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뱉어 버린 말의 무서움!

#속죄 #이언매큐언 #소설 #책 #문학동네 #어톤먼트

by 묭롶

며칠 전 연예기사에 댓글을 쓰는 기능을 막아 놓았다는 기사를 읽었다. 악플로 인한 고통을 이기지 못하고 세상을 떠난 다수를 고려한다면 사후약방문 격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선업은 쌓되 악업은 쌓지 말라고 했지만 우리는 알게 모르게 내뱉은 말로 인해 선업보다는 악업으로 탑을 쌓고 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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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올드보이>에서 ‘오늘만 대충 수습하고 살자’가 자신의 이름과 같다는 ‘오대수’는 이유를 알지 못한 채 15년 동안 감금당했다. 감금당한 지 일 년이 지났을 때 감금된 곳에서 TV 뉴스를 통해 자신의 아내가 살해당했고 살해 용의자로 자신이 지목됐다는 기사를 접하게 되었다. 그 얼마나 미치고 팔짝 뛸 일인가 이유도 모른 채 갇혀 있는 중에 아내가 죽은 것도 비통한데 거기에 자기가 살인자라니 먹지 않은 과자를 먹었다고 추궁당한 아이의 심정에 수천 억 배의 억울함이 숨통을 틀어막아 제풀에 열두 번은 죽게 생긴 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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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올드보이>의 ‘오대수’처럼 억울하게 감방에 갇힌 청년 로비 터너가 있다. 자신이 일곱 살도 되기 전에 집을 떠나버린 집시 아버지와 아버지의 부재 이후 탈리스 가의 파출부 일을 하며 생계를 꾸려 간 어머니 그레이스 밑에서 자랐지만 중학교를 장학금으로 졸업하고 케임브리지 대학을 수석으로 졸업한 로비 터너는 의대진학을 기다리며 탈리스가에 머물렀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함께 자라온 주인집 딸인 세실리아를 사랑하지만 세실리아 아버지의 도움을 받아 학업을 이어온 자신의 처지로 인한 자격지심에 자신의 마음을 대놓고 드러내지 못했다. 그러던 중에 그는 세실리아의 동생 브리오니의 잘못된 증언으로 인해 브리오니의 사촌 롤라의 성폭행범으로 몰려 삼 년 반의 감옥생활을 하게 되었고 조기 석방을 조건으로 하는 보병에 입대해서 2차 세계대전 중 영국으로 후송되기 하루 전 프랑스에서 패혈증으로 죽음을 맞았다.






[ 그러나 그다음 한 주가 채 지나가지도 전에 그렇게도 굳건했던

확신에 미세한 금이 가기 시작했다. 자주는 아니었지만 브리오니는

자신이 알고 있는 사실이 문자 그대로 자기가 본 것에만 근거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될 때마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것이었다.

그녀에게 진실을 알려준 것은 눈이 아니었다.

눈으로 확인하기에는 너무 어두웠다.

~브리오니는 그들로부터 그날 밤의 정황에 대해 진술해달라는

요구를 수도 없이 받았고,

그래서 설명을 반복할 때마다 이전에 한 진술과 일치해야 한다는

부담이 점점 더 무겁게 그녀를 짓눌렸다. p 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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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리오니는 이후 열세 살의 나이에 자신의 오해로 인해 벌어진 결과를 번복하고 싶었지만 그녀의 바람과는 달리 로비는 오명을 벗지 못한 채 죽음을 맞았고 로비를 사랑했던 언니는 로비가 죽고 난 육 개월 후 독일군의 벨밍 역 공습으로 죽고 말았다. 브리오니는 사촌인 롤라 성폭행에 대한 자신의 잘못된 증언을 소설 속에서나마 진실을 밝히고자 하지만 사회의 지배적 지위를 획득한 진범인 폴 마셜과 그와 결혼한 그녀의 사촌 롤라에 의해 진실을 세상에 밝히지 못한 채 사건 발생 후 육십 년이 지난 상태에서 소설은 끝을 맞는다.


그나마 영화 <올드보이>에서 오대수는 자신이 왜 무엇 때문에 감금을 당했고 왜 그 대가를 치러야 하는지 낱낱이 그 실상을 알고서 스스로 진실을 최면을 통해 봉인했다지만 진실이 밝혀지지 못한 채 억울함을 안고 죽은 로비와 바로 자신의 동생으로 인해 연인을 잃은 채 기다리다 죽고 만 언니 세실리아의 원통함은 어떻게 풀어야 한단 말인가.

비록 작중 브리오니가 미성년의 법적 책임을 지지 않는 나이었다고는 하지만 전도유망한 한 청년과 미처 자신의 삶을 펼쳐보지도 못한 언니의 삶을 한 방에 지옥으로 보내 버렸다는 점에서 그 죄의 무게는 나이를 떠나 가늠할 수가 없다.






[ 지난 오십구 년간 나를 괴롭혀왔던 물음은 이것이다.

소설가가 결과를 결정하는 절대적인 힘을 가진 신과 같은 존재라면

그는 과연 어떻게 속죄를 할 수 있을까?

소설가가 의지하거나 화해할 수 있는,

혹은 그 소설가를 용서할 수 있는 존재는 없다.

~소설가에게 속죄란 불가능하고 필요 없는 일이다.

중요한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속죄를 위해 노력했다는 사실이다. ] p521






하지만 우리 주위를 살펴볼 때 어디 억울한 일이 한두 가지 일까? 난 <속죄>를 읽으며 특히 글을 쓰는 사람들 특히 그중에서도 기자들의 책임감과 도덕성이 갖는 중요성을 되돌이켜보게 된다. <올드보이>에서 오대수가 자신이 함부로 내뱉은 말을 주워 담을 수 없어서 후회로 몸부림치며 자신의 혀를 잘라버리는 장면처럼 검증되지 않은 글을 함부로 써서 아까운 목숨이 스러진 경우 그 책임은 누가 져야 하는 것일까? 나는 악의적인 기사와 악플의 가해자들에게 <속죄>를 권하고 싶다. 물론 이 책을 읽는다고 해서 그 정도의 글을 펼쳐낼 수준의 인성이 갑자기 속죄를 토로하진 않겠지만 그래도 사람이라면 지켜야 할 최소한이 무언지에 대해 한 번이라도 느낄 수 있기를 희망한다. 아마도 <속죄>는 그런 이유로 이 작가의 기존 작품들이 가졌던 논란에서 벗어나 언론의 공통적인 찬사를 받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본다.


PS: 아마 이 영화를 원작으로 하는 <어톤먼트>를 먼저 봤다면 나는 남녀 주인공의 안타까운 사랑이야기에 더 감동받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영화를 보지 못한 채 소설을 먼저 읽은 나로서는 브리오니 특히 글을 쓰는 사람으로서의 객관적 사실을 벗어난 자신의 주관적 상상으로 인한 사실관계 유추에 따른 오해가 불러온 끔찍한 결과가 더 안타깝게 다가왔다. 내뱉은 말은 주워 담을 수 없다는 말의 무서움을 새삼 느끼는 오늘이다. 내가 뱉은 말이 타인에게 독이 될 수 있음을 거듭 유념해야겠다는 다짐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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