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의원을 다니다
다섯 번의 시험관 시술이 모두 실패하자, 오기가 생겼다.
처음엔 *“왜 이렇게까지 안 되나”*라는 생각이었지만, 이제는 달랐다.
“반드시 해내고야 말겠다.”
하늘이 주길 기다리며 감사만 하는 것으로는 소원을 이룰 수 없다.
원한다면, 그 목표를 향해 내가 달려야 한다.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고 했던가.
오가던 시장 한가운데에서 우연히 한의원을 발견했다.
불임 전문 한의원.
인자한 원장은 불임 여성을 위한 한약을 개발하고 책까지 낸 분이었다.
검사를 받는 동안 원장은 나를 기도 모임으로 초대했다.
같은 처지의 여성들과 주 1회 함께 기도하며 마음을 나누는 자리였다.
지인에게는 털어놓기 싫었지만, 간절히 누군가와 나누고 싶던 내 마음이 그 제안을 받아들였다.
한의원에서 구입한 티백을 자궁벽에 넣어 온도를 높이고 내막을 튼튼히 하라는 처방을 받으며,
성당에 의지하던 마음이 조금씩 한의원으로 옮겨갔다.
기도 모임은 원장, 여전도사, 그리고 나를 포함한 세 명의 불임 여성으로 구성됐다.
김밥 한 줄을 함께 나누고, 통성기도와 중보기도를 배우며 공동의 주제를 나누었다.
어느 날은 공연을 보고, 인천까지 집들이를 가기도 했다.
하루는 야리야리한 신입이 친정엄마 손에 이끌려 들어왔다.
딸을 위해 기도한다는 이유로 모든 걸 대신하려는 엄마를 보며,
나는 오히려 멀리 떨어져 있는 우리 엄마에게 감사했다.
과보호는 자유를 빼앗는 간섭이라는 것을 새삼 느꼈다.
또 다른 날, 압구정 길을 걷다 모임 회원에게서 전화를 받았다.
시험관 시술을 묻기에 길 위에서 30~40분을 성심껏 설명했다.
여섯 번이나 실패한 내가 다시 떠올리기조차 힘든 과정을.
하지만 다음 모임에서 원장의 질문에 그녀가 말했다.
“네, 전화해서 물어봤는데 너무 대충 얘기하셔서 도움은 안 됐어요.”
순간 숨이 멎었다.
기막혔지만, 이미 남편으로 인해 위축된 나는 그저 놀란 금붕어처럼 입만 반쯤 벌린 채 있었다.
받아쳤다 해도 무슨 소용일까.
사람은 오래 두고 보면 저절로 드러나는 법.
나는 까마귀가 될 필요가 없었다.
그리고 다짐했다.
아무리 현실이 팍팍해도, 저렇게 호의를 왜곡하지는 말자.
결국, 나는 그 까마귀 때문에 모임 발길을 끊었다.
남편은 여전히 필요할 때만 집에 들렀다.
포천에 사는 시누이가 들른다는 연락에 마지못해 온 날,
남편 차의 조수석에 앉자마자 시누이가 굽 높은 여자 구두를 집어 들었다.
평소 구두를 신지 않던 나는 곧 내 것이 아님을 알았다.
시누이도 눈치챘는지 조용히 내려놓았다.
남편이 툭 던졌다.
“아, 며칠 전 회사 직원이 탔는데 그때 떨어뜨렸나 보네.”
맞든 틀리든 이제는 상관없었다.
묻지 않았다.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
그러나 이 집에서 모든 게 잘 될 거라 믿었던 희망과 달리,
나는 거듭 실패를 경험했다.
그리고 시댁 식구들의 발걸음이 하나둘 내 평화를 파괴하기 시작했다.
그 시작은—아주버님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