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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두녕 Mar 13. 2022

42

Jun-19

2019.06

 늦은 밤 인간이 잠든 사이, 뇌는 아직 휴식을 취하지 못한 채 전전긍긍하고 있다. 이유는 간단하다. 평소에도 잡생각이 많은 주인이 이번에는 ‘인생의 의미는 무엇인가' 하는 질문에 답하지 못한 채 잠들었기 때문이다. ‘삶과 우주 그리고 모든 것의 정답은 42’라고 답해보았지만 주인은 그런 유머에 고개를 끄덕일 생각이 없어 보였다. 오랜 시간 뉴런들을 돌리던 뇌는 한 가지 결론에 이르렀다: 이 인간의 삶의 의미는 그가 보내는 시간 속에 있을 것이다. 그는 지난 한 주 동안 주인의 일과를 복습한다. 그리고 각 이해당사자들에게 연락을 돌려 긴급 소집을 명한다.


제1회 ‘삶의 의미'배 공개 청문회에는 갑작스러운 공지에도 불구하고 많은 관중들이 몰렸다. 삶의 의미는 누구나 궁금해하는 주제였던 것이다. 명령에 따라 공청회장에 도착한 이해관계자들은 삶의 의미라는 이름표가 영 부담스러운 눈치다. 모두들 쭈뼛쭈뼛 대며 자리에 앉아있다. 뇌가 회의장에 들어서자 수군거리는 소리가 시나브로 멎는다. 땅, 땅, 땅 하는 소리가 개회를 알리자 누군가가 대기석에서 일어난다.


첫 번째 이해관계자는 ‘일()'이다. 그의 숫자 9가 적힌 옷을 입고 무대에 오른다. 헌데 그의 옆에는 누군가 찰떡같이 붙어있다. 숫자 1이 적힌 옷을 입은 ‘출/퇴근 준비'이다. 이 둘은 떨어질 수가 없는 존재인 듯하다. ‘일’은 잔뜩 긴장한 채 입을 연다: “저는 이 인간의 삶의 의미가 될 수 없습니다. 저는 단순히 이 사람의 지속 가능한 생활을 도와주는 도구일 뿐입니다.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우리의 주인은 일하는 것을 그다지 좋아하지도 않습니다. 업무에서 오는 스트레스도 골칫거리인데 저에게 더 큰 부담을 지우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그의 목소리는 파르르 떨리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는 ‘잠'과 함께 인간의 하루 일과에서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가 힘겹게 말하는 동안 ‘출/퇴근 준비’는 하염없이 스마트폰을 들여다보고 있다. 그는 별생각이 없어 보인다.


뇌는 ‘일'의 항변이 타당하다고 생각한다. 애초에 인간이 일에서 보람을 느꼈다면 굳이 삶의 의미를 찾을 것 같지 않다. 그는 손을 흔들어 ‘일'과 ‘출/퇴근 준비'를 퇴장시킨다. ‘일'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누구보다 빠르게 자리에 앉는다.


두 번째로 나선 것은 ‘식사'다. 그는 ‘식사 시간 보장'이라 적힌 머리띠를 두른 채 무대에 선다. 옷에 앞면에는 숫자 1.5가 적혀있고, 뒷면에는 ‘양보다는 질'이라는 문구가 붙어 있다. 몇 달 전 ‘일’이 새로 선물한 옷인듯하다. “제가 아는 한 이 인간은 먹는 일에서 삶의 의미를 찾을 것 같지는 않습니다.” ‘식사’는 우물대며 말한다. 이 와중에도 무언가를 먹고 있는 것이다.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것을 좋아하기는 하지만 먹으려고 사는 단순한 사람은 아닙니다.” 그의 목소리는 전혀 떨리지 않는다. 아주 당연한 듯 말한다.


뇌 역시 고개를 끄덕인다. 먹는 것이 삶의 의미라는 대답은 뇌가 생각해도 끔찍하게 창피한 대답이다. ‘식사’는 끄덕임을 신호로 천천히 무대에서 내려온다. 자리에 앉기 전에 주머니에서 복숭아를 꺼내 다시 한 입 베어 문다. 과즙이 입과 턱 주변에 묻었지만 그는 신경 쓰지 않는다.


세 번째 순서는 ‘운동'이다. 이미 땀에 젖은 그의 옷에는 숫자 1이 적혀 있다. 온몸에 흘러넘치는 아드레날린 때문인지 그는 흥분한 상태로 말한다: “운동이 삶의 의미라는 것을 말도 안 됩니다. 만약 이 사람이 먹어도 먹어도 살이 안 찌는 체질이었다면 그는 절대 운동을 안 하려 했을 겁니다. 그리고 이 사람이 무슨 손흥민이고 류현진이나 된답니까? 말도 안 되는 생각 마십쇼. 아랫배에 있는 뱃살을 보고도 그런 소리가 나온답니까”  


‘운동'은 퇴장 신호도 기다리지 않은 채 자리로 들어간다. 뇌도 그를 말리지 않는다. ‘운동'의 말에도 틀림이 없다.


