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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든]: 마음이 가난한 자를 위한 복음서!

by 묭롶

[진실로 바라건대 당신 내부에 있는 신대륙과 신세계를 발견하는 콜럼버스가 돼라.

그리하여 무역을 위해서가 아니라 사상을 위한 새로운 항로를 개척하라.

각자는 하나의 왕국의 주인이며, 그에 비하면 러시아 황제의 대제국은

보잘것없는 작은 나라, 얼음에 의해 남겨진 풀 더미에 불과하다. ] p473~4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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헨리 데이빗 소로우의 [월든]을 읽는데 평소보다 오랜 시간이 걸렸다. 이 책을 읽는 동안 나는 이 책을 들고 월든 호수와 다르게 녹조가 가득한 내 집 앞에 있는 인공호수를 걸었고 집 근처 술집에서 책을 펼쳐놓고 혼자 술을 마시기도 했으며 내가 좋아하는 락밴드의 콘서트에도 이 책을 들고 다녔다. 그래서 지금 [월든]의 겉표지는 테두리가 닳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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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든]은 1945년 3월 월든 호숫가에 집을 짓기 시작한 소로우가 1949년 호숫가의 집을 나오기까지 그곳에서 보낸 시간 동안의 기록이다. 하지만 소설 [모비딕]이 소설이지만 고래에 대한 방대한 분량의 자료를 지닌 다큐멘터리이면서 인류의 근원적 본질에 맞닿아 있는 인문학적 고전의 가치를 지니는 것과 마찬가지로 [월든]의 세계는 월든 호수만큼이나 깊고도 넓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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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로우는 말한다. 평생 자신의 것이 될 수 없는 집이나 농장을 갖기 위해 일평생을 대출의 노예가 되어

자신의 삶을 돌아보지 못한 채 반복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얼마나 영혼이 가난한 사람인지를 [월든]을 통해 보여주고 있다. 또한 그 집을 채우기 위한 겉치레와 생존을 위한 식사가 아닌 아귀처럼 탐욕적인 욕망을 채우기 위한 과도한 음식 섭취와 그 과정의 허례허식이 갖는 천박함과 가난한 영혼을 감추기 위한 값비싼 의복 등등..... 우리가 일반적으로 추구하는 것들이 결국 우리 영혼의 가난을 부추기는 원인이 되고 있다는 사실을 자신의 삶을 통해 되돌아보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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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로우는 [월든]에 자신이 호숫가의 집을 짓는 데 사용한 비용과 그 집에서 사는 동안 자신이 경작했던 농작물의 경작비용과 그로 인한 산출물의 양과 이를 판매한 금액 그리고 자신이 일 년 동안 먹은 식량의 양과 주요 비용에 대해 자세히 기록해 놓았다.


콩코드 마을의 사람들은 숲 속에서 혼자 육식도 정제 밀가루도 없이 살아가는 소로우가 곧 영양실조로 병에 걸리거나 죽게 될까 봐 걱정하지만 소로우는 그런 걱정에 대해 사람에게 우유와 고기를 주는 소나 돼지는 풀만 먹고도 자신의 몸을 살찌운다며 육식이 생존의 필수조건이 될 수 없다고 말한다. (사실 나는 소로우가 고기를 소량이라도 주기적으로 먹었다면 지금의 나보다 한 살 많은 마흔다섯에 폐결핵으로 죽지 않고 조금은 더 살았을까라는 의문이 생긴다. )


소로우는 인간이 생존을 위해 자신의 모든 시간을 다 걸고 일을 하지 않고도 충분히 먹고살 수 있다고 말한다. 새벽과 아침나절의 노동을 통해 자신의 생존을 위한 식량뿐만 아니라 생활을 할 수 있을 정도의 부산물을 얻을 수 있었던 소로우는 일과의 남는 시간 대부분을 독서와 호수 주변을 관찰하며 보냈던 것으로 보인다.


[베다의 경전(인도의 가장 오래된 종교 문학)들은 “모든 지성은 아침과 함께 깨어난다.”라고 말했다. ] p137


[아직도 우리들은 개미처럼 비천하게 살고 있다.

우화를 보면 우리는 이미 오래전에 개미에서 인간으로 변했다고 하는데도 말이다.

우리는 난쟁이 부족처럼 학들(일리아드 인용)과 싸우고 있다.

그것은 착오 위에 겹쳐진 착오이며,

누더기 위에 겹쳐진 누더기다. ] p139


[ 맹자는 이렇게 말한다.

“사람이 금수와 다른 점은 극히 사소하다.

