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화. 백두에게 존재를 들키고 만 여우구슬.
'아이고, 이놈이 또 술을 얼마나 퍼 마신 게야.'
희수가 가져온 손톱을 먹던 백송은 손톱에 박힌 술기운에 머리가 지끈거렸다. 그녀의 머릿속에 백송령 앞에서 데이트를 하던 희수의 모습이 떠올랐다. 백송은 한눈에 예쁘지만 허영과 거짓으로 가득한 희수 각시의 속내가 훤히 들여다보였지만 사랑에 눈이 먼 그에게 주변인의 반대는 불난 집에 휘발유를 붓는 겪이었다. 이후로 틈만 나면 주변 사람들에게 돈을 빌리고 사라지는 아내를 찾느라 희수는 보통의 직장에 다닐 수 없었다.
택시를 운전하며 쉬는 날이면 아내를 찾으러 전국을 누벼야 했고 하나뿐인 아들의 육아도 온통 희수의 몫이었다. 매번 수소문 끝에 아내를 찾아와 손을 붙들고는 어떻게든 보통사람처럼 잘 살고 싶었던 희수를 끝내 신용불량으로 만들고 아내는 잠적해 버렸다. 그때 희수 아들의 나이가 일곱 살이었다.
근 한 달 동안을 자신의 택시에 아들을 태우고 전국을 떠돌며 아내를 찾느라 백송이 아무리 불러도 희수는
돌아오지 않았다. 심신이 피폐한 채 집으로 돌아온 뒤에도 희수는 두문불출했다.
백송령 뿌리로 쳐둔 결계 밖으로 나갈 수 없는 백송은 삽살인 희수의 방황 때문에 미칠 것 같았다. 무수명인 미호의 손톱은 먹을 수가 없었고 삽살이 오지 않는 동안 손톱을 구할 방법이 없었으니 결계의 막은 속수무책으로 얇아져갔다.
'저놈도 속이 말이 아니겠지만 이대로 가면 큰일이야.
이러다 저 아이를 들키기라도 하는 날엔.......'
백송은 가슴이 타들어가는 것 같았다. 당장 지금이라도 삽살이 와야 할 텐데....
삽살이 없어서 결계 밖으로 내보내지도 못한 미호가 어린이집도 가지 못한 채 집안에서 뽀로로만 보고 있는데 친구들이랑 놀고 싶어서 백송의 눈치를 보는 아이가 안쓰러워 그녀는 연신 혀를 찼다. 미성년자인 미호의
법정대리인인 장변호사가 중간에 집에 들리긴 했지만 손톱을 달라할 수도 없고 백송은 미치고 팔짝 뛸 지경이었다.
'드디어 찾았다.'
희미하게나마 여우구슬의 푸른빛을 발견한 백두의 눈이 빛났다. 여우구슬은 남도의 어딘가에서 빛나고 있었다. 무언가에 가려진 듯 희미한 빛을 발하다 사라졌지만 처음 발견했을 때보다 오랜 시간 동안 자취를 드러냈기에 백두는 여우구슬이 삼남지방에 있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백두는 그 즉시 장로들을 시켜 전라북도와 광주광역시 그리고 전라남도를 훑게 했다. 이렇게 오랜 시간을
자취를 감췄다는 건 분명 이 천년 먹은 여우가 자신의 본모습이 아닌 다른 모습으로 존재함을 의미했다. 지금까지 여우의 모습일 거라 생각하고 찾았기에 지금껏 찾지 못했단 사실을 백두는 뒤늦게 깨달았다.
그녀는 삼남지방에 존재하는 오래된 돌과 나무 그리고 식물까지 오래된 것은 모두 조사해오라며 장로들을
남도에 급파했다.
장로들이 남도에 내려간 지 한 달째 되던 날 칠(七) 장로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백두님, 찾은 것 같습니다.
세향리에 천년 먹은 고목인 백송령이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화순 운주사에 천년 와불이 있는데 분명 이 둘 중 하나지 싶습니다."
"알겠다. 내 즉시 내려가지."
백두는 그 길로 차를 몰아 화순에 있는 운주사로 향했다. 아무래도 천년 먹은 여우는 천년 와불 아래 자리를 잡고 있는 게 분명해 보였다.
' 이 여우가 백련대사를 만난 이후로 자취를 감췄으니 불교와 관련이 있는 거지.'
북한산 자택에서 쉬지 않고 380킬로를 운전한 백두가 운주사에 도착한 것은 해가 질 무렵이었다. 미리 도착해 있던 칠(七) 장로가 자동차 문을 열어주기 무섭게 백두는 와불 주변을 살폈다. 고즈넉한 산사는 노을에
물들어 조금씩 어둠이 내리기 시작했다. 주위가 고요해질수록 백두의 흥분에 뛰는 심장 박동이 크게 느껴졌다. 백두는 주변이 완전히 어두워질 때까지 여우구슬의 냄새와 기운을 찾았지만 그것엔 아무것도 없었다.
어둠 속에 서 있는 그녀의 두 눈에 푸른 불꽃이 활활 타올랐다.
"이곳은 아니구나. 세향리로 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