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통해 삶을 읽다 =나를 나답게 해주는 것

by 묭롶


<너 자신을 사랑하는 것이 먼저야!>


“너는 너 자신을 먼저 사랑해야 해.” 지금 나와 십 년을 살고 있는 남편에게 처음 “사랑한다.”라고 말했을 때 남편은 나보다 너 자신을 먼저 사랑해야 한다고 말했다. 내가 사랑한다는 말을 했던 그때 나는 이미 스무 살 초반에 했던 결혼에서 실패하고 이혼한 지 몇 년이 지난 후였다. 당장의 현실을 도피하고 싶었던 젊은 날 쫓기듯 했던 결혼생활에서 구정물을 뒤집어쓰듯 오물투성이로 뒷걸음치던 내 눈에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는 것이 아니라 빚 투성이었지만 자존감이 빛나던 그 남자는 내게 빛나는 보석처럼 보였다.


내가 토해낸 토사물 속을 나뒹구는 것처럼 내가 살아낸 하루와 또 내가 살아왔던 과거를 혐오하는 것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가던 나와는 달리 그는 도저히 떨어지지 않는 한 걸음을 미래를 향해 내딛는 사람이었다. 그의 손을 잡는다면 과거에 발목 잡힌 나도 어쩌면 미래를 꿈꿀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아버지로 인한 빚 때문에 십 년 넘게 급여압류를 당한 상태에서 본인 명의로는 통장 하나 카드 한 개 만들 수 없지만 그 어떤 경우에서도 자존감을 잃지 않는 그를 나는 사랑한다고 믿었다.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는 것 보다도 못한 사람에게 너 자신을 먼저 사랑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는 말을 들었을 때 나는 큰 충격을 받았다. 그 말을 거절의 방식으로 받아들였던 나는 기존보다 더 가혹하게 나 자신을 망가뜨리는데 열중했다.


하지만 그렇게 자학의 시간을 보내는 동안에도 언제나 내 마음속에서는 ‘너’는 왜 ‘너’를 사랑하지 못했니’라는 외침이 떠나지 않았다. 너 자신이 너를 사랑하지 않는데 과연 누가 너를 사랑할 수 있겠니?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그렇다면 그동안 나는 왜 나를 사랑하지 않았을까?

그 이유는 그 누구도 나를 사랑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심지어는 나조차.........




<거짓말쟁이>


나의 아버지는 아들을 원했다. 아들을 원하는 집에 장녀로 태어난 나는 앞으로 태어날 아들을 위한 예비품에 불과했다. 물론 나의 뒤를 이어 태어난 두 명의 여동생은 태어남의 의미와 축복을 찾을 수 없는 아들을 위한 부록이었을 것이다. 아들이라는 본품을 뽑기 위한 그 노력 끝에 태어난 아들이 채 네 살도 되기 전 당좌수표를 부도내고 감옥에 가는 게 두려웠던 나의 아버지는 마흔 살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아버지가 세상을 떠났을 때 내 나이는 열두 살이었고 빚잔치 끝에 단칸방에 내몰렸을 때 딸들은 전부 고아원으로 보내겠다는 할머니와 고모의 얘기를 듣고 나는 내가 이 상황을 벗어나는 길은 아버지처럼 죽는 길 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어떻게든 자식들을 지켜보려는 엄마의 노력으로 가정을 유지한 상태에서 나는 아파도 아플 수 없고 슬퍼도 슬플 수 없었다. 나는 어떻게든 살아서 엄마의 짐을 덜어줘야 하는 최후의 보루였기 때문이었다. 나의 이런 처지를 중학교에 입학해서 같은 반 친구에게 털어놓았을 때 친구는 나에게 말했다. “거짓말!!!.”, 난 어느새 반 친구들 사이에서 거짓말을 늘어놓는 아이가 되어 있었다. 한 번도 내 머리를 쓰다듬어 준 적이 없는 아버지도 같이 살면서 단 한 번도 나를 업어주거나 얼러준 적이 없는 할머니도 나에게 따뜻한 말 한마디를 해 준 적이 없는 엄마도 친구들에게는 소설 같은 거짓말을 꾸며 대는 나는 거짓말쟁이였다.





