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죽여줄 남자.

9화. 과거에 내가 죽인 남자 = 오늘 내가 살린 남자.

by 묭롶



식당을 박차고 나간 여자가 날라차기 한 방으로 차량의 앞유리를 부수는 모습을 카운터에서 지켜본 식당주인의 신고로 경찰이 현장에 출동했다. 출동한 경찰이 현장에 도착했을 때 미리내는 정신을 잃고 운전석에 쓰러져 있는 병세를 차량 바깥으로 옮기던 중이었다. 뒤이어 위급 상황을 인식한 경찰이 119에 구조를 요청했고 차량 내부에 번개탄을 피운 것 같다는 미리내의 말을 들은 구급대원은 고압산소 치료가 가능한 한서병원으로 환자 이송을 요청했다. 경찰은 사건 조사를 위해 자신과 함께 구급차로 병원까지 동행해 줄 것을 미리내에게 부탁했다.

연신 울려대는 사이렌 소리와 번쩍이는 경광등으로 막힌 도로를 뚫고 달리는 구급차 안에서 미리내는 산소호흡기를 부착한 채 죽은 듯이 늘어져 누워있는 병세의 얼굴을 꼼꼼히 살펴보았다. 원형 탈모가 왔는지 듬성듬성 비어보이는 머리칼과 핏기 없는 얼굴 그리고 감은 눈 밑의 짙은 다크서클까지 설령 눈을 뜨고 있다 한들

이 남자를 전생의 가토라고 연결 지을 만한 공통점은 일도 찾아볼 수 없었다.



'이건 뭐 나를 죽여주기도 전에 자기가 먼저 죽게 생겼네.

그나저나 저 놈이 이대로 죽으면 난 자동소멸인데 큰일이군.'



미리내는 절로 한숨이 나왔다.


구급차가 한서병원 응급실에 도착하자마자 대기하고 있던 의료진들이 병세를 리프트에 싣고 고압산소 치료실로 옮겼다. 병세를 의료진에게 맡긴 경찰은 출동 기록지에 미리내의 진술을 기록한 채 지구대로 복귀를 했고 미리내는 이제 어찌해야 할지 혼란스러워 응급실 앞에 서 있는데 응급실 원무과 직원이 그녀를 불렀다.



"저기요. 혹시 방금 오신 환자분과 아시는 분인가요?"



직원의 질문에 미리내는 혼란스러웠다.



"아.... 그게. 알긴 아는 사람인데요(그렇다. 그녀는 그의 전생에도 그를 알았고 심지어 죽이기까지 했으며

환생한 그도 알고 있다.)"


"그럼 잘됐네요. 자살시도로 오신 분들은 의료보험이 안돼서 따로 접수를 해주셔야 하거든요.

일단 여기 접수증부터 작성해 주세요."



직원으로부터 접수증을 받아 든 미리내는 원무과 직원이 경찰로부터 전해받아서 적은 병세의 인적사항

아래에 있는 접수자 란에 자신의 인적사항을 기재하다가 관계라는 부분에 뭐라고 기재를 해야 할지

난감해졌다.



'와... 씨. 전생에 죽인 사람이라고 적을 수도 없고 이번엔 저놈한테 죽을 사람이라고 적을 수도

없고 전생에 원수사이였다고 할 수도 없고 아... 그렇지.. 알긴 아는 놈이니 지인이라고 적자.'



마침내 결론을 내리고 또박또박 '지인'이라고 적은 접수증을 원무과 직원에게 건네자 직원이 또다시 그녀에게 말했다.



"일단 오늘 응급실 접수 수납부터 부탁드려요.

의료보험 적용이 안되기 때문에 앞으로 꽤 많이 나오실 거니까

지인이시면 오늘은 그냥 수납하시고 입원 후에는 보호자 연락하셔서 꼭 데려오셔야 해요."



삼신이 준 신용카드로 응급실 비용을 수납한 뒤 응급실을 뒤로하고 걷는 미리내는 마음이 답답했다.

어떻게든 병세가 살아야 자신의 환생을 기약할 수 있는데 보호자라야 신장투석 중인 환자인 엄마가 전부인

병세를 누가 어떻게 살릴 수 있는지 생각할수록 머리가 아파왔다.






'아........ 여긴 어디지.........'


시야가 온통 희뿌연 하고 머리는 묵지근해서 병세는 자신이 눈을 뜨고 있는지 감고 있는지 분간이 되질 않았다. 목도 꽉 잠겨서 목소리도 내지 못할 것 같고 침도 삼켜지지 않아 답답한 가운데 병세는 생각했다.


'내가 죽었나 보구나.'


죽었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편안해져서 병세는 다시 주위를 살펴보려고 했다. 눈앞에 뭔가 보이는 듯해서

조금 더 힘을 줘서 시선을 모은 그의 눈앞에 한 여자의 얼굴이 보였다.


'저승엔 이렇게 아름다운 선녀가 있나 보구나.'


저승에도 아름다운 사람이 있다면 죽는 것도 그리 나쁜 건 아닌 것 같아서 병세는 저절로 웃음이 나왔다.

그 모습을 본 미리내는 어이가 없었다.



'미친. 죽다 살더니 정상이 아닌가 보군. 눈 뜨자마자 쪼개긴 뭘 쪼개는 거야?

아이고 이 냥반아. 내가 정말 너 살리느라 천금을 쓴 건 알긴 아냐고?

그래도 내가 전에 한 번 죽이고 이번에 한 번 살렸으니 우리 사이에 빚은 없는 거야.

아니지. 이번엔 네 손에 내가 죽어야 하니 내가 손해인 건가?

그나저나 이렇게 약해빠져 가지고 날 죽일 수는 있을까?'



눈을 뜬 병세를 바라보는 미리내의 얼굴이 물음표로 가득 찼다. 이내 한숨을 내쉰 미리내가 입원실에 비치된 호출버튼을 눌렀다. 곧 병실로 뛰어들어온 간호사에게 미리내가 말했다.



"여기, 눈 떴네요."



병세의 상태를 확인한 간호사가 곧 담당의사를 병실로 데려왔고 의사는 병세를 이곳저곳 살핀 후 간호사에게 오더를 내려 곧바로 MRI 촬영을 지시했다. 의사가 나간 뒤에도 정신이 아직 덜 돌아온 듯 멍한 표정으로 누워있던 병세는 곧이어 리프트에 실려 이곳저곳을 옮겨 다니며 뇌파를 측정하고 MRI를 찍은 뒤 병실로 돌아왔다. 남자 간호사 둘이 그를 리프트에서 들어 침대에 눕힐 때 병세의 눈에 병실 보호자 소파에 앉아 스마트폰을 보고 있는 여자가 보였다. 지는 저녁노을로 붉게 물든 병실 안에 비현실적이게 아름다운 앞서 저승이라고 생각한 곳에서 본 듯한 여자를 발견한 병세는 그제야 자신이 죽지 않았다는 걸 깨달았다.

문득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을 느낀 미리내가 스마트폰을 보느라 숙였던 고개를 들어 정면을 응시했다.

순간 자신을 쳐다보며 울고 있는 병세가 보였다.

그 모습을 본 그녀는 절로 한숨이 나왔다.


'기껏 살려놨더니... 우네. 병세야.. 널 어쩌면 좋으니.'


꺽꺽 숨이 막히게 우는 병세를 보자 마음이 약해진 그녀가 그에게 다가가 손으로 어깨를 다독였고 티슈를 뽑아 그에게 건넸다. 떨리는 손으로 티슈를 받아 콧물과 눈물을 닦은 병세가 그녀를 보며 말했다.


"누구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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