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꿎은 화살은 나에게
아주버님에게 전화가 왔다.
8남매 중 맏이인 그와 남편 사이에는 오래된 갈등이 있다.
어릴 적 맏이라는 이름으로 남편에게 남긴 상처는 깊고,
그 이야기를 수십 년째 반복해서 듣는 나는 이미 지쳐 있었다.
중간에서 관계를 살피고 풀어 보려 애써 왔지만 한계가 있었다.
나는 아주버님과 무난하게 지냈다.
하지만 그가 다리 수술을 위해 서울 병원으로 올라오며
“밥 먹으러 오라, 조카 여자친구를 보러 오라”는 말들을 남겼다.
시험관 시술 실패로 마음이 무너져 있던 내게는
그 친절마저 폭력처럼 느껴졌다.
몇 차례 오가기를 반복한 끝에 형님은 지방으로 내려갔다.
“남편이 집을 비우니 당분간 우리 집에서 지내자”는 말에는
늘 웃으며 넘기던 나조차 아연실색했다.
진료차 올라올 때마다 예고 없이 연락해
방금 식사를 마쳤어도 또다시 음식을 밀어 넣는 식사 자리.
며칠씩 체기가 내려가지 않아 고생했다.
결혼 후 큰 시누이가 암 수술로 왔을 때도
검사·입원·퇴원, 관장약과 거즈까지—
낯부끄러운 일까지 내가 도맡았다.
이번에도 아주버님 일로 끝이려니 했는데
곧 막내 시누이가 무지외반증 수술을 위해 서울로 오겠다고 했다.
남편은 집에 들어오지도 않았고,
전화를 해도 받지 않거나 짜증과 욕설로 일관했다.
내가 그렇게 편해 보였을까.
온다고만 통보하면 뒷수습은 내 몫이었다.
검사를 위해 아이들을 시부모에게 맡기고 온 시누이는
남편에게 전화를 걸어 우리 집을 찾았다.
마지못해 온 남편은 오히려 나에게 날을 세웠다.
시누이가 입원해 있는 동안
슬리퍼가 없다, 수건이 없다며 시시때때로 부르는 통에
내 머리는 아찔했고 이성은 마비되었다.
몸만 달랑 온 시누이에게 나는 어떤 존재였을까.
그러나 더 큰 문제는 남편이었다.
정거장 거리의 병원에 누운 여동생을 챙기자니 귀찮고
모른 척하자니 체면이 서지 않으니
애꿎은 화살을 나에게 돌렸다.
나는 졸지에 시댁의 역적이 되었다.
퇴원하러 올라온 고모부의 냉정함과 시누이의 흘김 속에서도
끝내 밥을 차려 보냈다.
내 앞가림도 벅찬데 누구를 더 돌본단 말인가.
보통의 남자라면 내 투정을 듣고라도 포장했겠지만
남편은 자신의 불만을 내 탓으로 돌렸다.
죽어라 노력해도 애꿎은 화살은 늘 나를 향했다.
사람이 사람에게 지칠 수 있다는 걸, 그때 절실히 느꼈다.
내 얼굴을 본다면—
살이 빠져 뼈만 남은 몰골을 본다면
누구라도 우환을 짐작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에겐 자신의 이익이 먼저였다.
시댁의 시누이들은 늘 떼를 지어 행동했다.
한 명씩 만나면 평범했지만,
명절이면 안방에서 쑥덕거리다
내가 문을 열고 들어가면 대화가 뚝 끊겼다.
나는 슬그머니 빠져나와 외톨이가 됐다.
그럼에도 기저귀를 싸서 내게 던지듯 건넨 기억을 빼면
나쁘지 않은 관계로 남기고 싶다.
8남매 중 네 명이 이혼했고 한 명은 소송 중이다.
편 가르기가 일상이고, 남편은 왕따가 되어 스스로 고립돼 있다.
인간사 다 부질없다.
누가 누구에게 맞추려 애쓴다는 건 어리석다.
나는 이제 알았다.
내가 나답게 살면 된다.
나를 이해하지 못하고, 싫어하고, 맞지 않는다면
그저 만나지 않으면 된다.
애쓴다고, 노력한다고 맞춰지는 관계는 없다.
엇갈린 톱니는 결국 어긋난다.
나는 이제, 도저히 맞물리지 않는 남편과의 톱니를 제거하려 한다.
마음이 수척해진 요즘,
다시 건강해지는 길은 나를 돌보고, 나를 위로하고, 나를 아끼는 것.
예전의 어리석은 나도,
현재의 지친 나도,
앞으로 행복해질 나도—
모두 사랑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