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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두녕 Mar 28. 2022

신(neo)소작농뎐

19-May

2019.05

소인이 봉급을 받으며 일을 하기 시작한 지는 비록 두 달밖에 되지 않았으나 제법 영민한 머리를 가진 덕에 벌써 노동의 무서운 생리를 알아버렸습니다. 이를테면 이런 것들입니다. 세상에는 어질지 못한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다는 것, 그리고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들 중에 그런 이들을 심심찮게 찾아볼 수 있다는 것. 신참이 들어오면 일을 가르쳐 주는 듯하며 제 일을 시키는 사람이 있다는 것, 공짜로 주는 점심참을 많이 먹으면 식곤증 때문에 가배 또한 많이 마셔야 한다는 것. 이렇게 새로이 배우게 되고 느끼게 된 것들 중에서 소인의 마음에 사무치게 된 것들만 몇 자 적어보려 합니다.


먼저 일을 하기 시작하며 생긴 것은 날씨에 대한 반감입니다. 밭을 가느냐 허리도 필 새 없는 주 중의 하늘은 푸르고 바람은 선선한데, 주말에 나들이라도 갈까 하면 어찌 눈과 비가 내리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렇게 호미질을 하다가 한 치 앞도 모르는 유생들이 따사로운 볕을 쬐며 꽃놀이를 하는 것을 볼 때면 배알이 꼴리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또, 고뿔이 들어도 꼭 주말에만 들어서는 것 또한 무슨 연유인지 모르겠습니다. 주 중에 그런 기운이 들면 콜록거리며 일이라도 눈치껏 쉬엄쉬엄할 텐데 앓아눕는 것은 꼭 주말의 일입니다. 자애로우신 천지신명님 덕분에 지난 주말에는 좋아하는 탁주 한 사발 마시지도 못했습니다.


따귀를 한 대 쳐올리고 싶을 정도로 얄미운 사람들도 생겨버렸습니다. 해가 뉘엿뉘엿 질 때쯤 나타나 저어기 있는 논 한 마지기를 가리키며 내일 해가 뜰 때까지 갈아놓으라는 못된 지주 양반입니다. 오전에는 무엇을 하는지 코빼기도 비치지 않다가 저녁노을을 보며 집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희망찬 마음이 싹트기 시작할 때쯤에서야 일을 던져주는 것은 도대체 어떤 심보란 말입니까. 듣자 하니 저 먼 우주 어딘가에 사는 어린 왕자라는 사내는, 사모하는 이가 오후 4시까지 온다면 3시부터 행복해질 것이라는 말을 남겼다 합디다. 소인은 마음이 옹졸한지라 지주 양반이 5시가 끝나갈 무렵 일을 건네준다면, 저녁 8시까지 기분이 나빠할 준비가 되어있습니다.


이토록 고된 노동을 감내하는 소인의 낙은 결국 힘들게 벌은 돈을 다시 써버리는 것뿐입니다. 2주 분의 급여를 받는 날이면 술과 주전부리를 사들고 집으로 향하고, 다음 날에는 장터에 들려 옷가지들을 이것저것 걸쳐보고는 합니다. 미천한 급여로는 살 수 없는 아름다운 것들을 보며 얼마나 더 일해야 이들을 가질 수 있을지 생각하다가도 이내 이 체제의 아-이러니함을 느끼고 허무해 합니다. 벌었다고 쓰고, 썼으니 또 버는 모습이 참 웃기지 않습니까. 그러면서도 제 발로 노동이라는 이름의 쳇바퀴에 들어서기 위해 안간힘을 쓰며 노력하는 친구들을 보면 마음이 참 혼란스럽습니다.


그렇다고 일을 그만두겠다는 말은 아닙니다. 체제를 부정하며 호숫가 옆 숲속에 움막을 짓고 살겠다는 것 또한 아닙니다. 한 명의 개인이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이 있겠습니까. 그저 한 달에 한 번 글 쓰는 날과 일당을 받는 날을 맞춰 노동이 아닌 글을 쓰는 일에 돈을 버는 것이라고 생각하며 스스로를 위로할 뿐입니다. 이제 명일의 노동을 준비하기 위해 자정이 되기 전에 잠자리에 드는 피고용인은, 언젠가 제 이름의 땅을 소유하게 되어 봉급을 받는 것이 아닌 나눠 줄 날을 꿈꿔볼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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