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죽여줄 남자.

13화. 우렁각시와 소주러버.

by 묭롶

"저... 사장님 소주 공병 처리 좀 할 수 있을까요?"


이동식 수레에 박스 하나를 싣고 온 병세가 마트 주인에게 물었다.


"아... 예, 저기 옆에 두세요."


스마트폰으로 새벽에 중개된 유럽리그 8차전 재방송을 보고 있던 마트 주인은 눈은 화면에 고정한 채 병세의 질문에 건성으로 대답했다. 한참을 그렇게 경기를 보는 자신의 앞에 서 있는 누군가를 의식한 마트 주인이

화들짝 놀라 고개를 들어 앞에 선 사람을 쳐다보았다.


"저기, 다 가져다 놓았는데요."


대여섯 번에 걸쳐 집안의 빈 소주병을 마트로 옮겨놓은 병세가 한참을 기다린 끝에 마트주인에게 말했다.

그제야 빈 소주병을 확인한 마트주인은 대략 삼백여 개로 보이는 소주병을 보고 기겁했다.


"혹시 고물수집하는 분이세요?

설마 저거 다 마신 건가요?"


마트주인의 말을 듣고 얼굴이 붉어진 병세가 손사래를 쳤다.


"아..... 아니네요... 제가 마신 게...."


그는 그렇게 공병을 판 돈으로 콩나물과 두부, 계란, 오이 등 식재료가 든 봉투를 들고 빈 수레를 접어 다른

한 손에 들고 미리내가 있는 집으로 향했다. 그가 현관문을 열자마자 소파에 앉아 스마트폰을 보고 있던 미리내가 고개를 들어 그가 들고 있는 검정봉투로 시선을 향했다.


"나갈 거면 미리 말하지. 배달어플이 다 좋은데 소주가 배달이 안돼.

소주 사 왔지?"


되도록 사람과의 접촉을 삼가라는 삼신의 당부가 있었지만 미리내는 소주만큼은 포기할 수 없었다. 편의점 여러 곳을 돌며 소주를 몽땅 사다가 냉장고에 쟁여놓고는 매끼마다 배달음식을 안주삼아 먹어온 그녀였다.

아침은 콩나물 국밥에 소주, 점심은 설렁탕에 소주, 저녁은 보쌈에 소주. 이런 식으로 북촌 한옥에서 삼 개월을 지내왔었다. 그동안 귀찮아서 마신 빈병은 어찌 처리하는지 검색도 안 해봤는데 그걸 병세가 이 집에 온 바로 다음날 그녀의 전리품을 몽땅 다 정리해 버렸다.


이 집에 발을 들여놓자마자 파리와 개미 그리고 비위생적인 환경에 기겁을 했던 병세는 당장 그가 발을 내려놓을 곳부터 치우기 시작했다. 그는 보는 것만으로도 온몸이 가려운지 치우는 내내 몸서리를 쳤다. 집이

점점 삼신과 그녀가 처음 온 그날과 비슷하게 정리가 되어갈 즈음 그제야 허리를 편 그가 고개를 들어 소파에 엎드린 채 발을 번갈아 흔들고 있는 그녀를 살펴보았다.


그녀의 외모는 아이돌 그룹의 센터처럼 상큼하고 발랄한 아름다움 그 자체였다. 몸은 튕기면 금방이라고 슉하고 날아가 과녁에 꽂힐 듯 단단하고 팽팽한 긴장감이 감돌고 있었고 그 무엇보다 눈에서 뿜어져 나오는 기운이 쉽게 범접할 수 없는 경계를 표시하고 있었다. 그 아름다움에 무심코 손을 내밀었다가는 뻗은 손을 잘릴 각오를 해야 하는 그런 분위기를 풍기는 그녀였다. 그래서 병세는 어리고 예쁜 그녀가 무섭고 두려웠다.


