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을 해서 후라이드 통닭 한 마리를 시켰다. 보통 사람들은 닭에서 살만 발라 먹고 뼈는 뱉는다. 순살 치킨을 시키지 않는 이상 닭을 먹는데 뼈는 어쩔 수 없는 부산물이다. 닭을 먹는 과정에서 뼈는 발라내야 하고 걸러야 하는 불가피한 과정에 속한다.
아마도 인종주의를 대하는 문학의 태도가 바로 치킨을 먹는 과정과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특히 미국 내 흑백의 인종주의를 대할 때면 문학은 치킨은 먹고 싶지만 그 과정에서 번거로운 뼈 처리에 골머리를 앓는 느낌이 든다. 뼈가 있는 한 마리의 닭을 다뤄야 하지만 먹기에 부드러운 순살 치킨으로 만들기 위해 더러는 골치 아픈 인종주의를 쏙 빼놓기도 한다. 하지만 닭을 먹는 데 있어 뼈뿐만 아니라 똥집도 닭발도 모두 닭을 이루는 데 빠져서는 안 되는 요소임을 우리는 모두 알고 있다.
그렇게 우리가 아무렇지도 않게 살만 발라 먹고 뱉어버린 뼈다귀들이 목에 걸려서 조지 플로이드와 같은 사건이 반복되는 것이 아닐까 싶다. 애초에 순살치킨만 있었던 것처럼 닭을 먹는 포식자들에 의해 닭 뼈는 자신의 존재감을 목걸림으로 표출하는 것은 아닐까.
가장 이상적인 자본주의를 표방하는 미국에서 가장 민주적이지 못한 방식으로 차별당하는 계급이 있는 한 이 문제는 언제나 해결되지 않는 미봉책이며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이 될 것이다.
[ “레드 , 넌 마틴 루터 킹이 흑인에게 살해당했다고 생각하나?”
그는 아무 말 없이 자기 앞만 똑바로 쳐다보았다.
“그럴 수도 있지. 그렇지만 그 대가는 백인들이 치르게 될 거야.” ] <흰 개 > p130
[ “형이? 형도 사람을 죽일 거야?”
“사람이 아니야. 백인이지.”
“대체 왜?”
“방금 말했잖아. 필요한 일이니까.
해야 하는 일이니까.
비율을 똑같이 유지해야 하니까.” ] p249
이미 로맹 가리는 자신의 작품 <흰 개>를 통해 증오에 기반을 둔 인종주의의 결말이 무엇인지를 예고한 바 있다. 백인들 스스로 내린 저주가 흑인이라는 그의 말처럼 살만 취하고 뼈를 버릴 것이 아니라 살과 뼈가 함께 어우러지는 세상을 만드는 것이 어쩌면 인종주의의 해결의 실마리가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본다.
흑인 여성으로서는 최초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토니 모리슨의 <솔로몬의 노래>를 읽으며 나는 보통의 문학이 일반 대중이 흔히 접하는 후라이드 치킨으로 인종주의를 표현할 때 이 책은 살과 뼈를 모두 녹여낸 하나의 도가니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뼈는 발라내야 할 대상이 아니라 살과 함께 고아 내서 그 진국을 들여 켜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니 역시 보통사람은 아닌 것 같다.
<솔로몬의 노래>는 한 편의 영화를 보는 것처럼 순식간에 읽히는 책이다. 문장의 속도감과 신랄함이 로맹 가리의 문장을 연상시킨다. 하지만 그 속도감에도 불구하고 그 문장의 도가니가 만들어내는 뜨끈한 국물의 감동은 나도 모르게 눈물을 흘리게 만든다. 사는 게 쉬운 사람은 없지만 미국 내에서 흑인으로 산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것인지를 그녀의 문장을 읽는 순간 처절하게 공감하게 된다.
피부색으로 인해 추노의 언년이처럼 신분세탁을 할 수도 없는 그들에게 부를 향한 강렬한 욕망은 백인을 뛰어넘는 것이 아닌 백인을 추종하는 행위로 매도당하고 같은 흑인끼리도 그 피부색의 차이를 놓고 서로를 차별하며 인디언이지만 백인 행세를 하는 작중 인물들의 모습들은 미국의 역사를 적나라하게 펼쳐 보이는 장치이다.
<솔로몬의 노래>에서 내가 가장 안타까웠던 점은 바로 이데올로기에 의한 타락이었다. 로맹 가리의 <흰 개>에서 흑인을 공격하기 위해 학습된 흰 개를 다시 백인을 공격하게 만들기 위해 긴 시간 재학습 시킨 키스의 백인을 향한 맹목적인 증오와 <솔로몬의 노래>에서 자신에게 부여된 임무를 수행하기 위한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이 십년지기 흑인 친구를 죽이려는 기타의 타락은 실로 인종주의가 결국 이러한 키스와 기타와 같은 인물을 무한 복제해서 만들어내는 바이러스와 같다는 생각을 하게 한다.
코로나 19가 무서운 요즘이지만 이러한 인종주의가 사람들을 병들게 할수록 사람들은 애초에 지니고 있던 정상적인 사랑과 신념(흑인의 향한 기타의 사랑과 헌신)을 잃게 되고 목적을 위한 기계(백인의 폭력을 똑같이 되갚음하기 위한 도구)가 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더 많은 사람들이 깨우치게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나는 이 책으로 노벨문학상을 준 취지를 전적으로 이해한다. 문학으로 다루기에 까다로운 뼈(핵심)를 다루면서도 인간으로서의 기본적인 믿음을 간직한 이 작품이 지닌 성과로 인해 나는 미국 내 흑인들이 지금 상황에서 저지르는 폭력에 대해 어느 정도의 이해심을 갖게 되었다.
솔로몬처럼 다시 아프리카로 날아가고 싶지만 현실에 족쇄 채워진 채 백인이 지어준 이름으로 그들 아래에서 살아가야 했던 그들의 역사가 부르는 합창을 듣는 순간 나는 익명성 속에 죽어간 무수히 많은 흑인들을 느꼈으며 그들 한 사람 한 사람 모두가 개별적인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의 삶을 살고 싶어 했음을 깨닫게 되었다. 그 인간다움을 향한 간절한 소망이 다른 방식으로 표출될 수밖에 없는 현실이 안타까울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