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죽여줄 남자.

14화. 병세동생, 담력 기르기(1)

by 묭롶

"생각보다 심각하군요."


병세의 머리칼 사이로 손가락을 넣어 이곳저곳을 살펴본 유전무죄 로펌 사무장은 병세의 얼굴을 한 번 쳐다본 뒤 그의 머리에서 손을 거두고는 자신의 자리로 돌아가 노트북에 뭔가를 빠르게 기입했다.

사무장의 맞은편에 앉은 병세는 테이블 아래로 시선을 내리 깔은 채 직원이 내어 준 종이컵에 담긴 녹차만

들이켰다. 마침내 고개를 들어 병세와 미리내를 본 사무장이 말했다.


"의뢰인의 상태와 정황으로 봐서는 직장 내 괴롭힘이 있었다고 보여집니다.

하지만 객관적인 증거가 중요하죠. 혹시 괴롭힘을 당했음을 입증할 자료가 있을까요?"


사무장의 말에 병세가 주춤주춤 자신의 핸드폰을 사무장 앞으로 내밀고는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제가 모든 것을 기록하는 버릇이 있어요.

쓸 때마다 괴롭지만 밤이면 꼭 쓰게 돼서 그것 때문에 또 잠을 못 자고....."


말을 하다가 울컥해서 목이 메이는지 병세는 말을 더 잇지 못했다.


"아... 여기 메모장에 기록이 있네요. 상세한 날짜와 가해자 그리고 정황에 대한 기록이 있으니

일은 쉽게 진행이 되겠습니다.

일단 정신과에 가셔서 직장 내 괴롭힘으로 인한 진단서를 발부 받아오세요."


병세의 메모장을 자신의 메일로 전송하고 자신의 노트북에 해당 관련 내용을 기록하는 사무장을 지켜보던

미리내가 말했다.


"저흰 확실한 조치를 원하는데 어떻게 해주실 수 있죠?"


눌러쓴 모자 아래로 강렬한 눈빛을 발하는 그녀의 모습에 사무장은 그녀와 병세의 모습을 번갈아 쳐다보며

둘이 무슨 관계일지 궁금해졌다. 하지만 곧바로 다시 자신의 본분으로 돌아온 그는 헛기침을 하고는 정신을 차렸다.


"확실함을 따지신다면 제대로 찾아오신 겁니다.

저희 유전무죄 로펌은 수임료에 따라서 가장 확실한 최적의 변호사를 매칭해 드립니다.

어떤 수준을 원하시는지요."


미리내가 그의 말에 엄지손가락을 들어 올렸다.


"당연히 최고여야죠."


그녀에게 빚진 엄청난 병원비에 이어 이제 변호사비까지 빚지게 생긴 병세는 그녀의 말에 안절부절못했다.

그가 그녀의 옷자락을 잡아당기자 왜 그러냐는 표정으로 미리내가 그를 쳐다보았다. 작은 목소리로 일을

키우지 말자고 말하는 그의 말에 그녀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밟을 때 확실히 밟아놔야 두 번은 못하는 법이야.

이건은 할 수 있는 조치를 다 취해주시고 변호사도 이 로펌 최고로 해줘요."


사무장은 시원시원하게 대답하는 의뢰인이 마음에 들면서도 안절부절못하는 병세의 모습에 저러니 직장에서 괴롭힘을 당하지라는 생각도 들었다. 고개를 흔들어 사념을 지운 그가 다시 말했다.


"오늘은 여기까지 하시고 다음번 진단서 가져오실 때는 변호사님이 상담해 주실 겁니다."


인사를 한 뒤 문을 열어주는 사무장을 뒤로하며 로펌의 정문을 빠져나오자마자 병세가 앞서 걷는 미리내의

옷자락을 붙잡아 멈춰 세웠다.


"이렇게까지 하실 필요는 없는데요."


뒤돌아 병세를 쳐다본 미리내가 자신에게 시선을 못 맞추는 병세를 쳐다보았다.


"이것 봐. 사람 눈도 못 마주치게 아주 병신을 만들어놨는데

언제는 죽어서 귀신이 되서라도 복수를 하겠다며.

왜 살아서 복수할 생각은 못하는 거야?"


그녀의 말에 고개를 들어 눈에 힘을 준 병세가 자신도 모르게 큰 목소리로 그녀에게 답했다.


-"그러니까요. 절 왜 살렸어요. 죽었으면 다시 살아갈 걱정은 안 해도 됐잖아요."


미리내는 그의 말에 순간 돌려차기 한방으로 그를 날려버릴 뻔했지만 가까스로 욱하고 올라오는 화를

참아냈다. 그녀의 주먹을 꼭 쥔 손이 떨렸다. 하지만 자신에게 대드는 그의 모습에 대견함을 느낀 그녀는

화난 얼굴이 순간 풀어지며 피식 웃었다. 저도 모르게 큰 목소리를 내서 무슨 일인가 싶은 사람들이 주변에서 지켜보고 있었고 자신의 말에 화를 내기는커녕 피식 웃는 그녀의 모습에 병세는 부끄럽기도 하고 화가

나기도 해서 얼굴이 붉어졌다. 일단 지금 있는 곳에서 벗어나야겠다는 생각이 든 병세가 그녀를 앞질러

빠른 걸음으로 걷기 시작했다. 그런 그의 뒤에서 미리내가 웃으며 그를 불렀다.


"병세야~~~ 누나랑 같이 가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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