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C. 211
오호 십이국을 통일한 융황제는 자신이 꿈꾸던 천하통일을 이뤘지만 그 과정에서 건강을 잃고 말았다. 마음은 천하를 호령하고도 남았지만 몸은 그 정신을 감당하지 못하고 하루가 다르게 힘을 잃어갔다. 겨우 이뤄낸 많은 것들을 남겨두고 떠나기가 억울했던 황제는 불로장생을 꿈꾸게 되었고 고래(古來)로 부터 전해져 오던 갑주문에서 불사의 방법을 찾아내었다.
999년마다 천왕성과 명왕성이 동시에 해를 가리는 개기일식 때 천지(天地)와 명부(冥府)에 미세한 왜곡이 발생했다. 그 왜곡의 짧은 찰나에 수명(壽命)이 백지(白紙)인 아이가 한 명 태어났다. 목적을 가진 사람들과 악신들이 이 아이의 탄생을 목 놓아 기다렸고 하늘은 이 아이로 인해 촉발될 재앙을 막기 위해 아이가 태어나기 무섭게 저승사자를 보내 왜곡의 시행착오를 수습하게 했다.
개기일식이 있기 열 달 전 천월성이 뜨는 곳에 무수명의 아이가 태어난다는 내용이 고대 갑주문에 기록되어 있었고 이 사실을 발견한 황제는 비밀리에 천문관 사마의에게 이 일을 맡겨 밤하늘을 관측하게 했다.
"폐하, 어젯밤 자시에 해동국 남쪽에 천월성이 떴나이다."
황제가 기침하기를 기다리며 승명전 앞에서 노심초사하던 천문관 사마의는 안으로 들라는 내관의 말에 황제의 침전으로 바삐 들어가 엎드려 고했다.
거동이 불편한 황제가 천문관의 말을 듣고 흥분하여 숨이 가빠지자 내관이 급히 차를 권했다. 떨리는 손을
들어 차를 한 모금 마신 황제는 마음을 안정시키려 숨을 골랐다.
"드디어 짐이 살 길이 생겼구나. 이제나 저제나 내 숨 끊어지기만 기다리는 꼴이라니....
천문관은 명을 받들라. 군사 일만을 데리고 즉시 해동국으로 떠나 왕조를 수호하라."
"신, 사마의 명을 받들겠나이다."
천문관은 그 즉시 앞으로 십 개월 후 태어날 무수명(無壽命)의 아이를 찾아 해동국으로 떠났다.
훗날 이 일은 황제의 불로장생을 위해 불로초를 구하라는 명을 받고 남쪽으로 떠난 신하의 이야기로 전해지고 있다.
아주 오래전부터 이 나라에는 남도와 북도를 지키는 대무녀가 있었다. 대무녀들은 길흉화복을 점치는 것이 아닌 나쁜 기운을 억누르고 땅의 기운을 정화하는 역할을 해왔다. 대를 이어 세습되는 대무녀는 북도에 백두가 남도에는 지리가 있었다. 주변인들은 이들이 무녀임을 알지 못했지만 이들은 평생을 수행하며 스스로 악신을 누르는 누름돌 역할을 했다.
1999년 초 한 해 동안 남도에 재난운이 없는지 하늘을 살피던 지리무녀 세화는 자신의 머리 위 하늘에 천월성이 뜬 것을 발견했다. 어머니에서 어머니로 이어지는 오래된 고서에서 무수명에 관한 글을 읽은 세화는 올해 10월 남도 땅에 무수명의 아이가 태어날 거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녀는 이번에도 하늘의 뜻대로 무수명이 정리되기를 기도했다.
1999년 한 해 동안 대한민국은 종말론과 밀레니엄 버그로 시끄러웠다. 1999년 12월 31일 자정을 기해 세상에 종말이 오니 전 재산을 종교에 기부하고 휴거를 준비해야 한다는 사람들과 밀레니엄 버그로 모든 전자기기가 망가져서 깡통이 될 거라고 말하는 사람들로 가득한 가운데 사람들은 모이기만 하면 종말에 관한 이야기를 해대곤 했다.
"아이고 죄다 종말 얘기뿐이네."
한숨을 쉰 세화가 TV 리모컨을 들어 TV를 껐다. 세화는 제법 부풀어 오른 배 때문에 일어나기가 힘든지 앉았다 일어서다가 허리에 손을 짚고는 끙하고 앓는 소리를 냈다. 이런 시끌벅적한 세상에 태어날 아이가 한편으론 걱정되기도 했지만 아이를 빨리 직접 보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다. 방안에는 시간이 날 때마다 준비해 놓은 출산 준비 용품들이 여기저기 놓여 있었고 세화는 준비된 아기 용품들을 볼 때마다 마음이 설렜다.
대를 이은 세습무라는 운명을 물려줘야 한다는 사실이 마음을 무겁게 하지만 그 또한 아이의 운명이라면 그리고 이제 바뀐 세상이라면 어머니가 물려준 방식과는 다른 방법이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하며 애써 마음을 달래 보기도 했다.
언제부터인지 알 수는 없지만 아주 오래전부터 남도의 세습무들은 다음 대를 이을 아이를 낳으면 백송령 앞에 가서 아이를 보여주고 백송령을 대모로 삼았다. 세화도 그녀의 어머니도 모두 백송령을 대모로 여겼고 어머니는 돌아가셨지만 세화는 백송령을 볼 때마다 어머니 대신인 것만 같아서 집 앞 오분 거리에 있는 백송령 앞을 지나칠 때마다 굵은 나무 밑동과 줄기를 손으로 어루만지곤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