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어렸을 때만 해도 간혹 개천에서 용이 난다는 소식을 듣곤 했다. 물론 내 주변에서 그런 경우를 보지는 못했지만 너무 가난해서 친구가 고시 공부할 돈을 마련해주었다는 현직의 문재인 대통령님과 고인이 되신 노무현 대통령님, 그리고 이번에 국회의원에 당선한 이수진 국회의원을 보면서 개천에서 용이 날 수가 있다는 말이 사실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나의 부모님 세대까지의 극소수에 해당된 사실일 뿐 오랜 시간 압력을 준다고 그 모든 석탄이 다이아몬드가 될 수는 없듯이 대부분의 대중은 흙수저로 태어나 진창 같은 이승을 몸으로 구르다 흙으로 사라진다.
외동으로 딸 하나를 키우는 나는 유치원 시절부터 ‘영어 유치원’과 선행학습을 외치는 주변인들의 성화를 그저 관망하며 나는 그리하지 않겠다고 결심을 했다. 물론 초등학교에 입학한 아이들에게 지금 ‘ㄱ’과 ‘ㄴ’을 가르치지 않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초등학교 3학년 영어 교과서가 ‘A’, ‘B’,
‘C’가 아닌 “Hello!!!” 로 시작할 거라고는 미처 생각하지 못한 나로서는 뒤늦은 후회가 엄습하는 것이었다. 나의 중학교 시절 영어책과는 너무도 다른 초등 3학년의 영어책에 씁쓸한 좌절을 맛본 나에게 곧바로 초등 3학년 1학기 수학에 분수가 나온다는 사실은 또 하나의 충격이었다.
여기에서 더 문제는 문제가 1+1=? 이런 식이 아닌 영희가 공을 한 개 가져왔는데 철수가 공을 또 한 개 가져왔습니다. 이제 공은 모두 몇 개일까요? 이런 식으로 문제가 나온다는 점이었다.
문제가 나오면 답을 쓰기에 급급했던 나의 세대에게 이 얼마나 낯설고 어려운 세계인지 선행을 시키는 학부모들이 과연 선견지명이 있었다는 뒤늦은 후회로 점철하는 요즘이다.
개천에서 용이 나오기는 사실상 힘든 현실 속에서 가진 것 없는 부모 밑에서 태어난 아이들에게 그나마 물려줄 것이 없는 부모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노력이 교육에 대한 투자이기에 너도나도 할 것 없이 똑같은 시스템으로 선행학습과 학원 뺑뺑이를 돌릴 수밖에 없는 이곳이 바로 2020년의 대한민국이다.
여기 1830년대를 살았던 프랑스 베리에르 태생의 쥘리엥 소렐이라는 청년이 있다. 목재소 아들로 태어난 그는 총명과 미모를 타고났지만 생계를 위해 써먹을 수 없는 재능이었던 탓에 아버지와 형들에게 매일같이 두들겨 맞기 일쑤였다. 지금의 대한민국에 태어났다면 어쩌면 개천에서 용이 난 사례의 모범이 될 수 도 있었겠지만 그는 참 불행하게도 1830년대에 태어났다.
[ “이 게으름뱅이 놈아! 톱은 지켜보지 않고 밤낮없이
못된 책이나 읽고 자빠졌느냐?
책은 저녁에 신부 집에 가서 얼쩡거릴 때나 읽어라, 제기랄.” ] 1권 p32
대표적 프랑스 흙수저로 태어난 그가 성공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이 있었을까? 청년 쥘리엥 소렐은 아버지에게 쓸모없는 책이나 읽고 있다고 얻어터지는 와중에도 그 좋은 머리로 열심히 궁리를 하는 것이었다. 그에겐 하나의 모범사례가 있었으니 바로 왕정을 뒤엎고 영웅으로 등장한 나폴레옹이 바로 그가 바라는 이상향이었다. 낮은 군인 신분으로 작은 키로 자신의 말발굽 아래 모두를 무릎 꿇게 만든 그처럼 힘을 갖는 것이 그의 희망이었지만 이미 나폴레옹은 유배되어 죽임을 당한 이후이고 앙시엥 래짐(구시대의 모순을 타도한 프랑스혁명) 이전의 왕정이 복고된 상태에서 쥘리엥에게 유일한 기회가 있다면 그건 바로 성직자가 되는 길이었다.
