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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부족 직장인 유부의 무모한
백록담 등반기!

백록담, 관음사, 산행, 제주도, 19.10.15

by 묭롶

열아홉의 나이로 고등학교도 졸업하지 않은 채 회사생활을 시작한 지 벌써 스물다섯 해가 되었다. 그동안 여름휴가로 주는 5일간의 휴가를 제외하고 딸아이를 낳고 출산휴가로 쉰 삼 개월이 가장 긴 휴가였다. 나름 열심히 회사생활을 해왔다고 자부하지만 최근 스트레스가 심했던 나는 바쁜 10월이지만 25주년 휴가를 쉬기로 했다. 로맨틱펀치의 공연 87번째 로파가 끝난 10월 13일 이후 나는 로파 사진과 영상작업을 뒤로하고 휴가의 첫 날인 14일 월요일 밤 비행기로 제주도로 떠났다. 오후 6시 비행기라서 요금이 유류세 포함 37,000 정도 되었고 백록담 등반을 위해 관음사 입구까지 셔틀을 운행해준다는 그린 게스트하우스에 일인 35,000을

주고 숙박을 했다. 게스트 하우스에서 아침 6시부터 이용이 가능한 5,000원짜리 조식을 먹고 이십여 분 정도 걸려서 관음사 입구에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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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풍 타파의 영향으로 백록담에 물이 찼다는 기사를 읽고 충동적으로 떠난 제주행이었고 나는 그동안 운동이라고는 로펀 공연 가서 뛰어 논 것이 전부였다. 물론 등산은 십 년 넘게 해 본 적이 없었다. 과연 내가 백록담을 오를 수 있을까라고 남편에게 물었을 때 남편은 “응… 네가 로펀에 미쳐있는 정도라면 넌 충분히 갈 수 있어.”라고 답했다. 그 말을 믿고 나는 15일 아침 일곱 시 반부터 관음사 코스로 등산을 시작했다. 등에는 백록담을 찍기 위한 장비 배낭(5킬로가 넘는)을 짊어지고 운동복 바지에 스틱도 없이 산에 오르는 나를 보며 다른 등산객들은 보는 사람마다 장비도 없이 어떻게 올라가려고 그러느냐고 물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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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각봉 대피소까지 6km를 정오 12시 30분까지 도착하지 못하면 백록담에 오를 수 없다는 소리에 나는 정말 꾸역꾸역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해발 1000미터에서 시작된 산행은 초반 3.2킬로는 그냥 그럭저럭 갈만했다. 하지만 탐라계곡 목교를 지나서 45도 이상으로 가파른 오르막길이 나를 기다고 있었으니 그때부터 삼각봉 대피소까지는 정말 숨이 끊어질 것만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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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 뒤에 매달린 배낭이 꼭 아이 한 명을 업은 것만 같았고 나는 꼭대기를 향해 수직 이동하는 개미가 된 기분이 들었다. 해발 1000미터에서 시작된 산길은 100미터를 오르는데 굉장히 많은 시간이 소요되었고 나는 중간에 못 가는 한이 있더라도 삼각봉까지는 올라야겠다는 생각으로 계속 올라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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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음사에서 백록담까지의 거리는 8.7킬로미터이고 정상인의 등반시간은 다섯 시간이 소요되는데 나는 삼각봉 대피소까지 약 세 시간이 걸렸다. 뒤에 메고 간 배낭이 아니었다면 조금은 더 빨랐을까라는 생각이 안 든 것은 아니었지만 오르막의 경사를 놓고 봤을 때 그다지 차이가 날 것 같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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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음사 입구에서 출발해서 삼각봉 대피소까지 오르는 동안 주변 경치는 물론 아무것도 눈에 들어오지 않고 아무 소리도 귀에 들지 않을 정도로 힘들었다. 사무실에서 그동안 힘들었던 일들이 갑자기 가벼워 보일 정도였으니 거의 나의 한계점에 봉착했다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하지만 삼각봉 대피소에 도착하자마자 탄성이 터져 나왔다. 