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8월 12일 오전 미국 셔터쿼의 강연장에서 강연 중이던 살만 루슈디는 레바논 이민자 가정 출신인 마타르에게 흉기 피습을 당해 중상을 입었다. 흉기에 목과 복부를 10여 회 찔린 그는 한쪽 눈을 잃고 한쪽 팔의 신경이 끊겼으며 간도 손상되었다.
살만 루슈디는 1988년에 출간한 소설 <악마의 시>에서 마호메트를 희화화[戱畵化] 했다는 이유로 당시 이란의 최고 지도자인 아야톨라 루홀라 호메이니로부터 그를 살해할 것을 명령하는 종교 지령인 파트와를 지목당했다. 파트와가 선포된 이후 그에게는 약 39억 원의 현상금이 걸렸고 생명의 위협을 느낀 그는 망명길에 올라 오랜 시간 은둔생활을 해야 했다. 이번 피습 사건과 공포된 파트와의 연관성에 대해서는 아직까지 확인된 내용이 없지만 현재 조사된 내용에 의하면 그를 향한 범죄가 사전 계획된 범죄였음이 확인되었다.
존재 유무를 확인할 수 없는 대상을 문학의 소재로 삼았다는 이유로 오랜 시간 생명의 위협을 받아야 했고 결국 피습을 당해 중상을 당한 살만 루슈디를 보면서 과연 쿠란에 명시된 신에 대한 신성성을 지키기 위해 인간을 희생시키는 방법이 정당한가에 대한 의문을 갖게 된다.
이교도를 강제 개종하기 위한 십자군 전쟁과 지금도 서로를 향한 테러를 무한 반복하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간의 분쟁 그리고 국가 이기주의를 위해 민간인 살상을 서슴지 않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등 과거로부터 현재로 이어지는 모든 인간을 향한 침략행위의 전면에는 상징과 무엇 무엇이라는 주의(主義)가 존재했다.
{ 순수성의 악마가 들러붙은 인간은 자기 주위에 파괴와 죽음의 씨를 뿌린다.
종교적 정화 운동, 정치적 숙청, 종족의 순수성 보존 등은
잔혹한 순수성의 변형들이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한결같이 범죄에 이르게 되는데,
특히 즐겨 사용되는 범죄 도구는 순수성과 지옥의 상징인 불이다. } p115
[마왕]의 작가인 미셸 투르니에는 2차 세계대전을 배경으로 한 이 작품 속 작중 인물 아벨 티포주를 통해 인류의 역사를 통해 반복된 인간을 향한 침략행위를 인간을 희생제의로 삼는 식인귀의 역사로 보고 있다.
투르니에는 작중에서 인류 최초의 살인을 다룬 구약 성서 속 카인과 아벨의 이야기를 식인귀의 시초로 삼는다. 토착민인 카인이 자신이 지닌 소유를 아벨로부터 지키기 위해 아벨을 희생물로 삼고 이를 합리화하는 과정에서 카인은 인류 최초의 식인귀가 되었다. 구약성서에서 약속한 땅을 되찾기 위해 전 세계에 흩어져 떠돌던 유대인들이 이스라엘을 되찾는 순간 토착민에서 유목민의 신세가 되어 내쫓긴 팔레스타인 인들은 유대인들에 맞서는 자신들만의 상징을 내세우며 서로의 상징을 앞세운 성전(聖戰)이 시작됨으로써 서로가 서로에게 식인귀가 되는 교착상태에 봉착했다.
[마왕]에서 투르니에는 나치의 상징 아래 자행된 순혈주의를 앞세운 유대인 학살과 인간실험 그리고 나치 깃발의 구심점인 히틀러를 승리자(신성시)로 만들기 위해 희생물이 되어야 했던 군사학교에 강제 소집당한 어린 소년들을 보여줌으로써 상징과 주의가 인간보다 우선되었을 때 벌어지는 일들을 우리 앞에 낱낱이 보여준다.
약한 인간이었던 어린 티포주는 강함(크리스토프 학교 시절 실세인 동급생 네스토르)에 끌리게 되고 성인이 되어 신체적 강함을 갖추게 된 그는 육체의 힘은 가졌지만 큰 덩치에 비해 빈약한 자신의 정신을 소녀들을 향한 끌림으로 해결하고자 했다. 그는 학교 인근을 맴돌며 어린 친구들의 밝은 목소리와 모습들을 녹음기와 사진기를 통해 간접적으로 소유하는 방식을 택했는데 그 과정에서 알게 된 마르틴을 차로 몇 번 집에 데려다주다 그 소녀에 의해 강간미수범으로 고발당했다.
