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요한 밤
거룩한 밤
꿈 없는 완전수면
드림헤븐이 도와드립니다!
밤 11시 양치를 마치고 거실로 나온 수현은 드림헤븐 셋톱박스에 달린 헤드셋을 머리에 썼다.
"김수현 님, 로그인이 되었습니다. 수면모드를 실행하시겠습니까?"
"네."
수현의 뇌파로 로그인된 셋톱박스의 송출버튼에 녹색이 들어오자 수현은 침실로 들어갔다. 이미 딸과 엄마는 침대에 누워 수면뇌파 송출을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이제 우리 세 가족에게 꿈도 없는 여섯 시간의 수면이 찾아온다.
드림 헤븐이 수면뇌파를 상품으로 판매하기 시작한 2023년 이후로 사람들은 자율수면 능력을 상실했다. 이제 잠은 상품으로 판매된다. TV와 핸드폰 그리고 각종 매체들에는 드림헤븐 수면 상품 관련 각종 광고와 홍보영상이 가득하다. 이제 원하는 시간에 일어나기 위해 알람기능을 맞출 필요가 없다. 수면뇌파의 송출이 종료되면 사람들은 오분 이내에 눈을 뜨게 된다.
온 가족 여섯 시간 상품에 가입한 수현의 가족은 다섯 시에 일어난다. 일찍 일어나는 새벽형 인간이 되길 원한 건 아니지만 자동으로 눈이 떠지는 상황에 중학교 2학년인 딸아이는 짜증이 한가득이다. 잠을 늦게까지 자는 것이 부의 척도가 되고 보니 새 학기가 되면 친구들 사이에서 '넌 몇 시간 자니?'가 첫 질문이 되는 상황에서 오늘 등교 첫 날인 딸은 걱정이 되는 모양이다. 일찍 일어나는 새가 모이를 먹는다는 얘기는 다 옛날 얘기다. 걱정으로 잠을 설치기도 하고 또 어떤 날은 초저녁부터 졸려서 잠들기도 하고 때론 늦잠을 자기도 했던 일상은 도대체 어디로 간 것일까?
월급의 삼분의 일이 수면약정으로 들어가지만 그나마 드림헤븐 콜센터에서 근무하기 때문에 직원할인 이십 퍼센트를 받을 수 있는 게 어딘가 싶은 생각에 수현은 차분히 출근준비를 시작했다.
출근길 지하철 안, 예전에는 이른 시간의 지하철 내부는 쪽잠을 자는 사람들이 가득했는데 지금은 다들 눈은 뜨고 있지만 새빨갛게 충혈된 눈에 살집이 없는 사람들과 여유롭게 앉아 핸드폰을 보는 사람들로 나뉘어 있다. 지하철 광고화면에는 K-POP 스타인 지민이 드림헤븐의 수면상품을 광고 중이다. 항간에는 드림헤븐 상품을 광고하는 연예인들에게는 1년 무제한 이용권을 제공한다는 얘기도 들려왔다.
처음에 생수를 상품으로 판매한다고 했을 때 무슨 놈의 봉이 김선달도 아니고 물을 다 사 먹냐고 말했던 사람들이 수돗물을 못 마시고 물을 사 먹게 된 것처럼 도대체 언제부터 잠을 돈을 주고 사게 된 것일까?
사람들의 충혈된 눈을 보며 수현은 마음이 복잡하기만 하다.
방음 칸막이로 구분된 상담부스로 가득 찬 드림헤븐 콜센터 내부 58번 상담콜 버튼이 깜박이기 시작하자 수현은 버튼을 누르고 상담을 시작한다. 수현의 앞에 놓인 모니터에 상담 매뉴얼이 올라온다.
"좋은 꿈 꾸세요. 고객님 드림헤븐 고객센터 상담원 수현입니다.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고객이 말을 시작하기 직전 수현은 울며불며 사정하는 고객은 아니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본다.
모니터에 올라온 고객정보는 나이 47세. 남자. K. 80세 만기 4인 가족 약정 월 158 만원 납입상품이다.
"여보세요? 드림헤븐이죠?" 남자의 목소리가 다급하다.
"네. 그렇습니다."
"제가 가입한 상품의 이용시간 조정을 하고 싶어서요."
남자의 목소리는 그대로 모니터링되어 실시간 모니터 창에 이용기간 조정 예시표가 올라온다.
"네. 어떻게 변경을 원하십니까?"
"일 약정 6시간을 4시간으로 조정해 주세요."
모니터창에 이용료가 월 92만 원 표시된다.
"고객님 변동된 이용료는 월 92만 원으로 조정되는데 그렇게 해드릴까요?"
"네."
"고객님 이용변경을 위해 결제은행과 계좌. 이체일 확인을 부탁드립니다."
"신탁은행 157-632890-01-360 23일입니다."
"네. 확인되었습니다. 고객님.
다음 달 23일부터 변동 내용으로 서비스가 제공됩니다.
더 문의사항이 있으십니까?"
"아닙니다."
"고객님. 지금까지 상담을 도와드린 저는 드림헤븐의 수현입니다."
수현의 멘트가 끝나기도 전에 수화기 종료버튼음이 들린다.
드림헤븐 콜센터 건물 10층에서는 직원용 중식이 제공된다. 대화가 금지된 건 아니지만 눈밑이 어두운 직원들은 말없이 기계적으로 밥을 먹는다.
통유리로 된 유리창 너머 사거리 옥외 광고탑에는 드림당 대통령 후보 송중석의 공약이 파란 하늘에 뜬 뭉게구름 위에 도드라지게 쓰여있다.
국민이 맘껏 잠자는 세상. 송중석이 만들겠습니다.
밥을 먹다 무심코 고개를 들었다 송중석의 공약을 본 수현은 어렴풋이 중학교 일 학년 새 학기 봄이 떠올랐다.
12시 수업종료 종이 치기가 무섭게 도시락을 까먹고 운동장에서 신나게 사방치기를 하고 온 수현은 오후 수업 5교시가 시작되기 무섭게 졸음이 쏟아졌다. 교실 창가로 비치는 봄볕에 녹아내리는 얼음처럼 눈꺼풀은 흘러내릴 듯하고 선생님의 목소리는 아득히 먼 꿈결만 같다가 어느새 잠든 줄 모르고 엎드려 잠들었던 꿀맛 같던 잠의 기억.
저절로 잠들어 푹잤던 것은 도대체 언제였던가. 요즘 생일 선물과 졸업입학 축하선물로 드림헤븐 24시간 이용권이 그렇게 인기가 많다는데 그럴 복도 없는 나는 복권이라도 사야 하나.
8시간 콜센터 근무로는 3인가족 약정 6시간 78만 원 내기도 빠듯한데. 딸아이는 오늘 학교에서 친구들과 잘 지냈을까? 엄마는 허리도 아픈데 지금 뭐 하고 계실까?
그나저나 아까 상담한 남자는 이제 식구대로 4시간을 자고 어떻게 살까? 아니다. 내가 남 걱정할때가 아니다.
어떻게든 진급이라도 해야 월급이 오를텐데 일단은 열심히 일하자. 수현은 깔깔한 눈을 주먹쥔 손으로 비비다 식판을 들고 일어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