너무나 맑고 깨끗해서 그 자체로 빛이 나는 것 같은 자연이 내 앞에 펼쳐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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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은 삼각봉 대피소에서 무릉도원의 경치를 만끽하고 싶었지만 내겐 물이 차 있는 백록담을 찍겠다는 목표가 있었기에 나는 삼각봉 대피소에서 잠깐 물을 마시고 숨을 고른 다음 다시 걸음을 걷기 시작했다. 평소 운동이라고는 안 하는 나였기에 걷는 걸음이 안타까워 보였던 지 관음사 출발점에서 만난 등산객 한 분이 내게 빨리 가려고 생각하지 말고 숨이 가쁘지 않을 정도로 한 걸음씩을 내딛고 그걸 유지해야 한다고 얘기해준 말이 큰 도움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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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각봉 대피소를 지나 현수교를 지나서 다시 본격적으로 오르막이 시작되었다. 일반적인 산길이 오르막과 내리막 그리고 둘레길이 있는 반면 한라산에는 딱 두 가지밖에 없다. 바로 올라갈 때는 계속 오르막길이고 내려갈 때는 계~~~~~속 내리막길이다. 삼각봉에서 백록담까지 오르는 길에서 만난 등산객은 끝도 없이 내가 이 산을 왜 왔는지 모르겠다며 한오백 년 급의 한탄을 쏟아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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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등산객의 무한 반복되는 한탄을 들으며 나는 과연 애를 낳을 때가 힘들었을까? 아니면 바로 지금이 더 힘든 것일까를 가늠해보게 되었다. 물론 백록담을 다녀온 지금은 당연히 애 낳을 때가 더 힘들었다고 말하겠지만 백록담을 오르던 그 순간에는 왠지 그 순간이 더 힘이 드는 것만 같았다. 딱 지옥문을 향해 걸어가는 기분이었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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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 낳았을 때 힘들었던 거랑 맞먹을 만큼 힘들었던 산행이었기에 한라산에 오기 전 사무실에서 힘들었던 일들이 왠지 가볍게 느껴지기도 했다. 그리고 내가 꺼내지도 못할 카메라를 뭐한다고 들고 왔을까라는 생각을 한 오백 번은 했나 보다. 어차피 일행이 없어서 말을 나눌 사람도 없었지만 앞선 등산객이 내려오는 등산객에게 앞으로 얼마나 남았냐고 물어봤을 때 한 시간이란 답을 듣는 순간 난 그냥 바닥에 주저앉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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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한라산이 내게 처음은 아니다. 지금으로부터 십 년 전쯤 그러니까 애를 낳기 전에 성판악코스로 영실(진달래)까지 올라갔다 내려간 적이 있었다. 그때는 몸이 가벼워서 정말 힘들었다는 생각이 한 개도 안들만큼 쉽게 동네 마실 다녀오듯이 다녀왔었다. 그때와 비교할 수 없이 살이 찌고 운동부족에 알코올에 찌는 데다가 등에 배낭을 짊어진 나를 생각하지 못한 채 한라산 등반을 쉽게 생각한 나 자신을 또 오백 번쯤 원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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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한탄과 통곡과 좌절과 한숨 속에 다리에 힘이 없어서 나중에는 팔로 로프를 잡아당기다시피 해서 꾸역꾸역 오르니 결국 모든 것에는 끝이 있다는 진리가 아니라 백록담에 도달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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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세를 부를 정신도 없이 백록담이 있다고 추정되는 부근으로 갔는데 안개가 너무 심해서 아무것도 보이질 않았다. 