<가면의 삶>


나는 중학교 1학년 이후로 그 누구에게도 나의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내가 아무리 말로 나의 처지를 얘기해봤자 결국 받아들이는 입장에서 나는 현실을 과장해서 말하는 허언증 내지는 망상증 환자에 불과할 뿐이기 때문이었다. 인간 사이의 대화에 대해 극도의 혐오를 느끼던 나는 이후 나 자신을 남들이 보기에 정상적으로 보이는 수준으로 맞추기에 집중했다.

그 결과 19살의 나이로 고등학교도 졸업하지 않은 나이에 나는 취직을 할 수 있었다. 회사에 들어가서도 나는 업무적인 나와 개인적인 나를 철저히 분리했다. 건전지를 끼우면 맹렬히 돌아가는 전지 인형처럼 나는 회사 직원들 사이에서는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지만 회사를 벗어난 나는 방전된 상태로 회사에서 보여지던 내 모습을 혐오하는 일로 나 자신을 소모해갔다.


하루는 그저 내일을 위한 시간이며 오늘은 그저 내일을 위해 버티는 시간이었던 스무 살 초반 그런 삶에 지쳐서 남들처럼 살아보고 싶은 마음에 결혼을 했지만 그것은 내가 사회생활을 하며 만들었던 가면을 결혼생활을 위해 한 개 더 만든 것에 불과했다.


결국 그 모든 것이 내가 만들어낸 거짓임을 자복하며 실패를 자인했던 그때 나는 아버지처럼은 죽고 싶지 않았다. 결국 이 모든 것을 끝낼 수 있는 방법이 아버지의 뒤를 따르는 길임을 이십 년 동안 날마다 복기하고서도 나는 사실은 그렇게 비겁하게 끝을 낸 아버지가 미워서 끝을 내지 못했다.





<그럼 나는 나를 사랑할 수 있을까!>


“사랑한다”라는 고백에 “너 자신을 먼저 사랑하는 법을 배우라.”라고 답하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인생의 밑바닥을 전전하며 가장 씁쓸한 바닥을 몸소 부대껴보았다고 자부하는 내가 그래도 내가 더 나은 것 같다고 느껴져서 사랑을 고백했던 사람에게 이런 말을 듣다니 그 말을 들은 내 귀를 의심할 정도로 당황스러웠다.


하지만 오랜 시간 그의 말을 되새겨 보면서 나는 그의 말이 사실임을 깨닫게 되었다.

‘나’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그 누구도 사랑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던 그 순간 나는 내 삶 속에서 내가 잊고 있었던 소중했던 순간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 것을 느꼈다.


어린 시절 누구도 읽어주지 않던 동화책을 혼자서 해가 지던 창가에서 읽으며 글자의 의미를 깨달았던 어느 저녁과 봄햇살이 내리쬐는 오후 학급 문고에 꽂혀 있던 이상의 ‘날개’를 읽으며 현재의 나를 탈출하여 1920년대의 경성 미쯔꼬시 백화점 옥상정원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던 작가 이상과 함께 했던 시간의 기억과 조정래 선생님의 태백산맥을 읽으며 울고 웃었던 기억 등……. 내 삶 속에 함께 동병상련했던 무수히 많은 작품과 그 주인공들이 나의 혈맥을 타고 내 삶에 함께 박동하고 있음을 깨닫게 된 것이다.


그리고 나의 피 속에 녹아든 그 독서의 기억과 내 삶이 뒤섞인 흔적을 브런치라는 형태를 통해 처음으로 써 내려갔을 때 나는 나를 그동안 나 스스로 얽매었던 거짓말쟁이라는 족쇄를 풀어낼 수 있었다

그래서 나는 읽고 쓴다, 그것이 바로 나를 나답게 해주는 것이라고 나는 지금 내 삶을 빌어 말할 수 있다. 이런 말을 글을 통해 쓸 수 있는 계기를 브런치를 통해 만나게 되어 더 감사하다. 갈수록 사람들이 독서를 하지 않는다고 하지만 말이 전달할 수 없는 지점을 전달하기 위해 글과 문학이 존재한다고 나는 믿는다. 그 글과 문학이 내 가슴에 그리고 내 혈맥을 뛰는 동안 나는 비로소 나로 살아가는 것이다. 그렇게 살아가는 삶이 바로 '나'라고 쓰여진 책을 써내려 가는 과정이라고 나는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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