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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두녕 Mar 13. 2022

보고 싶은 사람도 없는데

Nov-18

2018.11

마음으로는 졸업에 무척이나 가까워진 요즘입니다. 스스로로서 어찌할 수 없는 이유들로 졸업이 미뤄질 수도 있게 되었지만, 저는 지혜롭게도(!) 내일 걱정은 내일을 위해 남겨두기로 했습니다. 이는 제게 놀랄만한 성취이기에 가끔씩 이렇게 뿌듯해하고는 합니다. 


졸업에 가까워진 마음은 저에게 이상한 종류의 여유를 선물해 주었습니다. 완곡어법을 잘 사용하지 않는 미국인 룸메이트들이 가끔씩 마음에 걸릴 때나 일상 속의 무례함을 종종 마주칠 때도 반작용(re-action)을 하기보다는 가만히 내버려 둘 때가 더 많게 되었습니다. ‘몇 달만 있으면 되는데 뭐’라고 생각하며 고개를 끄덕이고 맙니다. 굳이 부정적인 마음을 가져야 할 필요를 느끼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이 이야기를 들은 친구는 소리 내어 웃더니 말년 병장을 보는 것 같다고 말해주었습니다. 생각해보니 과연 그렇습니다. 학교에서 이미 마음이 떠나서 그런지, 무엇이 나를 귀찮게 해도 그러려니.. 하게 되는 것이 그때와 비슷합니다. 당시에는 후임들에게 관세음보살 같은 표정을 지으며 ‘다 놓았노라’라고 말하고 다녔었습니다.


그렇다고 어떤 감정도 느끼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작은 미련들이 좀 생겼습니다. 한 학기를 더 다니면 이런 것들을 더 할 수 있을 텐데… 하는 생각들입니다(저는 한 학기 이른 졸업을 고려하고 있습니다). 지금 교환 학생으로 타교에 있는 친구들과 마주 보고 작별 인사를 하는 것, 이제 좀 친해진 사람들을 조금 더 알아가는 것 그리고 봄이 오면 호수가 다시 연두색으로 물드는 것을 지켜보는 것. 물론 기다려봄직한 일들이지만 그것들 때문에 또 다른 4개월을 추위에서 보내야 하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이런 감정을 느끼는 제가 좀 신기합니다. 학교에 딱히 마음을 붙일만한 것이 없다고 생각하곤 했는데, 그럼에도 어떤 것들은 또 좋아하게 되어 버렸습니다. 이런 것들은 ‘떠나려고 하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인가 봅니다. 


사실 대학에서의 3년 반 동안 가장 아쉬웠던 것은 이 시간들을 별로 즐기지 못했다는 것이었습니다. 졸업 후에는 어찌 됐건 이 시간들을 그리워할 것을 알고는 있었지만, 애착을 가지는 것은 결국 마음의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얄궂게도 떠날 때가 되어 욕심 그리고 어떤 것은 어때야 한다는 생각들이 사라진 지금에서야 이별이 힘들어진 스스로를 발견하고 맙니다. 더 조금 좋아하려고 마음먹었더니 그보다 더 많이 좋아하게 되어버렸습니다(Less is more). 더 일찍 이런 마음을 가지지 못한 것을 아쉬워하고 있지는 않습니다. 그동안의 번뇌들이 없었다면 덜 좋아하겠다는 다짐도 하지 못했을 테니까요.  


제 sns 어딘가의 자기소개란에는 ‘Less is more’라는 구절이 적혀 있습니다. 원하는 것이 원체 많은 터라 가끔씩이라도 이 문구를 보면서 건강한 균형을 찾기를 바랐습니다. 다시금 이 구절의 훌륭함을 확인하며, 앞으로는 무엇이든 조금 더 일찍 덜 좋아하겠다고 다짐합니다. 아마도 이전보다는 조금 더 잘 할 수 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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