{ 그가 한 번도 보지 못한 판사는 어디에 있는 것일까?

그가 아직 이르지 못한 상급 법원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

그는 두 손을 쳐들고 손가락을 쫙 펼쳤다.

그러나 K의 목에 한 남자의 양손이 놓이더니 동시에 다른 남자가

그의 심장에 칼을 찔러 넣고 두 번 돌렸다.

K는 흐려져가는 눈으로 두 남자가 바로 자기 눈앞에서 서로 뺨을 맞대고서

최종 판결을 지켜보는 것을 보았다.

“개 같군!” 그가 말했다.

그가 죽은 후에도 치욕은 살아남을 것 같았다. } p 287



{나는 마치 저 순간을,

내가 정당하다는 것이 증명될 저 새벽을 여태껏 기다리며 살아온 것만 같다.

~내가 살아온 이 부조리한 생애 전체에 걸쳐,

~다른 사람들의 죽음. 어머니의 사랑,

그런 것이 네게 무슨 중요성이 있단 말인가?

너의 그 하느님, 사람들이 선택하는 삶, 사람들이 선택하는 숙명,

그런 것이 내게 무슨 중요성이 있단 말인가?

~다른 사람들도 또한 장차 사형을 선고받을 것이다.

너 역시 사형을 선고받을 것이다.

네가 살인범으로 고발되었으면서 어머니의 장례식 때

눈물을 흘리지 않았다는 이유로 사형을 받게 된들

그것이 무슨 중요성이 있다는 말인가?} [이방인] p157~158




[소송]의 작중 인물 요제프.K는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은행의 간부직원이다. 그는 자신의 일과 삶에 자신이

있었지만 그의 서른 번째 생일날 아침 불시에 자신의 방에 들어와 자신의 아침을 먹어 치우는 법원 관리들에 의해 자신의 피소 사실을 통보받게 되었다. 그는 누가 자신을 왜 형사 고소했는지 알 수가 없었고 그걸 알려고 하지만 법원은 다가갈 수 있는 실체도 행정적인 절차도 존재하지 않았다. 이제 그는 실체가 없지만 그의 삶 곳곳에 침투하는 법원을 의식하게 되었다. 그는 자신을 변호하고자 하지만 어떠한 변호사나 어떠한 절차도 자신에게 도움이 될 수 없다는 사실을 자각하는 순간 계약했던 변호사에게 계약해지를 통보했다. 이후

그는 법원의 행정적인 절차에 협조하지 않고 주체적으로 살아가겠다고 결심하지만 법원은 그러한 그를 법원 관리를 통해 채석장에서 사형시켜버렸다.


알베르 카뮈의 [이방인]에서 뫼르소는 충동적으로 해변에서 시비가 붙은 아랍인을 권총 살해하지만 법정은

그의 실제적인 살해행위가 아닌 어머니의 사망 이후 애도를 표시하지 않고 여자 친구와 수영을 하러 간 그의 행동을 근거로 들어 그에게 사형을 선고했다. 뫼르소는 자신의 실질적인 죄에 대해서 내려지는 사형이라면 받아들일 수 있지만 사회 보편적 제도에 의해 판결되는 사형은 거부한다면서 부속 사제의 회개 권유를 거부했다. 그는 자신에게 구형되는 사형의 정당성에 대한 주체적 판단 속에 사회에 의한 [소송] 속 요제프.K와 같은 사형 대신 그 스스로 기꺼이 사형을 받아들임으로써 자신의 마지막 순간까지 ‘이방인’의 길을 포기하지 않았다.


물론 요제프.K와 뫼르소는 사회적인 배경이나 성격면에서는 닮지 않았다. 노동자 계급인 뫼르소와 달리

요제프.K는 소송만 아니었다면 부행장을 거쳐 행장으로 승승장구했을 인물이다. 그의 처형은 사회 제도에

순응하지 않는 자에 대한 사회적 죽음을 상징적으로 드러냄으로써 사회 제도에 의한 사형선고가 그 누구를 예외로 하지 않음을 우리에게 보여준다.





{ “그렇지만 저는 죄가 없습니다.” K가 말했다.

“뭔가 잘못된 겁니다.

도대체 인간이라는 사실이 어떻게 죄가 될 수 있단 말입니까?

~”그건 맞는 말입니다.” 신부가 말했다.

"하지만 죄 있는 사람들이 늘 그런 식으로 말하지요.” } p264


{~문지기는 법에 의해 그 직위에 임명되었고, 따라서 그의 존엄성을

의심하는 것은 법은 의심하는 것과 같다는 것이지요.

“저는 그 의견에 동의할 수 없습니다.” K가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 } p277




영화 <매트릭스>에서 주인공 네오가 현실에서 같은 장면이 반복(골목길의 고양이)되는 현상을 목도하고서 자신이 인지하는 현재에 의심의 씨앗을 싹틔웠던 것처럼 승승장구하며 살아왔던 현재에 의문이 들기 시작한 순간 요제프.K의 삶에 법원이 소송으로 개입을 시작했을 것이다. 이미 기계를 위한 건전지로 소모되는 자신의 실체를 목도한 네오가 진실을 택하는 빨간 약을 선택했던 것처럼 현재에 의심을 품기 시작한 요제프.K가 그전과 같은 삶을 살 수 없다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 법원이 일단 고소를 제기하면 피고인의 죄를 확신하는 것이며,

법원이 그런 확신을 철회하게 만들기가 정말 어렵다는 겁니다.

~”법원이 그런 확신을 철회하는 일은 절대로 없어요. } p184


{ ~그러나 무죄판결을 받은 사람이 법원에서 집에 돌아와 보니,

벌써 위임을 받은 자들이 그를 다시 체포하기 위해 와 있는 일도 역시 가능합니다.

그렇게 되면 당연히 자유로운 삶도 끝나게 되지요.” } p196


영화 <매트릭스> 속 네오가 진실을 각성한 그 순간부터 기계들에게 쫓겼던 것처럼 요제프.K와 뫼르소는 안정적인 시스템의 유지를 위해 제거돼야 하는 버그(카프카의 [변신]속 그레고르처럼)와도 같다.

영화 <매트릭스>에는 구원자인 네오가 있지만 현재라는 시스템(사회) 속에서 이 시대를 살아야 하는 수많은 요제프.K와 뫼르소들은 변호사도 구원자도 없다. 사회제도라는 유기체 속에서 자신의 안위를 위해 이방인을 색출해내고 고발하는 세상 속에서 어떻게 살아내야 할지를 고민해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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