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고는 순간이라는 말이 있다. 로맨틱펀치 공연을 보기 위해 장거리 운전을 하다 보면 몇십 킬로마다 보이는 주의 문구는 '졸음운전 모든 것을 잃을 수 있습니다'였다. 물론 나는 운전 중에 졸음이 오는 경우가 거의 없다. 애를 가졌을 때도 졸음이 없었고 수유를 할 때도 낮잠이라고는 없던 나였다. 하지만 한 순간에 모든 걸 잃은 사람이라면 무얼 원망해야 할까?
주변에 가까운 사람을 잃고 그 상실감을 극복하기 위한 모임에서 사람들은 자신이 겪은 죽음을 얘기한다. 자신이 받아들이기 힘든 현실을 자신의 입 밖으로 목소리로 내보냄으로써 그 죽음을 현실로 받아 들이고자 하는 사람들의 모임. 그 모임에서 말이 없이 그저 듣기만 하는 한 남자가 있다.
안녕하고 헤어지는 사람들은 언제나 다시 안녕하고 만나는 순간을 약속하며 헤어진다. 그런데 아무 준비 없이 헤어지는 이별에는 무엇이 답이 될 수 있을까? 함께 했던 시간을 담은 SNS의 기록들은 추억이 아닌 상처를 후비는 소금이 될 것이다. 그런데 그 SNS 때문에 연인을 잃었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나도 아침마다 출근을 할 때면 신호가 걸릴때마다 SNS를 체크하기 바쁘다. 바쁜 일상에서 인친들과의 교류를 위해 시간을 쪼개다 보면 신호에 걸리는 잠깐, 그리고 정체 중에 잠깐잠깐 휴대폰을 들여다보게 되는데 그러다 화면에 넋을 놓을 때면 뒤에서 빵빵거리는 소리를 듣기 일쑤이다.
그리고 손에 핸드폰에 없는 시간은 불안감에 시달리게 된다. 알코올 중독 환자가 절주를 했을 때 느끼는 섬망처럼 내가 SNS를 보지 않는 순간 뭔가가 일어날 것 같은 불안감이 나를 조급하게 한다.
<스미더린>은 현대인들의 그러한 조급증에 대한 경고이다. 무언가를 잃고 나서야 느끼는 후회는 뒤늦은 것이기에 뭐든 빠른 SNS만큼 빠르게 찾아올 후회에 대비해야 함을 우리에게 말하고 있다..
어쩌면 우리는 SNS를 통해 얻는 것 이상으로 엄청나게 많은 것을 잃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그 잃음에 관해 <스미더린>은 이야기하고 있다.
PS: 경찰보다 빠른 정보력으로 용의자의 인적사항을 찾아내서 FBI와의 공조수사를 이끌어내는 <스미더린> 법무팀과 비서진의 대응능력은 감탄을 자아내게 한다. 만약 우리나라 기업 총수라면 비정규직이 인질로 잡힌 상황에서 용의자와 전화통화를 할 수 있을까? 참 궁금해지는 지점이다.
그나마 스미더린 총수 빌리가 ‘그럼 우리 직원은 풀어줄 거죠?’라고 묻는 장면에서 안도의 한숨을 쉰 건 나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