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부인과로 이관되다...
시간은 느리게, 마치 아무 일도 없는 듯 무심히 지나갔다.
또 한 번의 검진 날.
담당의가 차분히 말을 꺼냈다.
“이제 산부인과로 이관하셔야 합니다. 가장 유능한 분을 직접 연결해 드릴게요.”
그는 내 앞에서 전화를 걸었다.
“제 산모입니다. 고생 많으셨죠. 출산까지 잘 부탁드립니다.”
그 한마디가 가슴을 쳤다.
내가 뭐라고, 이런 배려를 받을 자격이 있을까.
“목이 메어올 만큼 고마웠다.”
도로를 사이에 두고 한쪽엔 불임 전문 병원, 건너편엔 산부인과가 있다.
그토록 꿈꾸던 길을 마침내 건너게 된 것이다.
“상상 속 그날은 세상을 다 가진 듯했으나,”
현실의 나는 그저 덤덤하다.
왜 웃음이 사라진 걸까.
“문득, 뱃속의 아이가 안쓰럽게 느껴졌다.”
나로부터 파생되는 일들이 왜 이렇게 많을까.
나 자신에게조차 미묘한 혐오가 일렁인다.
그럼에도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
하루하루 주어진 일정을 따를 뿐.
새 병원 로비에 들어서자 공기가 달랐다.
소아과, 내과, 다양한 진료과를 오가는 사람들.
나와 같은 길을 걸어온 산모가 있을까.
수많은 실패를 견딘 이는 없을지라도,
순간 낯선 동지애가 스쳤다.
새로 만난 의사는 귀가 크고 기골이 장대했다.
부처상 같기도, 조선의 장수 같기도 한 인상.
우렁찬 목소리로 자신을 부원장이라 소개하며 말했다.
“그동안 고생 많으셨죠? 조원장이 특별히 부탁했습니다. 출산까지 제가 잘 도와드릴 테니, 태교에만 힘쓰세요.”
세상에 이렇게 따뜻한 사람들이 있었나.
어디에 숨어 있다가 한꺼번에 나타난 것일까.
오랜만에 사람에게서 온기를 받으니 가슴이 저릿했다.
산모수첩에 내 이름이 적힌다.
드디어 ‘산모’가 되었다.
아이를 낳을 수 있는, 그 자격이 주어졌다.
험난했던 지난날들이 스쳐가자
눈물이 불쑥 치밀었다.
울음을 삼키려니 목이 타들어 간다.
‘살자. 살아내자. 바라던 바를 이루었으니 이제는 아이만 생각하며 나아가자.’
세 달을 채운 작은 배를 쓰다듬으며 논현 고개를 넘는다.
붉게 물든 석양이 길을 물들인다.
마치 태아와 내 발걸음을 응원하듯.
‘걱정 마. 나 잘할 거야. 흔들리지 않고 앞으로 가자.’
그러나 그 결심이 무색하게,
또다시 일이 벌어지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