지금처럼 학원을 보내 주거나 공부를 잘하는 것이 기특하다고 칭찬하는 부모도 없었던 쥘리엥은 스스로의 힘으로 자신의 총명을 뽐내어 인자한 셸랑 사제의 눈에 들게 되고 뒤이어 그는 베리에르 시의 시장인 드 레날 시장 집에 가정교사로 들어가게 되었다.
타고난 계급적 권위가 있는 드 레날 집안은 자신들의 귀족 계급을 위협하는 신흥 부르주아 계급과 자신들을 구별 짓기 위해 자식들의 라틴어 교사로 쥘리엥을 선택했다. 하지만 부모가 인스턴트를 못 먹게 했던 아이가 밖에서 몰래 탄산을 처음 맛보게 되었을 때의 감격처럼 수녀원에서 현모양처로만 길러진 드 레날 부인에게 19살의 쥘리엥은 팡팡 튀는 탄산의 상큼함을 맛보게 해 주었다.
귀족적 엄숙함 속에서도 천박한 속내를 감추지 않는 남편과의 결혼생활을 자신들의 아이에 대한 무한애정으로 극복해가던 삼십 대 초반의 드 레날 부인은 마침내 사랑에 눈 뜨게 되었고 딸꾹질과 사랑은 감추지 못한다는 속설처럼 그들의 사랑은 베리에르 시에 소문이 퍼지게 되었다.
그나마 가정교사라도 해서 성직자가 될 수 있는 학교에 들어갈 수업료를 모아보려던 쥘리엥은 강제로 브장송의 수도원으로 보내졌다. 그곳에서 총명한 그의 재능을 어여삐 여긴 피라르 사제의 도움을 받아 그는 확실한 고수입이 보장된 드 라 몰 후작의 개인비서가 되었다.
[ ~일손을 멈추자마자 그는 견딜 수 없는 권태에 사로잡혔다.
그것은 상류 사회의 두드러진 특징으로,
감탄할 만한 것이기는 하되 지위에 따라 엄격하게
구분되어 있는 예절의 무미건조한 결과였다. ] 1권 p438
권력의 최상층부에 위치한 드 라 몰 후작 댁에서 쥘리엥이 목도한 것은 권태였다. 그 모든 것을 가졌지만 더한 것을 원하는 그들의 끊임없는 허기와 권위의식에서 야기된 권태는 금기에 대한 갈망을 부르게 되었다.
(얼마 전 개봉했던 영화 <기생충>에서 연교가 박사장에게 마약을 사달라고 조르면서 서로 흥분하는 장면과 영화 <돈의 맛>에서 윤여정이 끊임없이 마시는 샴페인과 각종 음료수들과 영화 <하녀>에서 서우와 이정재가 마시는 와인은 모두 권태로 인한 허기를 드러내는 장치이다.
<적과 흑>의 작중에서도 권력의 핵심들은 상황만 된다면 자신들의 기득권 보호를 위해 아무 부담 없이 꽃을 꺾듯이 전쟁을 일으킬 사람들이다. 그러니 로마 황제 네로가 로마에 불을 지른 것도 결국은 이 모두 같은 맥락의 일일 것이다. )
[ 권태를 주는 것만 빼놓고는 저 신사들은 매우 상냥한 사람들이지.
~남자를 뛰어나게 만드는 것은 사형 선고뿐이야.
그것만이 돈으로 살 수 없는 유일한 것이거든.
마틸드는 이런 생각을 했다. ] 2권 p41~42
[ ~좋은 가문은 많은 자질을 가져다주지.