자신이 사 온 검정비닐봉지를 손에서 낚아채어 이것저것 뒤지던 그녀가 찾던 소주가 없자 짜증이 가득 담긴

눈길로 그를 꼬나보았다. 그녀의 눈길에 주눅이 든 그는 서둘러 식재료를 봉투에 다시 담아 주방으로 몸을

피했다. 사업실패 후 아버지가 자살한 뒤로 자리보전하고 누운 엄마를 대신해서 살림을 도맡아 온 병세는

집안일이 편했다. 어디 한구석 마음 붙일 곳 없는 회사에서 맺혔던 마음은 찌개를 끓이고 반찬거리를 만드는 동안 그래도 조금은 풀리는 것 같아서 그는 혼자 지내는 동안에도 집에서 밥을 해 먹었다. 그가 주방에서

콩나물국을 끓이고 계란말이를 만드는 동안 거실 쪽에서는 미리내가 한참을 툴툴 대더니 현관문을 열고 나가는 소리가 들려왔다. 아마도 소주를 사러 가는 모양이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빈병 팔아 또 소주로 바꿔간다는 오해가 싫어서 못 사 온 거라고 말이라도 했어야 했지만 그는 영 입이 떨어지지 않았고 다른 가게에서

산 봉투를 들고 다른 곳에 가서 소주를 사는 것도 그로서는 힘든 일이어서 그는 한숨을 크게 내쉴 뿐이었다.


그가 식탁 위로 반찬을 놓고 수저 한 벌씩을 내려놓을 때 그녀가 현관문을 열고 들어왔다. 집안에 가득 찬

갓 지은 뜨끈하고 구수한 밥 냄새에 코를 킁킁거린 그녀는 신발을 내동댕이 치듯 벗고 눌러쓴 모자도 저기

어딘가로 던지고선 식탁 앞으로 빠르게 다가왔다.



"우와.. 와... 이게 뭐야? 우렁각시야?"



밥공기에 밥을 수북하게 담아 그녀 앞에 놓아준 병세는 국도 떠서 그 옆에 놓아주었다. 미리내는 그 자리에서 계란말이를 젓가락으로 세 개를 한꺼번에 한 줄로 집어서 입에 밀어 넣었다. 한 입 가득 우걱우걱 씹으며 자리에 앉은 그녀는 국사발 채로 들고 국물을 들이켰다.



"크어... 좋다!"



밥 한 공기에 국물을 세 사발 째 들이켠 그녀가 입가를 손바닥으로 쓰윽 닦고는 흐뭇한 눈길로 그를 쳐다보았다.



"장가가면 완전 사랑받겠어.

공양주 보살 할미도 이보다 맛있진 않았는데...

소주보다 맛있는 밥은 또 첨이야."



배달음식과 플라스틱 용기를 싫어하는 자신으로서는 이곳에서 살기 위한 고육지책이었지만 좋아하는 그녀를 보자 병세는 웃음이 나왔다.



"봐봐.. 웃으니까 사람 같고 좋네. 웃어.. 응?

밥도 먹었고 이제 우리 슬슬 진도 좀 나가볼까?"



진도를 나가자는 그녀의 말에 바짝 긴장해서 마른침을 삼킨 병세가 불안한 눈빛으로 그녀를 조심스레 쳐다보았다.



"하나 물어볼게.

누가 널 한대 쳤어. 그럼 넌 어떡해야 해."


맞는 장면을 상상하는 듯 몸을 부르르 떤 병세가 작은 목소리로 그녀에게 답했다.


-"더 안 맞으려면 도망가야죠."


그의 대답에 미리내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럼 회사에서 네 상사가 너에게 부당한 지시를 내릴 땐?"


-"회사 다니려면 어쩔 수 없잖아요."


겨우 대답하고서 그녀의 눈치를 보는 그를 보며 미리내는 한숨을 내쉬었다.


"봐봐. 지금부터 내 말을 잘 들어.

내가 검색해 봤는데 직장인의 삼'요'가 있데.

상사가 내게 뭐라고 말을 하잖아.

그럼 [제가요?] 라고 해.

네 말을 들은 상사가 또 뭐라고 하잖아.

그럼 [왜요?] 라고 해.

그리고 상사가 또 말을 하잖아.

그럼 [지금요?] 라고 해.

물론 여기서 중요한 건 시선처리야. 넌 눈을 뜨는 법부터 다시 배워야 해.

지금부터 누나만 믿어.

아.. 그리고 내일은 유전무죄 로펌에 갈 거니까 그리 알고 준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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