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바람의 그림자 #카를로스 루이스 사폰 #문학동네
코로나 19로 인해 중단되었던 여직원 모임이 2년 만에 재개되었다. 차량을 운행하지만 운전실력이 형편없는 나는 모임 장소에 주차를 할 자신이 없었고 나는 집에서 팔 킬로미터 정도 떨어진 모임 장소를 갈 때는 후배의 차를 얻어 타고 갔다. 모임이 끝난 후 집에 가려고 보니 한 번에 갈 수 있는 버스가 없었다. 하늘은 금방이라도 폭우를 쏟아붔는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새카만 먹구름으로 가득했다. 낯선 길을 걷는 것을 좋아하는 나는 무작정 걷기 시작했다. 머릿 속에서 그려지는 지도로 최단코스를 그어서 낯선 골목을 그리고 고가도로를 우회하는 지하도를 걸었다.
나는 낯선 거리를 걷다가 익숙한 길을 만나게 되는 순간을 너무 좋아한다. 스스로 길 찾기 놀이라고 명명한 이 놀이를 요즘은 자주 하지 못하지만 기회가 생길 때마다 나는 기꺼이 걷는다. 가보지 않았던 길을 걷다가 막다른 골목을 만나서 왔던 길을 다시 거슬러 돌아와야 할 때도 있지만 걷는 동안 그동안 보지 못했던 것들을 발견하고 그 길이 내가 알았던 길과 만나는 지점을 알게 되는 기쁨은 낯선 길을 볼 때마다 걸어보고 싶은 충동을 느끼게 한다.
나에게 소설 읽기는 바로 이 길 찾기 놀이와 같다. 낯선 문장의 미로를 헤매다 씨줄과 날줄처럼 엮인 사건의 실마리가 만나는 지점에서 나는 큰 즐거움을 느낀다. 작품을 통해 그 작가의 다른 작품들로 향하는 나의 독서의 방향도 결국은 독서를 통한 길 찾기 놀이이다.
소설은 읽는 과정을 통해 재미와 지적인 만족을 준다. 잘 읽히지 않는 책은 읽히지 않아서 읽고 난 후 자꾸 내용을 곱씹게 되고 마지막 장까지 단순에 읽어 내려갈 정도로 큰 몰입감을 주는 책들도 있다.
[바람의 그림자]는 후자에 속하는 책이다. 지금은 싫어하게 되었지만 대학교 중간고사 기간에 우연히 읽게 된 무라카미 하루키의 [해변의 카프카]를 나는 시험공부를 포기하면서까지 다 읽는 순간까지 그 문장에서 눈을 뗄 수 없었다. 그토록 숨 막히는 몰입감과 눈앞에서 문장이 영상으로 변환돼서 송출되는 것 같은 체험은 흔히 판타지를 다룬 소설 군 예를 들어 [반지의 제왕]이나 [황금나침반], [해리포터 시리즈] 등에서 느낄 수 있는데 낯선 스페인 작가인 카를로스 루이스 사폰의 작품 [바람의 그림자]를 통해 오랜만에 소설 읽기의 재미에 흠뻑 빠져들었다.
[바람의 그림자]는 어린 나이에 어머니를 잃고 서점을 운영하는 아버지와 살아가는 다니엘이라는 소년의 성장기이다. 이 작품에는 우리 어머님들이 좋아하는 아침 드라마에 나올 법한 장치들이 전부 등장한다. 전쟁과 사랑 그리고 출생의 비밀까지...... 이를 표현하는 방식은 소설이기에 드라마와 같진 않지만 이 모든 장치들이 씨줄과 날줄처럼 서로 엮여 펼쳐지다가 어느 한순간 진실을 맞닥뜨리게 되는데 읽는 동안 그 과정이 참으로 흥미진진했다.
올여름 휴가를 간다면 차 안에서나 숙소에서 읽기를 추천하고 싶다. 살짝 줄거리를 얘기하자면 어린 나이에 어머니를 잃은 아들 다니엘을 아버지 셈페레 씨가 어느 날 새벽에 잊힌 책들의 묘지에 데려갔다. 아버지는 아들에게 잊힌 책들 중 한 권을 고를 수 있다고 말했고 다니엘은 서가의 구석에서 훌리안 카락스가 지은 [바람의 그림자]라는 책을 찾아냈다. 다니엘이 갖게 된 책의 희소성으로 인해 책 수집상인 바르셀로는 거액을 제시하며 책의 소유권을 넘기길 원하는데 바르셀로와의 만남을 통해 다니엘은 첫사랑이 된 클라라를 만나게 되었다. 클라라는 앞을 볼 수 없는 장애를 갖고 있었지만 극강의 미모로 만인의 구애를 얻는 인물로 다니엘을 어린 동생으로 대하지만 그는 사랑을 원했고 이별의 아픔을 겪은 다니엘 앞에 노숙자 페르민이 나타났다.
다니엘은 노숙자인 페르민을 아버지 서점에 취업을 시켰는데 페르민은 현재 정권을 장악한 군부세력에 쫓기는 인물이었다. 사랑을 잃은 후 다니엘은 [바람의 그림자]의 작가인 훌리안 카락스라는 인물의 미스터리에 집중하게 되었고 그 과정에서 훌리안 카락스의 책 출판을 담당했던 출판사에 일했던 누리아를 만나게 되었다.
페르민과 함께 훌리안 카락스의 과거를 쫓던 다니엘은 그 작가를 집요하게 추적하는 또 한 명의 인물인 푸메로 경감을 맞닥뜨리게 되고 그가 바로 페르민에게 고문을 가했고 지금까지도 그를 쫓고 있음을 알게 된다.
훌리안 카락스를 추적하는 과정 속에서 아버지의 헌신적인 사랑과 배려를 그리고 페르민에게서 나이를 뛰어넘는 믿음과 우정을 그리고 친구의 누나인 베아트리스에게서 사랑을 배우게 된 다니엘이 훌리안 카락스의 모든 진실을 알게 되고 자신의 모든 작품을 불태우는 것 외에는 삶의 의미가 없었던 훌리안 카락스가 다시 쓰게 된 글을 다니엘에게 헌정하면서 이 책은 끝을 맺는다.
책의 내용만큼이나 페이지 장수는 많지만 가독성이 엄청난 이 책을 읽는 내내 이 작품이 펼쳐지는 배경인 스페인에 가보지 않았지만 그 거리와 건물들의 모습이 눈에 그려지는 것 같았다. 다음에 스페인에 갈 기회가 된다면 이 책과 함께 하고 싶단 생각을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