ㅂㅇㅎ : 나머지 공부: 이브닝 스터디: 달 식당: 190814
<굿바이 썸머>
<그대와 올나잇>
<나는 당신에게 그저>
<딱 죽기 좋은 밤이네>
<마이 블러디 송>
<바람이 좋아>
<밤은 짧아 걸어 아가씨야>
<사적인 세계>
<새벽엔 전화해>
나는 2016년 9월 4일 로맨틱펀치를 처음 만나 난생처음 록밴드에 입덕을 하게 되었다. 입덕을 한 후로 멤버들 모두를 고루 사랑하겠다고 말하고 다녔지만 내심 보컬 배인혁 님을 많이 좋아했다. 겉으로 표현을 못했을 뿐 공연 끝나고 퇴근길에 가서 죽순이가 되고 싶을 정도로 애가 타게 좋아한다. (물론 현실은 보컬님 반경 다섯 발자국 안에 접근하지도 못하지만 ㅜ.ㅡ)
하지만 2017년 8월 중순 이후 보컬 배인혁 님이 망막박리로 인해 수술을 받고 치료를 위해 연말까지 쉬는 동안 그동안 드러내지 못하고 숨겨왔던 나의 본심이 터져 나오고 말았다. 아마도 그렇게 오랜 시간 많이 울었던 건 태어나서 처음이었던 것 같다. 마흔이 넘게 살아오면서 별별 일을 다 겪었어도 그 일을 겪는 바로 그때만 울었지 계속 짜는 스타일이 아니었는데 가만히 있어도 눈물이 나고 운전을 해도 눈물이 나고 밥을 먹어도 눈물이 났다.
엉엉 울면서 나는 보컬님이 나아서 다시 활동하게 되면 다 필요 없고 좋아하고 싶을 만큼 맘대로 좋아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로펀 멤버들 골고루 사랑이라는 애초의 마음가짐은 연기처럼 사라지고 보컬님을 향한 불타는 사랑으로 재충전되고 말았으니 그래 봤자 지금도 곁에도 못 가는 건 똑같지만 좋아하는 마음을 일부러 숨기려고는 하지 않고 가 아니라 거의 중증 환자처럼 보일 지경이 되어 버렸다.
그렇게 오매불망 좋아하는 보컬님이 솔로 활동으로 2017년 12월 10일 <사적인 세계> 그 첫 번째 공연이 시작되어 2019년 1월 28일까지 공연을 진행했다. 한 달에 허락된 공연이 세 번이어서 배인혁 님 솔로 활동 공연 스케줄이 잡히면 나는 로맨틱펀치 공연과 배인혁 님 공연 중에 공연을 골라야 하는 안타까운 상황이 계속되던 시간들이었다.
배인혁 님은 최근 <사적인 세계>의 대관과 티켓팅 문제로 인해 오손도손 모여서 하는 조그만 공연을 해보고 싶었노라고 말해왔다. 그러다 정말 작은 곳에서 평일에 진행하는 공연을 해보겠다고 얘기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ㅂㅇㅎ>, <나머지 공부>라고 이름 붙인 공연을 진행한다는 공지가 떴다. 그 첫 번째 공연을 사정상 가지 못한 나는 그날 술을 얼마나 많이 마셨는지 모른다. 행복해 보이는 표정으로 노래하는 가수님을 피드로만 봐야 하는 내 가슴은 찢어지게 아팠다. 무려 두 시간 넘게 공연을 했다는 얘기에 나는 두 번 죽었다.
그래서 다음에 <ㅂㅇㅎ> 공연을 하게 되면 무조건 가리라 굳게 마음먹었다. 참 사람 마음먹은 대로 되는 일이 없어서 하필 공연하는 날이 팀장님 휴가라 혼자 근무해야 하는 평일 수요일로 잡힌 것이었다. ㅜ.ㅡ
힘들게 사무실을 빠져나와서 비행기 게이트 닫히기 십 분 전에 비행기를 타고 김포공항에 도착해서 미친 듯이 뛰어서 공항철도를 타고 서울역에서 1호선으로 갈아타고 종각역에서 내렸다. 나는 내리면 바로 공연장인 달 식당이 보일 줄 알았는데 동서남북 어디로 가야 하는지 감을 잡을 수가 없었다.
공연장에 먼저 도착한 통영 형부에게 미친 듯이 전화로 sos를 쳐서 공연장에 뛰쳐 들어간 시간이 오후 7시 15분, 그나마 8시 공연이라 시간 여유가 있었지만 내 입장 순번은 99번으로 자리를 잡을 만한 곳이 거의 없었다.
(후문에 전날 공연장에 와서 입장 번호를 받는 사람도 있었고 아침 9시에 입장 번호 받고 밤 8시까지 공연장인 식당에서 시간을 보냈다는 팬들도 많았다는.......)
이날 렌즈를 SEL70200G를 마운트 해서 갔는데 맨 뒷자리에서 무대까지가 거리가 상당히 멀었고 저 늘어진 녹색 이파리가 계속 초점을 잡아먹은 데다가 공연장이 엄청 어두워서 사진도 영상도 참 대략 난감이었다.
