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설 #필립 로스 #울분
얼마 전 시티은행이 희망퇴직 희망자에 대해 5년 이상 퇴직이 남은 직원에게 일시금으로 7억의 퇴직금을
지급하기로 했다는 기사를 읽게 되었다. 7억을 일시금으로 받는다 손 치더라도 2억 정도는 소득세로 납부를 해야 할 것이고 연봉 5천을 기준으로 10년의 급여를 일시급으로 지급했다는 계산이 나오는데 과연 그 돈을
받고 조기 퇴직을 해서 앞으로의 삶을 꾸려갈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갑론을박으로 근무하는 사무실이 한동안 시끄러웠다.
시티은행 희망퇴직 7억 지급 못지않게 최근 급여생활자들 사이에는 파이어족이 화제이다. 재직기간 동안
급여를 열심히 모아서 40대에 조기퇴직을 하고 남은 삶은 자신의 행복을 찾자는 파이어족들을 보며 월급에 목줄 묶인 직장인들은 잠시 고개를 들어 과연 그들의 삶이 행복할 수 있을지 생활은 유지가 될 수 있을지를
자신의 상황에 대입해보게 된다.
나 혼자만이라면 파이어족이 아니라 휘발유족이라도 될 수 있겠지만 가족들이 손오공의 여의주처럼 내 목에 구슬꿰미처럼 주렁주렁 매달려 내 목을 조르고 있으니 무얼 할 수 있다는 말인가.
필립 로스의 소설 [울분]의 작중 인물 마커스가 중국 공산당 혁명가를 마음속으로 부르며 견뎌내야 했던 채플시간처럼 나는 스스로는 이 굴레를 벗어날 수 없을 것이다.
{ 그는 자신의 소망보다는 부모의 소망에 부응하여, 결혼을 했고,
자식을 낳았고, 안정된 생계를 위하여 광고계에 진출했다.
~그런 결혼은 그의 감옥이 되었다.
그래서 일을 하는 동안에도,
잠을 자야 할 시간에도 그를 사로잡는 수많은 괴로운 생각 끝에 발작적으로,
고민하면서, 밖으로 나갈 터널을 뚫기 시작했다. } [에브리맨] p 38~39
필립 로스의 2007년 발표한 [에브리맨]에서 작중 인물의 어린 시절 최초의 탈장수술과 신디와의 이혼-> 충수 수술-> 피비와의 결혼과 이혼 -> 스물다섯 살 어린 모델과의 결혼-> 스텐트 삽입 수술-> 세 번째 이혼 -> 스텐트 삽입술 중 죽음에 이르는 과정을 거치며 한 남자의 삶의 전체를 우리에게 보여준 반면 [울분]의 작중 인물인 마커스의 삶은 채 스물을 채우지 못했다.
[에브리맨]이 한 남자의 삶의 일대기적 사건들을 통해 인간이 살아가면서 느끼는 보편의 정서를 우리에게 보여준 반면 [울분]은 서사의 드라마적인 묘사보다는 [에브리맨]에서 발견할 수 없었던 인간의 삶이 세 개의 감옥에 중첩하여 갇혀 있다는 상징성을 발견하게 한다.
1. {~나는 아버지의 무지와 비합리성과 직면했을 때 좌절감에 사로잡혀 울부짖을 수밖에 없었다.
아버지를 죽이지 않으려면 아버지를 떠날 수 밖에 없어요. } p20~21
2. {~나는 ~내 의사에 반하여 기독교 교회에 사십오 내지 오십 분 동안 앉아서 돈하워 박사나 다른
사람의 설교를 들어야 한다는 것이 정당하게 여겨지지 않았다.
관행을 엄수하는 유대인이었기 때문이 아니라 열렬한 무신론자였기 때문에
그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이다. } p90~91
3. { ~총검은 그의 한쪽 다리를 몸통으로부터 거의 절단했으며,
내장과 생식기를 난도질했다. 그때까지 그들이 일주일 동안 살았던
한반도 중부의 거친 능선의 철조망 뒤편참호는 중공군에게 짓밟혀,
사방에 찟긴 주검이 널려 있었다. } p233~234
[울분]에서 작중 인물인 마커스는 삼중 감옥에 갇힌 유형수(流刑囚)이다. 그는 가족이라는 감옥과 그보다
큰 사회(학교)라는 감옥 그리고 죽음이라는 감옥에 갇혀 있다. 그에게 주어진 삶은 죽음이라는 테두리(Dead Line) 안에서 허용된 한정된 공간이 전부이다. 하지만 그 테두리 안에서도 그는 학교라는 사회와 가족(아버지와 어머니)이라는 둘레를 벗어날 수 없다. 울타리 안에 놓인 말이 울타리를 뛰어넘을 수 없듯이 이 감옥을 탈출하는 방법은 죽음뿐이다.
마커스의 아버지는 이러한 도식적 구조를 이해하지 못했음에도 부지불식 간에 아들이 이 삼중 감옥의 구조 속에서 탈출을 감행하는 순간 죽음을 맞게 되리라는 불길한 예감을 느끼고 말았다.
그런 예감에 사로잡혀 아들인 마커스가 집을 떠나 죽음을 맞게 될까 봐 다 큰 아들에게 통금령을 내리는 등
제약을 가하지만 그의 행동은 오히려 아들을 집 바깥으로 내몰게 되었고 아들의 안위를 위해 그를 돌봐 달라고 부탁했던 동급생 서니 코틀러의 제안으로 인해 마커스는 학교에서 퇴학을 당하고 한국전쟁에 징집되어
전사하고 말았다.
짧은 분량의 소설 [울분]을 읽고 나는 필립 로스가 [에브리맨]을 통해 하려던 이야기가 결국 [울분]이었음을 깨닫게 되었다. 아무리 모범적인 생활을 해내고 우수한 학점을 유지하더라도 제도에 굴복하지 않는 마커스를 잡초 뽑듯 솎아내려는 학교 규칙의 강제성과 태생이 하나의 낙인이 되어 서로가 서로를 울타리로 구분 짓는 것을 하나의 규칙으로 만들어내는 사회의 암묵적인 약속과 주어진 기간 동안 어떻게 해서는 행복하고 싶은
인간을 아무렇지 않게 없었던 것처럼 쓰윽하고 지워버리는 죽음을 지켜보며 끓어오르는 이 감정은 분명히
‘울분’이다.
하지만 작가인 필립 로스도 알고 나도 안다. 닭 모가지를 비틀어도 아침은 오고 절대 오지 않을 것 같은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온다. 삶이라는 감옥 속에서 우리는 살아가지만 그 꼭대기 위에서 내려다보는 죽음이 나를
언제 뭉개 버릴지 모르지만 나는 그리고 우리 모두는 끝내 행복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