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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묭롶 Feb 24. 2024

[환상동화집]

[헤르만 헤세]

저마다의 삶이 길 없는 길을 걸어가는 험난한 여정이라면 그 끝에는무엇이 있을까?  

그 끝에 아무것도 없을지라도 살아가는 동안 사람들은 막연한 희망을 불꽃처럼 품고 산다.  

어린 시절 읽었던 동화들의 대부분은 "그래서 주인공은 오래오래 행복하게 잘 살았답니다"로 끝이 났다.


 마법이 풀린 신데렐라가 한결 더 비참하게 보이는 자신의 현실로 돌아왔지만 마법에 걸렸던 순간의 행복을 기억하는 것처럼,  현실은 동화 같지 않지만 많은 사람들이 가슴속에 저마다 아름다운 동화를 품고 산다.




                           「꽃 향기를 맡을 때 마다요.  꽃 향기를 맡을 때면,


                         매번 제 가슴이 말하지요.  아주 옛날에는 제 것이었는데


                        잃어버리고 만, 뭔가 아주 아름답고 귀한 것에 대한 추억이


                             그 향기에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요.」 <아이리스> p267




그래서였을까?  1차 세계대전 시기 헤르만 헤세는 동화를 썼다.  반전의 뜻을 담은 글을 기고했다는 이유로 

배신자, 반역자로 비난받고 막내아들은 중병에 걸리고 부인은 정신병원에 입원하고 경제적으로 힘들어서 

남은 아이들을 친인척에게 맡겨야 했던 최악의 현실에 맞서 헤르만 헤세는 동화를 썼다.  그의 동화는 우리가 잊고 지냈던 무언가를 떠올리게 한다.



그것은 오랜 구도의 과정을 통해 깨닫게 되는 성찰과도 같다.  그의 소설『유리알 유희』의 명인인 

요제프 크네히트에게 찾아온 갑작스러운 죽음처럼 자신의 삶에서 무언가를 이룬 사람도 그렇지 못한 사람도

삶은 결국 어떠한 무언가를 찾기 위한 과정이라는 것을 헤르만 헤세는 그의 작품 속에서 일관되게 말하고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신의 현재에 만족하지 못한 채 살아간다.  그러면서 더 예쁘거나 잘생기고 돈도 많고 

똑똑한 데다 모두에게 사랑받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고 산다.  나부터도 거울을 볼 때마다 나이 먹고 

예쁘지 않은 내 얼굴이 참으로 불만족스럽다.  좋은 옷과 좋은 차를 갖고 싶은 욕심과 놀 거 다 놀면서 

똑똑해지고 싶다는 망상에 사랑받고 싶은 욕심까지 가득하니, 아마 이러한 내 마음속을 헤르만 헤세가 

보기라도 한 것처럼 나는 그의 『환상동화집』을 읽는 내내 부끄럽고 서글퍼졌다.




                  「마르게리타 아가씨는 정신착란에 빠졌지만, 여러 해를 더 살았지.


                    이따금 발코니의 난간에 앉아 지나가는 곤돌라나 조각배를 향해


                                    매번 소리를 질러대는 거였어.


                             "구해 주세요!  강아지를 구해 주세요!


                               꼬마 피노를 구해 주세요!"」<난쟁이> p37




       「그는 대부에게 말했다.  "저를 돕지 못했던 옛날의 마술을 가져가시고,


        그 대신 제가 사람을 사랑할 수 있게 해 주세요!"」 <아우구스투스> p116



                                 「"소원을 하나 말해 보지 않을래?"


           그가 하나의 소원, 비밀스러운 소원을 말하자, 까마득한 옛날에 잊힌


                 일들을 생각해 내야 하는 고통이 모두 떨어져 나갔다.


                        그 산과 평지는 허물어져 하나가 되었다.


       팔둠이 있던 곳에는 끝없는 바다가 펼쳐져 쏴쏴 소리를 내면서 물결쳤다.


                      그 위로 태양과 별들이 차례로 지나갔다.  」<팔둠> 196





베네치아에서 가장 아름답지만 인성을 갖추지 못한 카도린 <난쟁이>과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축복을 

받았지만 그 축복이 저주가 된 삶을 살아가는 <아우구스투스>, 그리고 '산'이 되게 해 달라는 소원을 빌어서 무수히 오랜 시간 동안 인간의 흥망성쇠와 희로애락을 지켜본 끝에 스스로 바다가 되는 <팔둠>을 읽으며 

나는 내가 '나'라는 삶을 살아가면서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계속 제자리에서 맴을 돌고 있었음을 깨닫게 

되었다.  그 순간 나는 또 알게 되었다.  헤르만 헤세의 작품 속 인물들의 방황이 나와 닮아 있음을, 방향을 

잃은 채 삶에 조난당했을 때 무조건 노를 저어댄다면 같은 자리를 맴돌 수밖에 없으니 그럴 땐 고개를 들어 

하늘의 별을 바라봐야 한다는 것을 헤르만 헤세가 내게 알려주었다.




                                          「"나는 다시 그림을 그릴 거야.


                      ~그러나 집과 사람, 나무는 더 이상 그리지 않을 거야.


       ~그리고 태어나고 있는 모든 것 변화하고 있는 모든 것, 인간이 되려는 충만한 동경,


  별이 되려는 충만한 동경, 충만한 탄생, 충만한 소멸, 충만한 신과 죽음을 그릴 것이야."」


                                                                              『클링조어의 마지막 여름』p51



                        「이 돌멩이는 돌멩이다.  그것은 또한 짐승이기도 하며,


                     그것은 또한 신이기도 하며, 그것은 또한 부처이기도 하다.


                   내가 그것을 존중하고 사랑하는 까닭은 그것이 장차 언젠가는


                         이런 것 또는 저런 것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 아니라,


        그것이 이미 오래전부터 그리고 항상 모든 것이기 때문이다.  」『싯다르타』p210



                          「더러는 결코 사람이 되지 못한 채, 개구리에 그치고 말며,


                                          도마뱀에, 개미에 그치고 만다.


            그리고 더러는 위는 사람이고 아래는 물고기인 채로 남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모두가 인간이 되라고 기원하며


                                         자연이 던진 돌인 것이다.  」『데미안』p9




                    「예술 작품의 원형은 피와 살이 아니라 정신적인 어떤 것이지.


                      그것은 예술가의 영혼 속에 깃들여 있는 형상이라 할 수 있지.


                   나르치스, 나의 영혼에도 그런 형상들이 살아 움직이고 있다네.


               언젠가는 그런 형상들을 표현해서 자네한테 보여줄 걸세.」『나르치스와 골드문트』p414




과거에 같은 곳을 맴돌며 노를 저었던 나는 제자리에 멈춰서 남은 시간 동안의 가능성을 생각해 본다.

헤르만 헤세의 소설 『데미안』에서처럼 '나'라는 존재가 인간이 되라고 신이 던져놓은 돌이라면 파충류나 

벌레에 머무르지 않고 '인간'이 되어야 할 텐데, 얼굴만 사람이고 그 아래는 지렁인데 사람이라고 착각하고 

있으면 어떡하나 싶은 생각도 든다.  그의 소설 속에 나오는 돌멩이가 그 자체로 완성된 그 모든 것들의 

원형을 간직한 메타포라면, 어쩌면 나도 그의 동화 <픽토어의 변신>처럼 그 무엇으로도 변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 가능성이 주는 희망이 앞으로의 나의 시간을 비춰주는 별빛이 되어 주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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