그런 자질이 없으면 기분이 거슬릴 거야.
예를 들어 쥘리엥 같은 사람이 그렇지.
그러나 좋은 가문이란 사형 선고를 불러올 만한 영혼의 특성을 퇴색하게 한단 말이야.
마틸드는 이런 생각을 했다. ] 2권 p45
이제 누구도 쉽게 가질 수 없는 가장 높은 가지에 핀 꽃인 드 라 몰 양은 스스로 흙수저 계급인 쥘리엥을 갈구한다. 왜냐면 그는 그녀에게 냉정한 유일한 남자이기 때문이고 귀족 계급이 자신들이 가진 것을 지키다 권태로 늙어가는 반면 쥘리엥은 목숨을 걸 만한 모험을 할 수 있는 극적인 인물이기 때문이다. 드 라 몰 양의 바람대로 쥘리엥은 삼위일체로 그를 싫어하는 귀족(드 레날), 성직자(카스타 네드), 부르주아(바르날)들이 합작해서 내린 사형선고를 받고 짧은 나이에 생을 마치고 말았다. 물론 드 라 몰 양은 자신의 위대한 조상 보니파스 드 라 몰의 애인이었던 나바라의 마르그리트 왕비처럼 단두대에서 잘린 쥘리엥의 머리를 자신의 권태 탈피를 향한 모험의 전리품으로 동굴에 화려하게 안장했다.
[ ~나를 통해 나와 같은 부류의 젊은이들을 징벌하고
그들을 영원히 의기소침하게 하려 한다는 것을 본인은 잘 알고 있습니다.
즉 하층 계급에서 태어나 가난에 시달리면서도 다행히 좋은 교육을 받았고
부유한 사람들의 오만이 사교계라고 부르는 것에 대담하게
끼어들려 한 젊은이들 말입니다.
여러분, 그 점이 바로 본인의 범죄입니다.
그리고 사실상 나는 나와 같은 계급의 동료들에게 판결받지 못하는 만큼,
내 범죄는 더욱더 준엄한 징벌을 당할 것입니다.
본인의 눈에는 배심원석에 부유한 농민 하나 보이지 않고
오직 분개한 부르주아들만 있을 뿐입니다……..” ] 2권 p374
신이 나게 <적과 흑>의 1권과 2권의 줄거리를 읊고 나서 나는 끝내 쥘리엥이라는 흙수저가 참 복도 지지리 없는 인간이란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작가 스탕달 자신의 현실을 쥘리엥 소렐이란 인물에게 투영한 것은 아닐까 싶을 정도로 사는 동안 인정받지 못했던 작가 자신이 이 복 없는 사내를 통해 시대를 잘못 타고난 비애를 작품 속에 토로해 낸 것은 아닐까?
[ 하루살이는 한 여름날 아침 9시에 태어나서 저녁 5시면 죽는다.
그 하루살이가 어찌 ‘밤’이란 말을 이해할 것인가?
그것에게 다섯 시간만 생명을 더 준다면 그것은 밤이 어떤 것인지를 보고 이해할 것이다.
이처럼 나도 스물세 살에 죽는 것이다. ] 2권 p407
흡사 <삼국지>의 적벽대전 구절에서 봉추가 낙봉파에서 어찌 하늘은 나와 같은 시대에 공명을 함께 내어놓은 것이냐며 피를 토했다는데 작가 자신이 나폴레옹이 지휘하던 시절에 태어났다면 날개를 펼 수 있지 않았을까 싶은 생각을 스탕달이 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나는 <적과 흑>을 읽으며 가장 아름답고 고귀한 두 여성의 사랑을 받은 쥘리엥에 대한 부러움보다는 안타까움이 더 컸다. 역시 나에게는 굵고 짧은 삶보다는 특별히 뛰어난 재능도 총명도 없지만 가늘고 길게 가족들과 오래 행복한 것이 최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