구속되어 재판을 대기하던 중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게 되고 티포주는 처벌받는 대신 군대에 징집당했다. 전장에 투입된 그는 전쟁 시 연락책으로 쓰이는 비둘기 사육병으로 차출되게 되었고 어린이를 향했던 그의 수집벽의 대상은 비둘기로 치환되었다. 새롭고 멋진 품종의 비둘기를 찾아내기 위해 부대 인근의 모든 민간 부락을 뒤지며 다니던 그는 독일군의 공격을 받고 포로가 되어 독일 북부지역의 부역자로 배치되었다. 관개수로를 파는 단순 작업에 배치된 티포주는 힘을 쓰는 단순한 노동에서 쾌감을 느끼게 되고 그의 힘과 작업성과에 감탄한 독일군은 그에 대한 감시를 늦추었다. 이후 그는 우연하게 발견한 별장을 자신만의 캐나다로 명명하며 독일 북부 이탄지의 흑백의 경계가 분명한 자연 속에서 운홀트라는 고라니와 교류하게 되었다. 별장에 체류하던 중 별장의 진짜 주인인 로민텐의 산림장을 만나게 된 그는 2차 세계대전 독일 나치군의 핵심인물인 괴링이 수렵장으로 있는 사슴목장의 잡역부로 보직이 변경된다.
독일군의 전세가 불리해지던 2차 세계대전 말미 전시동원으로 인해 사슴목장이 긴축재정에 들어가게 되자 티포주는 칼텐보른의 군사학교인 나폴라에 잡역부로 파견되고 그는 비둘기를 차출해왔던 특출 난 능력을 발휘하여 인근 마을에서 소년들을 색출하여 군사학교에 보내는 역할을 하게 되었다. 보르르블뢰를 타고 소년들을 수색하러 다니는 티포주를 가리켜 마을 사람들은 식인귀라 불렀다.
사람들로부터 소년들을 잡아가 전쟁의 제물로 삼는 식인귀로 불렸던 티포주는 소련군의 공습을 받은 나폴라에서 몰래 숨겨두고 돌봐온 이프라임(유대인 소년)을 짊어진 채 탈출을 시도하다 늪에 빠지고 수렁에 잠기는 티포주가 바라보는 하늘에는 여섯 개의 가지가 달린 황금 별 하나가 검은 하늘에서 천천히 돌고 있는 모습을 마지막으로 이 소설은 끝을 맺는다.
{ 자네를 이곳으로 데려온 것도 바로 기호이지.
기호는 매우 예민한 것이야.
그래서 우롱당한 기호는 악마적인 것으로 변하고 말지.
빛과 일치의 중심인 상징은 암흑과 분열의 힘이 되기도 하지.
자네의 성향이 자네에게 짊어지는 행위,
악의적인 전위, 그리고 포획을 발견하게 해 주었지.
~그 세 가지 형상이 단 하나의 형상으로 결합되는 것이 세계의 종말과 동의어임을 알아야 한단 말일세.
~위험한 것은 기호 자신이 상징화된 사물을 떠맡는 일이지.
~각 기호가 반영하는 사물을 찾으려고 애쓰지 말라는 거야.
그 상징들은 악마적인 것들이니까,
말하자면 그 상징들은 더 이상 아무것도 상징하지 않지.
바로 그런 상징들이 포화 상태에 이르면
세상의 종말이 시작되는 것이지. ] p433~434
{ 그때부터 독일과 관계되는 모든 일에서 인간은 부수적인 존재에 불과해.
1923년 11월 9일 뮌헨에서 유일하게 중요한 것은 하나의 깃발이었지.
열여섯 구의 시체 한가운데 던져진 공모자들의 만자형 깃발.
흥건히 흐르는 피는 그 깃발을 더럽히고 동시에 성스럽게 만들었지.
그때부터 그 피의 깃발은 나치당의 가장 성스러운 유물이 되었어. } p436
미셀 투르니에의 [마왕]을 읽고 나는 나치 전범기와 욱일승천기의 위험성을 다시금 확인하게 되었다. 이 두 개의 상징의 공통점은 일본 군국주의와 독일의 민족주의가 일으켰던 침략전쟁에 스스로의 정당성과 합리화를 제공한다는 점이다. 살만 루슈디를 향한 피습에 대해 무죄라고 주장하는 마타르처럼 상징을 내세운 침략은 聖戰으로 미화된다. 인류 역사를 반복해 나타나는 식인귀들은 상징을 내세워 인간을 희생물로 삼는다는 공통점을 지닌다. 그들에게 침략행위는 상징에 바치는 희생제의 일뿐이기에 죄책감은 존재하지 않는다.
2차 세계대전 말미 일본의 가미카제 특공대와 소설 [마왕]의 군사학교 나폴라가 소년병들에게 강요하는 자폭 희생은 닮은꼴이다. 그러한 역사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한 인간을 수단으로 삼는 상징에 대한 경고가 이 책에는 담겨 있다. 이 경고를 위해 투르니에는 인류 최초의 살인부터 2차 세계대전까지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