사람들은 백록담이라고 쓰인 표지석에서 사진을 찍기 위해 엄청나게 긴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었지만 맛집도 줄을 서야 하면 안 먹고 마는 내 성격답게 나는 준비해 간 김밥을 먹으며 날이 개기를 기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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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상 한라산을 자주 오르는 등산객들도 백록담을 볼 수 있는 경우가 드물다고 할 정도로 한라산 정상은 거의 대부분 안개로 뒤덮여있다. 그러니 이제 처음 온 내가 담수호 상태인 백록담을 찍겠다는 시도 자체가 무리한 욕심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바로 김밥을 꾸역꾸역 먹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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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록담 정상은 2시 이후로 출입이 통제되는 상황이라 나는 안타깝지만 한시 이십여 분 경에 자리를 정리해서 성판악 쪽으로 내려가기 시작했다. 그런데 십 오분 넘게 내려가고 있는데 어라? 정상 쪽에 구름이 빠르게 걷히는 게 보이는 것이었다. 순간 갈등했다. 통제불능 상태인 이 다리로 다시 정상을 거슬러 올라가야 하나 싶은 생각이 들었지만 어느새 나는 다시 오르막길을 로프 줄을 끌어서 팔 힘으로 오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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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나는 잠깐 동안 열리는 백록담을 찍을 수 있었다. 태풍 타파로 인해 만수가 됐던 물이 벌써 절반 이상 빠졌지만 담수호 상태의 백록담을 찍은 나는 참으로 오지게도 기분이 좋았다. 그리고 백록담을 찍고 바로 일분 후부터 내려가는 내내 폭우가 계속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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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다리는 풀린 상태에서 내리막 길은 돌길에 경사가 심했다. 백록담에서 내려온 등산객 중 거의 꼴등에 가까웠던 나는 그저 다치지 않고 무사히 내려갈 수 있기만을 나 자신에게 기도했다. 왜냐면 나는 멀쩡하게 살아서 18일에 있는 로맨틱펀치 공연을 가야 하기 때문이었다. 넘어지는 순간 나는 바로 공연도 못 가지만 고가의 카메라 장비도 망가지는 상황이었으니 한 발 한 발 내딛을 때마다 신중을 기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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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라산은 올라갈 때도 힘들지만 내려올 때는 더 힘이 든다는 사실을 나는 비를 맞으며 내려가는 10킬로미터 내내 뼈저리게 깨닫게 되었다. 이건 정말 끝이 없었다. 아니 끝이 있다는 기미도 보이질 않았다. 사람이 뭔가 보여야 힘을 내는데 끝이 안보이니 가뜩이나 비를 맞아서 더 무거워진 배낭이 내 어깨를 파고 들어갈 지경이었고 나는 그대로 땅 속으로 추락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나랑 거의 같은 시간대에 백록담에서 하산을 시작한 노부부는 백록담을 봤으니 이제 소원이 없다고 하셨지만 빗속에 뒤쳐지는 그분들을 보면서 해가 저물기 전에 내려오실 수 있을지 걱정이 되었다. 한라산은 절대로 나처럼 무모하게 와서는 안 되는 산이라고 말하고 싶다. 내가 삼각봉 대피소를 향해 오르막을 오르고 있을 때도 구조용 헬기가 떴을 정도로 위험한 산이 한라산이다.


정말 끝나지 않을 것만 같은 오르막과 절대 끝이 없을 것 만 같은 내리막을 걸어 나는 오후 두 시에 백록담을 출발해서 해가 저물어가는 오후 다섯 시 삼십 분에 성판악휴게소에 도착할 수 있었다.

후들거리는 다리를 질질 끌고 화장실에 가서 거울을 보니 웬 낭인 내지는 걸인 한 명이 거울 앞에 서 있었다. 바로 나였다. 몸은 비록 만신창이가 되었지만 나는 웃고 있었다. 왜냐면 난 백록담을 다녀온 여자이기 때문이다. 영화 <범죄도시> 속 대사처럼 “니 내 눈지 아니? 나 백록담 다녀온 여자야”라는 말을 직장동료들에게 들려주고 있는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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