다음으로 일어선 것은 ‘친구와 보내는 시간'이다. 그의 손에는 와인병이 들려 있다. 그의 얼굴에서는 약간의 취기 어린 홍조가 보인다. 그의 옷에 적힌 숫자는 좀 특이하다. 숫자 5옆에 작은 글씨로 ‘x 1/7’이 적혀있다. 일주일에 고작 한 번 정도라는 말이다.


 “삶의 의미는 결국 나한테 있는 거지 뭐.” ‘친구와 보내는 시간'은 껄껄 웃으며 말했다. “좋은 사람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게 결국 삶의 의미가 아니겠냐. 이미 오래전에 이렇게 결론 내리지 않았나? 굳이 이 생각을 다시 들춰보는 이유를 모르겠구먼."


뇌는 선뜻 동의하지도 고개 젓지도 못한다. 그의 말도 옳다. 이 인간은 한때 ‘좋은 사람들과 보낸 즐거운 시간'에 인생의 의미가 있다고 생각했다. 허나 주인은 이번에는 다른 답변을 원하는 듯했다. 그저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것보다 큰 무언가가 있지 않을까? 뇌 역시 그 부분을 생각하던 참이었다.


이제 무대에 올라선 것은 ‘독서/글쓰기'였다. 뇌는 안경을 고쳐 쓴다. 무엇이라도 찾아내겠다는 강한 의지를 보인다. 숫자 1이 적혀진 옷을 입은 그는 천천히 입을 뗐다. “이 인간이 책을 읽는 것은 그저 시간을 무위하게 사용하지 않았다는 위안을 받고 싶기 때문입니다. 책을 읽고, 이야기하고 글을 쓰는 것을 즐기지만 그 이상의 의미를 갖기 어렵습니다. 글 깨나 쓴다 하는 사람은 세상에 널렸고 이 사람은 아직 소설 한 권도 써보지 못했습니다. 장강명도 프랑수아즈 사강도 밀란 쿤데라도 먼 나라 이야기일 뿐입니다.”


그의 목소리는 너무도 차분하기에 선뜻 반대 의견을 펼칠 수가 없다. 누군가 방청객에서 ‘스스로의 한계를 지어버리지 마!’ 하고 외쳤지만 그는 눈 깜짝하지 않는다. 뇌는 ‘독서/글쓰기'의 말에 고개를 갸우뚱 거린다. 그의 말도 설득력이 있지만 ‘운동'의 그것보다는 현저히 떨어진다. 그 이유를 찾기 위해 미간을 찌푸린다.


그렇게 뇌가 고민하는 사이 ‘인터넷에서 멍 때리는 시간' 이 무대에 올랐다. 그가 등장함과 동시에 청중들은 일제히 야유를 퍼붓는다. 뇌의 뒤에서 날라온 날계란이 그를 맞춘다. 그의 옷에 숫자 대신 적혀있는 물음표(?) 위로 노른자가 죽 미끄러진다. 그가 손으로 얼굴을 가린 채 황급히 뒤를 돌아보자 등 부분에 있는 유튜브와 페이스북, 인스타그램의 로고가 계란을 대신 맞는다. 뇌는 애초에 그를 무대에 올릴 생각이 없었다. 아수라장이 되어 버린 공간을 정리하기 위해 그가 퇴장을 명하자, 그의 말을 오해한 청중들 및 이해관계자들이 모두 자리를 떠난다. 뇌는 소리를 쳐 사람들을 막아보려 하지만 회의장을 빠져나가는 청중들의 관성을 막을 수 없다. 곧이어 회의실에는 뇌와 대기석에 엎드려 잠들어 있던 ‘잠'만이 남았다. ‘잠'의 옷에는 숫자 7이 적혀있다.


그렇게 제1회 ‘삶의 의미'배 공청회는 결론 없이 마무리되었다. 뇌는 섣불리 그 누구에게도 ‘삶의 의미'라는 독이 든 성배를 부여하지 못한다. 이제 동이 터 오르고 알람이 울릴 시간이 되었지만 아직도 삶의 의미에 대한 대답은 42에 머물러 있다. 피곤의 절은 ‘뇌'는 소리 없는 탄식을 내뱉는다. 대기석에 앉아 있던 '잠'이 몸을 움찔거리기 시작하자 회의실의 광경은 하얗게 페이드 아웃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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