오후 8시가 거의 다 되어서 솔로 가수 배인혁 님이 도착했다. 오렌지 셔츠에 슬러퍼를 신은 나의 록 보컬님이자 어쿠스틱 솔로 가수님 되시는 배인혁 님은 목 상태가 굉장히 안 좋지만 그래도 어떻게 될 거라고 얘길 하며 공연을 시작했다. 가수님 말씀처럼 뒤로 갈수록 목이 풀려서 하~~~ 정말 1시간 40분 공연 시간 동안 꿈을 꾸는 것만 같았다.
가수님은 오붓이 하는 공연을 꿈꿨다고 말했지만 공연장은 사람이 정말 미어터질 정도로 많았고 그 빽빽이 들어찬 팬들이 호응을 하며 떼창을 하니 그 울림의 감동이 평소보다 몇 곱절은 더 되는 것 같았다. 그래서일까!
가수님도 팬들 반응에 더 신이 나서 연신 웃는 모습으로 기타 치고 피아노 연주를 해주는 것이었다.
(자꼬 웃고 그러면 누나 가심 팍 터져 불어.......)
슬리퍼 신은 발로 건반 페달 밟느라 발가락이 하얗게 힘이 들어갔다는데 나는 너무 멀어서 그 모습 보지 못했고 건반 열심히 쳐서 손가락에 피가 났다며 사진 찍어서 인스타에 올려달라고 얘길 하며 손가락 보여주는데 난 그저 뒤에서 보이지 않는 손가락을 눈이 빠지게 보려고 노력만 했다. 이날 기타 거치대가 쓰러지면서 가수님 기타가 약간의 파손을 입었는데, 가수님 한숨 쉬면서 큰돈 들여 장만한 기타인데라며 파손 부위를 팬들에게 보여주기도 하였다. 참 가까이에서 보는 팬으로서는 정녕 은혜로운 공연이 아닐 수 없겠으나 맨 뒤에 서서 보는 나는 그저 저 멀리 어두운 가운데 아스라이 보이는 별빛 같은 가수님이었다.
공연 중간에 가수님과 친한 가수인 우주히피님이 공연장을 찾았다. 주피(우주히피)님 좌석을 마련해서 앉으시라고 가수님이 권했지만 워낙 폐 끼치는 걸 염려하는 주피 님답게 기둥 옆에 서서 가수님 공연을 지켜보다 공연 말미에 <함께 있자>라는 곡을 들려주시고 가셨다. 우리 가수님은 그런 주피 님을 본인의 핸드폰에 담아 공연장면을 영상으로 올리기도 했다.
공연장 분위기가 워낙 화기애애하고 가수님이 많이 웃어서인지 매번 들을 때마다 눈물 왈칵 쏟아지는 <그 말을 못 했죠>, <새벽엔 전화해>, <나는 당신에게 그저>도 처음으로 울지 않고 들을 수 있었다. 금방 해맑게 웃다 가도 금세 감정을 잡아 노래하는 가수님을 보면서 역시 예술은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님을 다시금 느꼈다.
그래서 우리가 무디게 스쳐 지나가는 일상이 가수님에게는 노래가 되고 곡이 되나 보다.
이날 들은 곡은 열일곱 곡 정도가 되지만 사실 솔로 가수 배인혁 님으로 출시된 음원은 몇 곡 되지 않는다. 너무 좋은 곡들인데 스트리밍 서비스로 들을 수 없다는 점이 참으로 안타깝다. 그나마 가수님이 눈 수술로 고생했던 시기에 쓰인 <그 말을 못 했죠>는 우주히피님의 권유로 음원으로 나온다고 하니 벌써부터 기다려진다.
가수님은 공연 중간에 건반이 일제지만 본인은 불매운동을 열심히 참여하고 있으며 이 건반은 불매운동 한참 전에 구매한 거라 어떻게 방법은 없고 스티커로 가릴까도 고민했다고 얘기했다. 나도 이날 200mm가 너무 짧아서 지금 sel100400 gm을 고민 중인데 신품을 살 수는 없고 중고는 이미 거래가 기존에 됐던 건이니 괜찮치 않을까 싶어서 열심히 고민 중이다.
이날 공연장에 로맨틱펀치로 명칭을 바꾸기 전인 워디시로 활동하던 시절에 팬이었던 여성 두 분이 공연장을 찾았는데 가수님이 그분들을 기억하고는 엄청 반가워하는 모습을 보면서 로펀으로는 칠십 번을 만나고 솔로 가수님으로는 열네 번째 만남을 갖은 나는 가수님이 어떤 모습으로 기억하고 있을지가 새삼 궁금해졌다.
음.... 아마도 가까이 다가오지도 못하고 이상한 표정으로 얼어서 넋이 빠진 반건조 오징어로 기억이 되지
않았을까??? 켁!
ps: 이날 공연 끝나고 바로 이틀 뒤에 올림픽홀에서 K-BAND 공연이 있었고 바로 그다음 날 강원도 인제에서 인제 록 페스티벌이 열렸는데 이날도 계획보다 엄청 오랜 시간을 공연했던 가수님은 혼잣말로 '그래 이틀 쉬면 괜찮을 거야'라고 얘길 해놓고 양 이틀 공연에서 엄청난 극 하이 텐션으로 공연장을 부수어놓았다는 후문이 들렸렸다는....... 참.. 보면 볼수록 알면 알수록 대단한 가수님이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