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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철북] 논픽션을 픽션으로 연주하다.

by 묭롶

[양철북]은 정신병원에 수감된 왜소증 장애를 지닌 오스카가 자신의 양철북을 두드리며 회상하는

1899년부터 1954년까지의 이야기를 내용으로 하는 소설이다. 이 책은 전 2권으로 두께가 상당하지만

굉장히 재미가 있다.


내가 작가의 역량을 평가할 만한 주제는 못되지만 개인적인 호불호로 나눈다면 결국 읽어보면 별것도

없는 내용을 장황하고 지루하게 쓰는 작가와 너무나 재미있는 이야기를 길게 쓸 수 있는 작가를 비교해볼 때

귄터 그라스는 후자에 속한다. 실로 코로나19로 격리 아닌 격리를 겪는 가운데 나는 이 책을 흥미진진하게

읽었다.


일례로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가 정권을 잡은 지 6개월도 지나지 않은 1933년 7월 14일

나치는 [ 유전적 결함을 지닌 자손의 예방을 위한 법률]을 시행하였고 이 법에 의해 1939년 9월 1일까지

약 375,000명에게 단종수술이 시행되었다. 이와 더불어 장애성인에 대한 안락사 프로그램은

1939년 9월부터 시작되었는데 이는 법령에 의한 정부 차원의 명령이 아니라 히틀러의 개인적인 명령에서

비롯되었으며, 그의 주치의였던 칼 브란트(Karl Brandt)가 총통 비서실장 필립 블러(Philipp Bouhler)와

더불어 총책임을 맡았다. 이러한 역사적 사실을 귄터 그라스는 작중에서 다음과 같이 표현하고 있다.




{ 이렇게 마체라트 덕택으로 오스카는 의사들의 손에 넘어가지는 않게 되었다.

~의사들도 그들의 소독 처리한 흰 가운 위로 믿음직하면서도 즉시에 효과를

보여줄 1급의 주사기를 손에 들고 있다.

~하지만 마체라트가 제국 보건성이 보낸 문서에 서명하려고 할 때마다

그 손가락에 매달리며 그것을 마비시킨 것을 오로지 나의 불쌍한

어머니의 그림자였다. } [양철북 2권] p105




또한 역사적으로 거듭된 침략으로 전소를 거듭한 도시 단치히의 역사를 귄터 그라스는 다음의 문장을

통해 독자에게 효과적으로 전달하고 있다.




{ 레히트슈타트, 알트슈타트, 페퍼슈타트, 포어슈타트, 융슈타트, 노이슈타트,

나이더슈타트 등 7백 년 이상에 걸쳐 세워진 시내가 3일 동안 불에 타 소실되었다.

그러나 이것이 단치히 시가 겪은 최초의 화재는 아니었다.

지금까지 이미 포메라니아인들, 브란덴브루크인들, 게르만족의 기사단,

폴란드인들, 스웨덴인들, 다시 한번 스웨덴인들, 프랑스인들

프로이센인들, 러시아인들, 거기에다 작센인들까지 역사에

참여하면서 20년마다 이 도시를 태울 만한 가치가 있다는 것을 발견해 왔다. }

[ 양철북 2권 ] p150~151




귄터 그라스가 역사적인 실제를 너무나 사실감 있게 문장 화해 내는 바람에 나는 작중에 등장하는

남자들을 죽이는 저주를 지닌 ‘목각의 니오베’가 실존한다는 생각으로 인터넷을 검색해볼 정도였다.


이처럼 2차 세계대전 발발부터 전후 독일의 실체라는 다큐멘터리적인 요소를 귄터 그라스는

오스카의 양철북 위에서 문학이라는 리듬으로 변주해 냄으로써 문학적 성과와 더불어 그 당시의 독일의

실제를 독자에게 성공적으로 전달해내고 있다.


작중에서 오스카가 자신의 양철북 연주를 통해 연주를 듣는 관객을 웃고 울렸던 것처럼 나는 이 책을

읽는 동안 오스카가 들려주는 북소리에 발맞춰 그와 함께 그의 어린 시절부터 서른 살이 되어 정신병원을

나오게 된 지금까지의 오스카와 동행하는 기분이 들었다.


이 책의 분량과 담고 있는 역사적인 자료는 방대하지만 줄거리를 오스카의 입을 빌려 간략히

담아보자면 다음과 같다.




