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y-18
2018.05
'세상에서 가장 빨리 끝나는 폭죽을 샀다.'
-서윤후, [스무 살]
[After Hanabi]라는 노래를 알게 되었던 것은 위 시를 소개하던 페이스북 포스팅 댓글란에 남겨진 링크 덕분이었다. 초면이었지만 시와 노래 그리고 그 둘의 조합도 단번에 마음에 들어버렸다. 불꽃놀이를 본지 오래되었으나 이미 노을이 지는 하늘에서 반짝이는 폭죽들을 그리고 있었던 까닭이었다. 이 시와 음악은 ‘특정한 분위기로 데려다주는 무언가’라고 생각했다. 좋은 영화나 소설들은 종종 나를 색다른 곳으로 데려가고는 했다.
항상 무작위로 음악을 재생하는 내 스마트폰에서 이 노래가 흘러나온 것은 석양이 지는 하늘을 보던 며칠 전이었다. 오랜만에 날이 풀려 바깥에 바람을 쐬러 나온 날이기도 했다. 익숙한 전주가 흘러나오자 미소를 지을 수밖에 없었다. ‘하필이면 지금?’ 하면서. 옆에서 폭죽이 터지고 있지는 않았지만 그런 완벽한 우연은 바라지도 않았다. 그렇게 가라앉는 태양을 보고 있자 얼마 지나지 않아 노래의 러닝타임이 다 흘렀고 나는 금세 헛헛한 기분을 느껴버렸다. 그것이 이 노래의 가장 치명적인 단점이었다. 5분여 간 듣는 이를 평화로운 불꽃축제의 한가운데 데려다 놓고는 순식간에 페이드아웃해버려 너무도 큰 괴리감을 안겼다. 즐거웠던 일요일 밤의 약속을 마치고 월요일로 돌아가야 하는, 그런 기분이었다. 나 역시 일상으로 돌아가야 했다.
밝은 주황색이 보랏빛으로, 그리고 짙은 남색으로 바뀌던 그 5분 남짓 동안, 나는 시간이 지나면 아무것도 아니게 되는 것들에 대해서 생각하고 있었다. 예컨대 불꽃놀이 같은 것, 혹은 지겨웠던 이번 겨울 같은 것들. 올해 미국 중북부 지방의 겨울은 유난히도 길어서 4월 중순까지도 꽃이 필 채비도 하지 못했다. 코트 속으로 몸을 움추리게 했던 추위는 그다음 주에 따뜻한 바람이 불어오자 언제 있었냐는 듯 사라져버렸다. 한가롭게 반팔을 입고 다니는 사람들은 그냥 그렇게 추위를 잊은 듯했다. 나는 그것이 이상하게도 불만스러웠다. 오랜 기간 사람들을 몸서리치게 했던 것이 그렇게 쉽게 잊힌다는 것이 참 허탈했고, 언젠가 그렇게 쉽게 사라져버릴 것에 힘들어했음이 싫었다. 무엇이든 끝이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것은 그다지 큰 차이를 만들어내지는 못했다. 시간이 흐르면 지나가버리는 것들도, 그것이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그 순간 동안에는 영원했기 때문이다.
계절이 오고 가는 일 그리고 시간이 흐르는 일은 개인으로서는 어쩔 수 없는 성질의 것들이었다. 그리고 어쩔 수 없음에 대한 생각에서 나는 예상치 못한 아늑함을 발견할 수 있었다. '어쩔 수 없는 일이라면 아무 것도 하지 않아도 괜찮아!' 시간의 일시성과 영속성에 대해 카르페디엠을 외치는 일이 힘차고 흥겨운 건배라면, 나의 무능력함을 인정하는 일은 눈으로 웃으며 부딪히는 짠- 같은 것이었다. 그정도로도 충분했던지 마음의 허기는 곧 가라앉았다. 어쨌건, 시간이 흐르면 지나는 일이기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