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죽여줄 남자.

10화. 누나라고 불러.

by 묭롶

한서병원의 입원실 복도는 저녁 배식을 하느라 분주했다. 병원 식당 직원들이 환자별 배식판이 담긴 카트를 밀고 다니며 병실마다 배식을 하고 있었다. 카트가 1802호 입원실 앞에 멈춰 서자 소파에 앉아 스마트폰을 보고 있던 미리내가 문 앞까지 나가 배식판을 받아 왔다. 오늘 저녁까지 먹으면 이제 내일 오전에 퇴원수속을 밟기로 되어 있었다. 그녀가 받아온 식판을 소파 앞에 비치된 테이블에 올려두었지만 돌아 앉은 병세는 창밖만 하염없이 쳐다보고 있었다. 원형탈모로 병에 걸려 털 빠진 닭과 같은 병세의 뒤통수를 보고 있자니 그녀는 속에서 천불이 났다.



"야? 밥 먹으라고.. 떠 먹여주랴?"



이 답답한 전생의 원수를 도대체 어떻게 하면 좋을지 미리내는 막막하기만 했다. 누구 하나 상의할 사람도

없어서 그녀의 스마트폰 검색 어플에는 검색어만 늘어갔다.


*최근 검색어


- 일산화탄소 중독 회복

- 가스라이팅 후유증

- 왕따가 인싸 되는 법

- 멘탈 강자 되는 법

- 우울증 치료

- 자존감 높이는 방법


그녀가 소리를 빽 지르고 나서야 주섬주섬 뒤돌아 앉아 그녀에게 눈도 마주치지도 못한 채 고개를 숙이고

식판을 보고 있는 그를 본 미리내는 마음속으로 참을 인을 그려야 했다.

일산화탄소 중독으로 인한 산소 집중치료를 보름 넘게 받았지만 병세는 아직까지 유동식 외에는 먹을 수가 없었다. 한숨을 내쉰 그녀가 죽그릇의 뚜껑을 열고 물김치 그릇의 뚜껑도 열어주자 마지못해 수저를 뜬 병세가 멀건 미음을 한 수저 떠서 들어 올렸다. 하지만 입에 넣고 못하고 손에 든 채로 병세는 눈물만 뚝뚝 흘렸다.

죽을 결심을 했을 때 자신이 살 수도 있다는 가능성은 전혀 고려하지 않았던 그였다. 그래서 회사에는 휴직계를 내고 아파트 보증금도 빼서 엄마에게 보냈는데 당장 내일부터 어디로 가야 할지 그는 암담하기만 했다.

하지만 이미 한 번 실패를 경험했기에 다시 죽는다는 건 너무도 무서웠다.

그는 그런 자신이 너무 미웠고 대책 없는 자신의 미래가 너무도 두려웠다.



'아이고, 또 운다. 에휴 전생에는 원수 더니 환생은 진상이네.

그래도 윽박지른다고 될 일이 아니니 참아야지. 그래. 내가 참자. 참아.'



무슨 일이든 일단 부딪혀서 부서지든 뚫고 나가든 양단간의 결판을 보는 성격인 미리내는 전생의 가토와 정반대의 성격인 병세가 적응이 되지 않았다. 차라리 전생의 가토였다면 원수 너 죽고 나 죽자 식의 결론이 가능했지만 저토록 나약한 병세를 어떻게 해야 나를 죽여줄 만한 사람으로 만들 수 있단 말인가.

하지만 해내야 한다. 주먹을 불끈 쥔 미리내가 티슈를 뽑아 병세의 눈물을 닦아주고 손에 수저를 다시 쥐어준뒤 확신을 가득 담은 눈빛으로 병세를 바라보았다.



"날 봐.

내가 누구라고?"


수저를 들고 그녀를 향해 조심스럽게 고개를 든 병세가 쉽사리 입을 떼지 못하고 우물쭈물했다.


"너 눈 뜬 날 누구냐고 물어봤을 때 내가 얘기했잖아. 누나라고."


정신을 차린 병세가 눈앞에 있는 자신에게 누구냐고 물었을 때 미리내는 자신을 '누나'라고 부르라고 말했다. 그때는 얼떨떨해서 자신을 쳐다보던 병세에게 그녀가 다시 '누나'라고 말을 하자 그의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


"아무리 그래도 제 나이가 열 살은 족히 더 많을......."



병세의 말을 검지손가락을 세워 입술에 대고 말을 막은 미리내가 (내가 1919년 기미년 생이니 당연히 누나 아니라 할머니지만 이 외모에 할머니는 안되니 누나지)라고 속마음을 말할 수는 없었기에 그녀는 다시 말했다.



"너 나보다 힘 세?

너 나보다 멘탈 강해?

너 나 이길 수 있어?

너 나보다 정신연령 높아?"



그녀가 물을 때마다 고개를 흔드는 병세를 보며 그녀가 그럼 그렇지라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봐봐.. 그래서 내가 누나지.

너 당장 갈데없지?

내일 누나만 따라와.

아. 아니.. 그런 눈으로 보지 말고 너 병원비 대신 어디 팔아먹을 건 아니니까.

병원비 갚을 동안은 널 잡고 있어야지.

그러니 딴생각은 말아."



말을 마친 그녀가 수저를 든 채 자신을 바라보는 병세에게 어서 밥을 먹으라며 물김치를 그의 앞으로 조금 앞당겨 놓았다. 다시 저녁을 먹기 시작한 그를 보며 시장기를 느낀 미리내는 스마트폰을 들어 배달어플을 살피다가 문득 배달어플은 소주 배달이 안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럼 동생, 누나는 나가서 밥 먹고 내일 아침에 올게."



뒤돌아나가는 자신을 물음표 가득한 표정으로 한참을 바라보는 병세를 등지고 나온 미리내의 머릿속은

김이 모락모락 나는 순대국밥에 소주 한잔으로 가득 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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