{ ~전등 아래에서 태어나고, 세 살의 나이에 일부러 성장을 멈추고,

북을 얻고, 노래로 유리를 부수고 바닐라 냄새를 맡고,

교회 안에서 기침을 하고, 루치에게 먹이를 주고,

개미를 관찰하고, 다시 성장을 결심하고, 북을 파묻고,

서방으로 가서 동쪽을 잃고, 석공 일을 배우고 모델 일을 하고,

다시 양철북으로 되돌아가서 콘크리트 요새를 시찰하고,

돈을 벌고, 손가락을 보관하고, 손가락을 선사하고,

웃으면서 도주하고, 에스컬레이터를 올라가서 체포되고,

유죄 판결을 받고, 수감되고, 그 후에 석방되어,

오늘 30회째 생일을 축하하고 있으며,

그러면서도 여전히 검은 마녀를 두려워하고 있는 것이다---------아멘. }

[양철북 2권] p488




조세화 작가의 [난쟁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에서 왜소증을 앓는 아버지가 곡마단에서 일을 하며

가족의 생계를 꾸려갔다면 [양철북]에서 오스카는 누드 모델과 석공을 거쳐 양철북 연주로 자신의

계모인 마리아와 이복동생(실제로 오스카의 아들로 추정되는)인 쿠르트의 생계를 책임졌다.


줄여서 [난쏘공]이 1970년대 자본주의가 확산되며 빈부의 격차가 극심해지고 군에 의한

전체주의에 점령당한 소시민의 몰락을 그려낸 비극인 반면, [양철북]의 오스카는 시대적 비극에서

한 발짝 물러서 있는 양상을 보인다. 자신의 아버지로 추정되는 얀 브론스키가 폴란드 우체국 방어에

실패해서 독일군에 검거를 당해 끌려갈 때와 법률상 아버지인 마체라트가 러시아 군에게서 당 배지를

발각당하지 않기 위해 배지를 삼켰다가 질식하는 순간에 오스카는 세 살로 보이는 자신의 신체적

불리를 무기로 삼았다. 자신을 추앙하는 먼지떨이단이 경찰에 단속되었을 때도 오스카는 자신의

지적능력을 숨긴 채 세 살로 보이는 외면적 약함을 방패로 삼아 비극적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강 건너 불구경’이란 말처럼 [난쏘공]의 작중 인물들이 불타는 집에 있는 사람들인 반면,

[양철북]의 오스카는 저 멀리서 비극을 관조하는 관찰자의 시점을 유지한다.

어찌 보면 작중 인물 오스카는 비극을 희극으로 풀어내는 코미디언 같다는 생각도 하게 된다.

블랙코미디라는 장르처럼 있는 그대로를 드러내면 국정원에 끌려갈지도 모르지만 이걸 웃자고

얘기하는데 죽자고 달려들면 어떻게 하냐며 우회로를 마련해 놓은 경우처럼 소설 [양철북]은

실제(논픽션)와 소설(픽션)의 세계를 넘나 든다.


무조건 자한당이나 새누리당이라면 멍멍이가 출마해도 당첨이 된다는 말이 나오는 특정지역과

같은 전후 독일 세대에게 [양철북]이 갖는 의미가 바로 이와 같지 않았을까? 문학을 통한

우회로로 [양철북]을 선택한 귄터 그라스의 문학적 역량과 현명한 판단에 존경심을 갖지 않을 수 없다.




{ ~진주 목걸이는 인간의 목보다 오래가며, 손목은 야위지만 팔찌는 야위지 않고,

무덤 속에서는 손가락이 없는 반지가 발견되기 때문이다. } [양철북 1권] p199




더불어 그럼에도 불구하고 똥을 똥이라고 말하는데 아니라고 대답하는 사람들을 움직일 수

있는 ‘양철북’이 과연 어디에 있을까 다시금 고민해보게 된다.


Ps: <민음사>에서 출간된 출판물의 오타를 굉장히 싫어하지만 [양철북]의 번역자로 장희창 교수님을

선택한 것은 정말로 현명한 판단이다. 이 책을 누구라서 장 교수님 만큼 번역할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을

책을 읽는 내내 하게 되었다. 범죄자 이명박과 박근혜로 인해 시국이 혼란스럽고 블랙리스트로 사상

감시와 검열이 엄중했던 시기에도 역자 후기에 4대 강 문제를 거론할 수 있는 용기와 실천하는

지성인으로서의 면모를 선보였던 장희창 교수님이시기에 나는 이 책을 믿고 읽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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