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임 시리즈. 96화. 시험관 시술 10회, 임신(4)

벽 너머의 고백, 화면 속의 배신

by 나은

그토록 바라던 진료실.

산모수첩을 손에 쥔 순간, 어깨가 스르르 올라갔다.

내 이름 뒤에 ‘산모’라는 호칭이 붙다니, 이 낯설고도 설레는 기분을 뭐라 해야 할까.


초음파 화면에 흐릿하게 맺힌 작은 생명.

작고 빠른 심장 박동이 내 귓가를 파고들 때, 내 몸속 또 다른 우주가 자라고 있음을 실감했다.


남편과 나는 여전히 말없이 평행선을 걸었다.

다만 어느새 그는 날마다 집으로 돌아왔다.

묻지 않는 나, 설명하지 않는 그.

나는 그저 태교에만 몰두하며 조용히 하루를 쌓아갔다.





저녁, TV 소리가 사그라든 거실.

서재 쪽에서 낮게 깔린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똥, 네가 임신해서… 너무 기쁘다. 우리, 행복하자.”


숨이 멈췄다.

심장이 크게 뛰며 뺨이 달아올랐다.

말이 나오지 않았다.

그 짧은 침묵이 방 안을 채웠다.


잠시 후, 같은 목소리가 다시 스며들었다.


“내 말… 들었어?”




나는 떨리는 입술을 간신히 열었다.


“…응.”




눈가가 화끈거렸다.

단 한마디였지만, 그 순간 세상은 빛으로 가득했다.




탁—탁—탁.

서재에서 키보드를 두드리는 소리가 규칙적으로 이어졌다.

퇴근 후 업무 보고서를 쓰는 그의 습관을 알면서도, 오늘따라 그 소리가 유난히 귀를 찔렀다.

방금 전의 벅찬 여운이, 설명할 수 없는 불안으로 흔들리기 시작했다.


‘왜 이렇게 크게 들리지… 무슨 일을 하는 거지?’

스스로도 알 수 없는 힘에 이끌려 나는 서재로 발을 옮겼다.


문틈 사이로 새어 나온 불빛.

남편은 화면을 응시한 채 몰두해 있었다.

내 인기척을 느끼지 못한 듯, 손가락이 쉴 새 없이 움직였다.

그러나—그 화면에는 보고서가 아닌 다른 메일이...


[남편이 쓰던 메일]

'너와 나의 마음을 담은 반지를 맞추자…'




숨이 턱 막혔다.

화면 속 커서가 깜박일 때마다 가슴이 쿵 내려앉았다.


“너네… 지금 뭐 하는 짓거리야?”

내가 뱉은 소리에 남편이 화들짝 돌아섰다.

그리고 그 순간, 내 손이 먼저 그의 뺨을 갈랐다.

충격과 분노가 동시에 번졌다.


그가 잠시 멈칫하더니 내 손목을 붙잡았다.

몸을 빼려는 순간, 남편이 나를 밀쳤다.

균형을 잃고 바닥으로 쓰러졌다.

임신한 몸이 차가운 마룻바닥에 부딪히는 순간, 세상이 하얘졌다.


그 짧은 혼돈 속에서도 나는 남편의 노트북을 향해 손을 뻗었다.

받은 편지함이 열려 있었다.


[그녀의 메일]

'당신은 날 가지고 논 거였어.'




가슴이 얼어붙었다.

방금 전까지의 기쁨이 한순간에 산산이 부서졌다.


하아—

시험관 시술 열 번을 버티며, 온몸을 던져 여기까지 왔는데.

행복이라 믿었던 이 밤마저 무너져야 했나.

도대체 내가 무엇을 그렇게 잘못했단 말인가.

하늘은 왜 이토록 잔혹한가.

나는, 우리 아이는, 이제 어디로 가야 한단 말인가.






PS

100편을 끝으로 불임 시리즈를 마무리합니다.


다음 연재는 〈이혼하지 않는 죄, 유죄〉

발달장애 아이를 키우며 이혼을 결심하기까지의 모든 현실,

소송을 제기한 지 1년이 지나도 단 한 번 열리지 않은 재판,

그리고 그 이후의 미래 계획까지 사실 그대로 써 내려갑니다.

버거운 나날이지만, 댓글과 응원이 큰 힘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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