보통 사람은 그것을 곧 잃어버리나 군자는 그것을 조심스럽게 간직한다.” ] p328


[월든]에는 호머의 <일리아드>와 <논어>, <맹자>는 물론 인도와 유대 그리고 힌두교의 경전까지 인용되어 있다. 1800년대 중반을 살았던 소로우가 어떻게 그 많은 책들을 읽었는지 나는 짐작도 가지 않는다.

28살의 소로우가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는데 논어와 맹자를 인용하는 동안 나는 마흔네 해를 무엇을 하면 보냈나 생각해보니 이번엔 내 지식의 가난이 보이는 듯하여 참 부끄러워진다.


지금은 없어졌지만 과거 월든 호수 주변에 터를 잡고 살았던 사람들에 대한 기록과 자신의 집 주변의 여러 동식물들 그리고 계절의 변화에 따른 호수의 수온과 수위의 변화 그리고 월든 호수 인근 호수의 특징과 월든 호수의 깊이 측정 등 보통 사람들이 그냥 보고 아무 생각 없이 지나치는 모든 것들에 소로우의 시선이 깃들어 있다.



[ 1845년 월든 호수는 12월 22일 밤에야 비로소 전면적으로 얼음이 얼었다.

~1849년에는 12월 31일 경에, 1850년에는 12월 27일 경에,

1852년에는 1월 5일에, 1853년에는 12월 31일에 얼음이 얼었다. ] p370~372


[ 나는 또 이 근처에서 나와 절친한 밤 친구인 호수의 얼음이 우는 소리를 들었다.

얼음은 잠자리에 들었지만 편히 잠들지 못하고 몸을 뒤척이는 것이

속이 좋지 않거나 나쁜 꿈이라도 꾸는 모양이었다. ] p406


이빨이 얼얼해질 정도로 신맛이 강한 야생 사과를 마구 몰아치는 세찬 바람 속에서 걸으며 그 사과를 깨물어 먹는 맛을 [야생 사과]에 담아낸 소로우이고 보니 나는 [월든]을 읽는 내내 내가 산문집을 읽는 것인지 아니면 다큐멘터리를 보고 있는 것인지 그도 아니면 ‘월든’이라는 한 편의 긴 장시(長時)를 읽고 있는 것인지를 구분할 수 없었다.



[ 이 어린 새싹들과 즐거운 비교가 되는 것들은 겨울을 견뎌내느라고 초췌해지긴

했지만 자신의 당당한 아름다움을 잃지 않고 있는 몇몇 잡초들이었다.

~이들은 봄이 채 되기도 전에 이곳을 찾은 새들에게 아직도 여분이

남아 있는 자연의 곡물 창고인 셈이다.

과부가 된 자연의 여신은 이 식물들을 우아한 상복(喪服)이라도 되는 것처럼

몸에 걸치고 있다. ] p457



마흔다섯이라는 나이로 죽음이 임박했던 그 순간에도 마지막 그 한순간까지 만족스럽게 이 세상을 여행하다 떠난 소로우에 비하면 난 참 가난한 사람이다. 월든 호수의 물이 떠 놓은 지 일주일이 지나도 맛과 온도가 변하지 않는 인근 호수의 물은 쉽게 변해버렸다. 겨우내 꽁꽁 얼어붙은 월든 호수의 얼음을 잘라내어 여름에 큰돈을 벌 생각으로 자본가가 큰 비용과 시간을 들여 얼음을 채굴했지만 채굴해서 짚더미로 잘 보관해놓은 얼음 더미가 얼음 속에 무수히 많은 공기 기포와 얼음 밑에서 올라오는 공기의 상충 작용으로 한 순간에 물로 변해서 호수가 자신의 물을 되찾는 부분에서 나는 통쾌함에 얼마나 웃었는지 모른다.




[ 왜 우리들은 이렇게 쫓기듯이 인생을 낭비해가면서 살아야 하는가?

우리는 배가 고프기도 전에 굶어 죽을 각오를 하고 있다.

사람들은 제때의 한 바늘이 나중에 아홉 바늘의 수고를 막아준다고 하면서,

내일의 아홉 바늘 수고를 막기 위해 오늘 천 바늘을 꿰매고 있다. ] p143



어쩌면 내 삶도 그런지도 모른다. 수원지가 얕은 호수에서 열심히 물을 길어다 쟁여놓았다고 생각했는데 떠놓은 물은 죄다 맛이 변해버렸는데 나는 그것도 모르고 오늘도 또 짧은 생각에 얕은 호수에서 물을 긷고 있는 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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