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거품 같은 삶
남편이 퇴원해 집으로 돌아왔다.
그동안 우리는 남편의 필요에 의한 통화 외엔 아무런 대화도 없었다.
나 역시 “서운하다, 슬프다”는 말을 꺼내지 않았다.
한들 무엇을 얻겠는가.
“아니다, 오해야”라고 설명한들 사선으로 깊게 그어진 상처는 아물지 않을 테니.
결혼 후 처음 맞는 임신, 보통의 임산부들은 어떤 하루를 보낼까.
낯선 일 투성이다. 그래서 대응도 어설프다.
같은 집에 살면서 나는 어떤 제스처를 취해야 할까.
모르겠다. 정말 모르겠다. 온통 모르는 것뿐.
나는 바보가 된 걸까?
다혈질인 남편은 여전히 말을 거르지 않는다.
여섯 누나 사이에서 자랐다지만, 여성에 대한 존중은 배우지 못한 듯하다.
몰랐다. 알았다면 이 지경까지 오지 않았겠지.
그러나 후회는 없다.
내 결정의 책임은 결국 내 몫이니까.
그럼에도 나는 임신을 했다.
포기하지 않는 끈기를 불쌍히 여긴 하나님의 은혜였을까,
삼신할머니가 애절한 마음을 들었을까.
그토록 바라던 임신이 이루어졌다.
그런데 이렇게까지 냉담해도 되는 걸까.
날 둘러싼 공기는 언제쯤 온기를 가질까.
남편은 여전히 자신의 행동을 말하지 않는다.
기대가 없던 나 역시 반응하지 않는다.
정기검진 날이 왔다.
보통의 집이라면 남편이 함께하겠지만, 먼저 손을 내밀고 싶진 않았다.
생각이 필요했다. 답 없는 생각.
왜 나는 늘 막다른 골목에 서 있는가.
오른쪽, 왼쪽, 위, 아래… 어느 쪽도 없다.
생각한들 무슨 소용이랴.
시험관 10번째 시도 끝에 임신은 되었지만,
남편은 기뻐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이 생명을, 어떻게 할 수 있단 말인가.
담당의를 만났다.
“아이고, 어서 오세요. 잘 쉬셨어요? 남편분이 많이 기뻐하시죠?”
“아… 네, 좋아하죠. 당연히…” 말끝이 흐려졌지만 의사는 눈치채지 못했다.
“좋은 생각만 하세요. 몸도 마음도 편안히 지내다 오세요. 고령이라도 크게 걱정 마세요. 저도 최선을 다할게요.”
고마웠다.
직업으로 나를 대하는 의사에게서도 진심이 느껴지는데,
평생을 함께하자던 남편에게선 그 마음을 찾을 수 없다.
그럴 수 있겠다 싶으면서도,
내가 그토록 바라며 애쓴 모든 시간이
순간, 물거품처럼 느껴져 쓰라렸다.
아프다, 많이...
지금의 현실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