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렛츠록 페스티벌 #난지 한강공원 #190922
내가 로맨틱펀치를 처음 만났던 2016년 9월 4일 엄청난 폭우가 쏟아졌다. 그날 이후로도 로펀 공연이 있는 날엔 절반 이상은 비가 왔던 것 같다. 오죽했으면 기우제 밴드라는 얘기가 있을 정도로 비와 친한 밴드가 바로 로펀이다. 올해도 락페의 시작인 2019년 5월 19일 서울 그린플러그드 때부터 비가 왔다. 그플을 시작으로 락페 시즌 내내 로펀 공연 때 몇 번을 제외하고 비가 내렸다. 덕분에 나는 그렇잖아도 다른 곳에 비가 내리면 내리는 곳의 열 배 정도 폭우가 집중되는 지리산을 올여름 내내 십여 번 미숙한 운전실력으로 통과해야 했다.
그렇다. 2019년 9월 28일 올해 라인업이 대박이라고 다들 좋아했던 렛츠록 페스티벌을 하루 앞두고 태풍 타파가 한반도에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다. 과연 공연이 제대로 진행이 될 수 있을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27일 오후에는 폭우가 쏟아졌다. 가뜩이나 비가 내려서 심란한데 공연날인 28일이 일요일인지라 나는 27일에 모든 집안일을 해치워야 했다. 27일 내내 새어머니가 내준 과제를 완수해야만 원님 잔치에 갈 수 있는 콩쥐처럼 허리가 부러지게 집안일을 해낸 나에게 남편이 말했다. “비도 오는데 양꼬치 어때?” 난 그때 참았어야 했다. 하지만 그 모든 사건들이 그렇듯이 고된 집안일에 지친 나는 양꼬치 & 칭다오가 끌렸다. 비는 내리고 양꼬치는 맛있고 가 아니고 소주가 너무 맛있어서 나는 평소보다 더 꽐라가 되었다.
음……. 난 28일 아침 서울 가는 기차를 타야 했다. 눈이 떠지긴 했으나 정신은 내 몸뚱이로 돌아오지 못한 상태로 칫솔을 문 채 좀비처럼 집 안을 헤매는 나를 보다 못한 남편이 폭우를 뚫고 기차역까지 데려다줬다. 평소 같으면 상상도 못 할 일인데 어제 같이 죽자고 술을 마신 전우애가 불탔던 탓인지 “그래 갔고 공연은 가겠냐?”라는 한 마디와 함께 나를 기차역에 태워다 줬다.
그렇게 기차는 탔다. 하지만 나는 빈 속에 헛구역질이 올라오는 상태였다. 문제는 공연장인 난지 한강공원은 KTX 광명역에서 내려서 지하철을 세 번을 갈아타고 다시 셔틀을 타야 하는 난코스였다. 내 등에는 참으로 듬직한 카메라 가방이 메어져 있었다. 난 숙취로 식은땀을 줄줄 흘리며 몇 번씩이나 지하철을 반대 방향으로 타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써가며 지하철을 갈아탔고 드디어 셔틀이 있다는 월드컵경기장역에서 내려서 사람들이 가는 방향을 따라서 기어갔다.
아아아 우여곡절 끝에 로펀이 출연하는 세 시 전인 오후 두 시에 난지 한강공원에 도착할 수 있었다. 나의 상태는 아주 좋지 않았지만 로펀을 찍을 거라고 A7R3에 SEL100400 GM을 마운트하고 공연장 맨 끄트머리에 자리를 잡았다. 400M의 줌을 믿고 참 멀찍이도 자리를 잡았는데
웬걸 무대가 생각보다 낮아서 사람들이 팔을 들어 올리면 초점이 로펀 멤버들이 아닌 관객들을 잡기 바빴다. 다시 또 식은땀을 줄줄 흘리며 공연장 이곳저곳으로 자리를 옮겨 보았지만 역시 무대와의 거리가 멀기도 멀었거니와 초점이 엉망이었다. 거기에 비가 내려서 어둑어둑한 배경까지 더해져 대략 난감의 멘붕이 나에게 먹구름을 드리웠다.
사실 공연 때 비가 올까 봐 걱정했던 것보다 비는 내리지 않아서 다행이었지만 내 몸 상태가 엉망인 데다가 예상치 못했던 촬영 환경의 변수 탓에 나는 속상했지만 이날도 머리에 예쁜 스카프를 동여맨 보컬 배인혁 님의 미모는 첫 등장부터 정신을 못 차릴 정도였다. 첫 곡 <글램 슬램> 때 챙이 넓은 검은색 모자에 검은색 재킷을 입은 배인혁 님이 스탠딩 마이크대를 들고 등장할 때 나는 순간 들이킨 숨이 목에 걸려 내쉴 수가 없었다. 물론 그 멋진 모습을 제대로 담기에는 내 실력이 부족했지만 <글램 슬램>을 시작으로 내달리는 <몽유병>, <파이트 클럽>까지 나는 정신을 차리지 못한 채 넋을 놓고 무대에 몰입했다.
