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호락페스티벌, 안동댐, K-WATER, 19.10.18
로맨틱펀치에 입덕 한 2016년 9월 4일 이후 남편과의 기나 긴 싸움 끝에 우리는 한 달에 세 번의 공연을 가는 것에 서로 합의했다. 그런데 이번 주 25주년 휴가를 쉬게 되자 나는 평일 공연을 한 번 더 가고 싶어 졌고 남편과 상의 끝에 10월 18일 경상북도 안동댐에서 열리는 안동호락페스티벌에 가기로 했다.
문제는 휴가 시작과 동시에 다녀온 백록담 등반의 후유증으로 걸음을 걷기가 힘들었다. 안동까지는 왕복 8시간 운전을 해야 하는데 종아리와 허벅지 근육이 딱딱하게 굳었으니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18일 공연을 하루 앞두고 근육통 부위에 발진이 생길 정도로 파스를 계속 붙였다. 이미 무모한 백록담 등반을 해낸 나를 지켜본 남편은 그 다리로 어떻게 다녀 오겠냐고 묻지 않았다.
로펀이라면 무슨 수를 내서라도 다녀올 것임을 알고 있기에 말해봤자 소용없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로펀 퇴근길에서 등에 카메라 가방을 짊어진 나를 보고 보컬님은 등산 다녀오셨어요?라고 물었다. 어떻게 알았지?)
그렇게 나는 18일 아침 9시 반에 안동을 향해 출발했다. 정말 로펀 공연이라면 전국 어디든 못 갈 곳이 없지만 여기에서 145km를 더 가면 강원도 원주라는 이정표 앞에서 안동이 정말 먼 곳 임을 실감할 수 있었다. 여행을 가라면 멀어서 못 간다고 했을 경상북도 영덕이 바로 인근에 있었고 비가 온다는 예보에 걱정을 했는데 날씨는 다소 쌀쌀하고 구름이 꼈지만 비는 오지 않았다.
정작 비는 집으로 돌아가는 내내 폭우로 쏟아졌다. ㅜ.ㅡ 집에 가는 길이 참으로 무서웠다.
한국 수자원 공사에서 주최하는 안동호락 페스티벌은 올해로 2회째라는데 작년에도 로펀이 출연했다고 한다. 올해 라인업은 ‘육중완 밴드’와 ‘로맨틱펀치’, ‘부활’이었고 로펀은 그중 첫 번째 순서였다. 무대는 좌석에서 엄청나게 멀었고 보안요원이 의자에서 일어나지 못하게 해서 좌석에 앉아서 로펀 공연을 봐야 하는 안타까움이 있었지만 일억몇 천만 원의 예산을 쏟아부은 무대답게 무대 조명도 배경도 아름다웠다.
우리가 일어나지 못하는 대신 보컬 배인혁 님이 관객석으로 두 번(‘눈치채 줄래요’와 ‘여행을 떠나요’)이나 달려와서 관객석을 뒤집어놓았다. 행사 관계자는 행사 시작 전에 좌석에서 로펀을 기다리는 팬들을 보며 로펀 때문에 보안요원을 삼십 명이나 불렀다는 얘기를 해주었다. 하하하하하하하.
로펀은 오후 네 시경 리허설을 시작했다. 리허설할 때는 앉으라는 제재가 없었으므로 공연 시작 전에 신나게 뛰어놀았다.
셋 리는 ‘몽유병’, ‘파이트 클럽’, ‘밤은 짧아 걸어 아가씨야’, ‘We are the champions’, ‘눈치채 줄래요’, ‘토요일 밤이 좋아’, ‘여행을 떠나요’였다. 행사 공연 치고는 공연 시간이 긴 편이어서 참으로 행복했다.
경북 안동은 로펀에 대한 인지도가 높은 곳은 아니었지만 내 뒷자리에 앉은 젊은 친구들이 로펀을 기다리며 밴드의 시대에 출연했을 때 얘길 하며 정말 약 빤 것처럼 대단한 밴드라고 말했을 때 참으로 흐뭇했다. 혹자는 미친 텐션이라고도 하고 하이 텐션이라고도 하는데 약 빤 텐션이라니… 그 모든 말이 결국은 로펀이 대단한 밴드라는 말이 될 것이다.
집으로 돌아와서 안동 공연에서 찍은 사진을 확인하며 극도의 흥분상태로 인해 초점이 나간 사진이 다수라는 사실에 아쉬움을 느끼면서도 내 삶의 아름다운 순간을 기억할 수 있는 몇 장의 사진이 있어 다행이지 싶다. 이 기억을 힘으로 나는 또 견디기 힘든 상황도 이겨낼 수 있을 것이다.
이제 나는 일주일의 휴가를 마치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다. 만약 로펀을 만나지 않았더라면 나는 일주일의 휴가를 새로운 뭔가에 도전하기보다는 그저 휴식을 취하며 시간을 보내다 회사로 돌아왔을 것이다. 안동에서 공연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수력발전을 하는 안동댐을 보면서 나는 로펀이 내 삶을 구동하는 중요한 발전 시설이란 생각을 하게 되었다.
15일 백록담 산행에서 내려오는 10킬로 내내 쏟아지는 폭우 속에서 절대 한 걸음도 더 내딛지 못할 정도로 다리가 후들대는 순간에도 나는 다치지 않고 무사히 이 산을 내려가서 18일 안동 공연을 가고야 말겠다는 일념으로 다시 걸을 수 있었던 것처럼 나는 로펀을 만나기 위해 내 삶을 이겨낼 것이다. 로펀은 사랑이다.
ps: 안동댐 공연 후 인스타 라이브에서 보컬 배인혁 님은 안동 멀고 행사 느낌이라 많이 못 올 줄 알았는데 팬들이 많이 와줘서 참 고맙다고 말했다. 사실 공연을 볼 수 있어서 고마운 건 바로 난데.....
ps2: sel100400gm으로 잡기가 힘들 정도로 무대가 참으로 멀었다. 예쁜 모습 얼빡으로 찍고 싶었는데 그저 침만 삼켰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