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임 시리즈.89불륜녀, 정말 본처를 이길 수 없을까?

병문안 뒤에 숨은 시선

by 나은

또다시 간섭이 시작되다


결혼 한 달 뒤였다.

남편은 강남대로에서 오토바이를 타다 택시와 부딪히는 큰 사고를 당했다.

의사는 “코끼리가 비스킷을 밟은 정도의 충격”이라 표현했다.

내겐 상상조차 못 한 사건의 시작이었다.


응급실로 달려가던 택시 안,

룸미러로 나를 살피던 기사님은

“병원 연락은 늘 심각하게 오지만 실제로는 괜찮은 경우가 많습니다. 너무 놀라지 마세요.”

라며 위로를 건넸다.

그러나 나는 얼이 빠져 그 말조차 제대로 듣지 못했다.


세브란스 응급실 문을 열자,

반쯤 누운 채 소독을 받는 남편이 보였다.

“들어오시면 안 됩니다.”라는 직원의 말에 멈칫하던 그 순간,

남편과 눈이 마주쳤다.

사고라 하면 죽음을 먼저 떠올리는 법.

간호사의 “의식이 없다”는 전화까지 받았던 나는

살아 있는 남편의 모습을 보고서야 숨을 돌렸다.


수술을 위해 이송되는 구급차 안에서

남편은 내 손을 잡고 말했다.

“무슨 일이 있더라도 너, 나 버리면 안 된다.”

뜻밖의 말에 잠시 멈칫했다.

부부라면 당연히 함께하는 것 아닌가.

그의 불안이 낯설었다.


그러나 긴 병에 효자 없다고 했던가.

회복 과정에서 남편의 짜증과 투정은 끝이 없었다.

식판을 던지고, 욕을 하고,

경찰 조사와 합의 문제로 주변을 탓했다.

시어머니의 쌈짓돈만 허공으로 흩어지고,

나는 병원과 경찰서를 오가며 동분서주했다.


“날 버리지 말라”던 그 말은

금세 당연한 요구와 불평으로 변했다.

병실을 드나들던 한 여고생에게

남편이 연락처를 건넸다는 소식까지 들려왔다.

그때 미리 감지했어야 했는지도 모른다.


결혼과 함께 나의 삶은

예측할 수 없는 속도로 급발진했다.

보통의 일상을 산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기본의 삶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

뒤늦게 깨달았다.


시간이 흘러 남편은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현장을 핑계로 늘 밖을 돌던 그가

이제는 소파에 자리를 잡았다.

가끔 먹고 오던 저녁이 집밥으로 바뀌더니

사사건건 간섭과 잔소리가 이어졌다.

혼자만의 고요에 익숙해진 내겐

그의 귀가와 지배가 불편하고 못마땅했다.

하지만 목표가 있었기에 모른 척할 수밖에 없었다.

결혼 초 다리에 심었던 철심을 제거하기 위해

그는 다시 병원에 입원했다.

병문안을 핑계로 찾아온 거래처 여자가 있었다.

그 여자는 남편에게 티셔츠를 선물하고,

차 안에서는 담요를 함께 덮고,

아이스 음료의 빨대 하나를 나눠 썼다.

누가 봐도 오해할 만한 모습이었다.


‘당신은 날 가지고 논 거였어.’

그녀가 남편에게 보낸 메일 한 줄이 내 머릿속을 맴돌았다.

그리고 병실에서 마주친 그녀의 모습—

촌스럽고 볼품없는 차림.

내가 상상했던 상대와는 전혀 달랐다.


아이러니하게도 그 순간,

나는 오히려 우아함을 지닌 본처로 서 있었다.

누구나 한 번쯤 돌아보게 만드는,

나만의 당당함이 그 자리에는 분명 있었다.


남편이 다시 집으로 돌아온 지금,

그때의 간섭과 억압은 또다시 시작되었다.

나는 다시,

혼자만의 고요를 지켜내기 위해 마음을 다잡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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