로펀의 무대는 2016년 9월 4일 입덕 한 이후로 삼 년이 넘게 보고 있지만 참 마법 같은 힘이 있다. 들려오는 풍물 장단에 이끌려 주변부에서 장단을 즐기다 그 어느 순간 자신도 모르게 사람들과 어울려 장단에 맞춰 춤을 춘 기억처럼 로펀의 음악은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그 안에서 모두를 하나로 만드는 힘이 있다. 풍물놀이가 삼채에서 굿거리를 거쳐 자진모리로 나아가는 과정처럼 로펀의 공연을 즐기는 동안 나는 그 장단이 이끄는 대로 그 흐름에 한데 섞이게 된다.
내가 로펀에 입덕 한 이후로 여러 번 얘기했던 것처럼 로펀의 가장 큰 강점을 꼽자면 바로 이 음악적 공감력을 제 일로 꼽고 싶다. 물론 음악성과 그 음악을 표현해내는 보컬리스트의 능력만으로 듣는 이에게 감동을 주는 경우가 우리 주변에서 많이 찾아볼 수 있다. 하지만 그 누구라도 공연의 주체가 될 수 있도록 기꺼이 손을 내미는 음악이 있는지에 우선순위를 두자면 그중 독보적 위치를 차지하는 밴드가 바로 로맨틱펀치가 될 것이다.
그냥 집에서 TV 채널을 돌리다가 지쳐서 집 근처 공연장에 나왔다가 우연히 보게 된 로펀의 무대를 처음 보신 내 어머니 연배의 이모님이 엄지 척을 내세울 정도로 친근하고 신나고 즐겁고 현실의 걱정을 모두 잊게 만드는 밴드가 로맨틱펀치다.
맨 뒤에서 전체 뷰로 <굿모닝 블루> 점프 샷을 찍겠다는 나의 바람은 물거품이 됐지만 그 신나는 현장에 내가 로펀의 팬으로서 함께 했다는 것만으로도 나는 로펀의 공연을 보는 짧은 시간을 위한 서울 왕복 길이 아쉽지 않다.
솔직히 로펀의 단독 공연을 매달 두 시간 넘게 온전히 볼 수 있는 로맨틱 파티에 비하자면 요즘 40분이나 50분의 공연이 성에 차지 않지만 그 짧은 시간 동안 자신이 보여줄 수 있는 것 이상의 모든 걸 보여주기 위해 높은 구조물에 오르고 높은 무대에서 관객들을 위해 뛰어내리고 더 많은 관객들 손을 잡아주기 위해 지지대 없는 펜스에 오르는 보컬 배인혁 님과 비싼 악기의 안위를 따지지 않고 폭우 속에서도 감전의 위험을 무릎 쓰고 돌출 무대로 전진하는 로펀의 기타리스트 콘치 님과 레이지 님을 생각할 때 나의 아쉬움은 한 개의 깃털과 같을 것이다.
깃털과 같겠지만 그 깃털이 공연이 끝나고 미친 듯이 앙코르를 외치는 가운데 끝이 나버리면 물 먹은 솜처럼 현실의 무게를 담고 나를 짓누른다. 왜? 그 전날 술을 마시느라 그다음 날 소풍을 가는 딸아이 소풍 장을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ㅜ.ㅡ 공연이 끝나고 나는 뛰었다. 단순히 나는 셔틀을 타고 다시 월드컵경기장역에 가면 6호선을 탈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탈 때와 다른 곳에 내려주는 셔틀 앞에 나는 좌절했다.
도대체 어디에 지하철역이 있는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기차 탑승시간은 한 시간으로 다가왔다.
난 어깨를 짓누르는 카메라 가방을 짊어지고 계속 뛰었다. 그러다 캐리어 가방을 든 채 서 있는 일행에게 지하철역이 어딘지 물어봤다. 중국말과 영어를 섞어서 몰라서 미안하다는 답을 들었다.. 관광객이었다. 월드컵 경기장에서 마포구청을 거쳐 합정역까지 뛰어갔다. 그래서 환승해서 공릉역을 갔는데 용산역행 지하철이 막 떠나서 23분을 기다려야 했다.
음….. 그렇게 나는 1분을 남기고 기차를 탈 수 있었다. 일요일 하행 기차는 좌석이 없는 입석이었다. 발바닥에 불이 날 것 같았지만 나는 좋았다. 로펀의 음악을 벌써 삼 년 넘게 듣고 있지만 난 음악에 대해서는 문외한이다. 그래서 로펀 공연이 진행되는 중에 느끼는 음악적 감동을 표현할 수 있는 능력이 내게는 없다.
하지만 난 그래서 로펀이 좋다. 나처럼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도 기꺼이 즐길 수 있는 음악! 누구나 즐길 수 있는 음악! 들으면 행복해지는 음악! 누구도 의식하지 않고 느낄 수 있는 음악! 그런 로펀을 더 많은 사람들이 만날 수 있기를 언제나 희망한다.
PS: 나는 집에 돌아와서 딸아이 소풍 장을 봐서 그다음 날 새벽 다섯 시에 일어나 소풍 도시락을 쌌다. 그리고 월요일 출근을 했다. 월말 사무실 분위기는 최악이었지만 나는 웃을 수 있었다.
바로 그 모든 것이 로맨틱펀치가 있기 때문이다.
<굿모닝 블루>
<굿모닝 블루: 점프>
<글램 슬램>
<글램 슬램>
<글램 슬램>
<라즈베리 비트>
<몽유병>
<몽유병>
<몽유병 : 레이지>
<We are the champions>
<We are the champion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