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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두녕 Sep 03. 2024

유대는 파도와 같이 커지고 작아진다

MAR 24

2024.03


     할아버지의 부고 소식을 들은 것은 잠들기 직전의 목요일이었다. 예상하고 있던 일이었지만 여전히 갑작스러웠다. 이어진 짧은 통화에서 엄마는 돌아오지 않을 것 을 권유했다. 장례는 만으로 48시간이 채 되지 않을 것이고, 잠시 들어왔다가 돌아가면 몸에 무리가 갈 수밖에 없다. 나는 큰 고민 없이 11시간 후에 출발하는 비행기 표를 구매했다. 이번 기회에 한국에서 잠시 재충전을 하고 올 생각이었다. 항공권 가격이 너무 비싸지 않음에 감사했다. 손주로서의 도리와 비행기 표 사이에서 고민하고 싶지 않았다. 잠들기 전, 일찍 누웠더라면 할아버지를 배웅하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2023.05

“아들, 보내준 글 잘 읽었어. 엄마는 너가 할아버지에 대한 긍정적인 기억들을 많이 가지고 있어서 좀 놀랐어. 너가 어릴 때는 할아버지에 대한 불평들을 많이 했거든.”
“아 그래요? 그건 기억이 잘 안 나나 봐. 그런 기억들은 굳이 얘기해주지 않아도 돼(웃음)“
“그래 (웃음) 나도 그럴 생각은 없었어”              




      한국에 닿은 것은 이른 토요일 오후였다. 막히는 고속도를 피해 itx열차를 타기로 했다. 집으로 향하는 열차 위에서는 조금씩 조바심이 나기 시작했다. 더 오랜 시간 조문객을 받는 것이 도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춘천에 도착하니 이미 저녁시간이 훌쩍 지나있었다. 장례식장으로 향하는 택시 안에서 문득 내가 어떤 일들을 해야 하는지 알지 못함을 깨달았다. 기사님께 장손의 역할에 대해 여쭈어 보았다.



2023.12

“형은 잘 모르겠지만 할머니가 할아버지 병간호 하시면서 많이 힘들어하셨어. 할아버지가 옆에 누가 없으면 불안해하셔서 할머니가 밖에 못 나가시고 계속 집에 붙어 계셨나 봐. 시청에서 하시던 노인 일자리랑 성당도 못 다니시고. 한 번은 할머니랑 같이 식사하는 자리에서 할머니가 자기 힘들다고 짜증을 내신 적도 있었어. 많이 힘드셨나 봐.”


     장례식장은 평온했다. 예정되고 이해할 수 있는 죽음 앞에 크게 슬퍼하는 이는 없었다. 아버지의 표정도 어둡지 않았다. 조문은 애도와 감사보다는 재회의 시간이었다. 곧 군대를 간다는 고종사촌이 상복을 챙겨주었다. 뵌 지 5년은 족히 됐을 아버지 어머니 친구분들이 반갑다며 인사를 건넸다. 너를 돌 때 보고 처음 본다는 말을 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오랜만인 것은 명절마다 만나던 5,6촌 당숙들도 마찬가지였다. 작은할아버지 한 분은 내가 택시에서 내리는 것을 보셨는지 인천공항에서 여기까지 택시를 타고 왔냐고 묻기도 하셨다. 이들 모두를 따뜻하게 맞이하는 것이 나의 역할임을 곧 이해하게 되었다.



2023.05

“당신은 글 읽었어요? 좀 어땠는지 얘기해 줘요”
“어~ 나도 잘 읽었다. 아버지에 대해서 다시 생각할 수 있어서 좋았어. 고맙다”




     발인을 앞두고 장례 지도사는 아버지와 어머니께 마지막 말을 전하라고 권했다. 아버지는 할아버지에 대한 감사함을 이야기했고, 어머니는 할아버지의 평온함을 바랐다. 장례식을 통틀어 유일하게 감정적이었던 순간이었다. 당숙 어른들은 일요일 새벽부터 발인을 함께 해주셨다. 21세기의 반의 반이 지나가는데도 꾸준히 제사와 차례, 벌초를 주도하시는 어른도 계셨다. 그분께 감사함을 느낀 것은 살면서 이번이 처음이었다. 할아버지는 일가친척 분들 중에서 처음으로 화장을 하고 선산이 아닌 추모공원에 안치되었다.  




     장례식을 마치고 모두 긴 낮잠을 잤다. 저녁에는 고모 가족까지 할아버지 집에 모두 모여 함께 식사를 했다. 추모를 위한 자리가 아닌 맛있는 것을 먹고 웃고 떠드는 자리였다. 사흘 밤낮을 같이 샌 사이라서 그런지 동지애가 느껴졌다. 우리가 이토록 가까웠는지 알지 못했다. 다음 날이면 모두 제 자리로 돌아갈 것이다. 매주 할아버지를 보러 오시던 고모는 앞으로 매주 오지는 못할 것이라 전했다. 직장이 있는 이들은 다시 출근을 할 것이다. 엄마는 운 좋게도 예정되었던 유럽 여행을 떠날 수 있다. 유대는 파도와 같이 커지고 작아진다. 강하게 응집되었던 가족은 다시 흩어질 것이다. 다시 뭉칠 수 있음을 알기에 헤어짐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2024.03 

“이것도 너희 할아버지 복이여. 장례식장에 손주들 넷 다 모였자녀. 우리가 명절에도 못 보잖니. 마지막에 손주들 얼굴 다 보고 가신 건 너희 할아버지 복이여. 복 많은 영감이여 너네 할아버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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