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나로 살고 싶다
더 이상 아프고 싶지 않다.
밤마다 같은 꿈을 꾼다.
도망치려 해도 문이 잠겨 있고, 그 안에서 나는 여전히 그 사람의 그림자를 밟고 있다.
서류 한 장이면 끝나는 일이라 했다.
하지만 도장 하나 찍는 그 일이, 왜 이렇게도 오래 걸리는 숙제가 된 걸까.
마음이 이미 떠났는데도, 현실은 나를 붙잡고 놓아주지 않는다.
아이의 얼굴, 주변의 시선, 그리고 나를 옭아매는 ‘책임감’이라는 이름의 사슬.
끝나지 않는 결혼의 사슬
사랑이 끝났는데, 결혼은 왜 끝나지 않는 걸까?
이혼이 자유라면, 왜 그 길 위에 더 많은 상처가 기다리고 있을까.
사람들은 쉽게 말한다.
“그래도 참아야지. 아이 생각해서.” 하지만 나는 알고 있다.
참는다는 말 뒤에는, 나의 아픔이 아무렇지 않게 지워진다는 잔인한 진실이 숨어 있다는 것을.
나는 이제 더 이상 아프고 싶지 않다.
누군가를 미워하고, 나 자신을 탓하고, 끝없는 굴레 속에서 허우적거리는 이 삶이 버겁다.
이제는 살아남는 일이 아니라, 온전히 살아가는 일을 하고 싶다.
모처럼 햇살 좋은 가을날이다.
살랑거리는 은행잎이 유난히 노란 것은 햇빛을 잘 받아들인 결과이다.
그늘진 곳의 잎들은 빛이 닿지 않아 어둡고 갈색에 가깝다.
자연에게 광합성이 중요하듯, 사람에게도 마음의 빛이 필요하다. 그
렇다면 지금, 나에게 필요한 빛은 무엇일까.
괜찮다'는 가면 뒤에 숨은 두려움
자녀를 위한 기도 모임에서 모처럼 야외 소풍을 다녀왔다.
창 앞으로는 계곡이 흐르고, 창 뒤로는 단풍빛이 드리워진 그림 같은 곳.
저마다의 일상을 나누며 달콤한 케이크 조각을 입에 넣는데, 오늘의 무탈함이 어찌나 감사하던지 눈물이 났다.
각자의 삶으로 돌아가며 따스한 인사를 주고받을 때, 나는 그들과는 다른 행로를 걷고 있는 나의 저녁이 못내 안쓰러웠다.
훗날 그들이 나의 혼란스러운 일상을 알게 된다면 뭐라 할까.
그들을 믿지 못해서가 아니라, 오히려 그들의 평온을 흔들까 두려워 말을 삼켰다.
나는 아직도 온전히 나를 사랑하지 못하고 있는 걸까.
지금, 내가 다른 사람의 시선을 신경 쓸 겨를이 있는가.
‘괜찮다’며 스스로를 달래는 일이 혹시 나를 외면하는 교만은 아닐까.
나로 인해 누군가가 신경 쓰게 될까 걱정하면서도, 사실은 나를 동정하지 않을까 두려운 건 아닌지 돌아본다.
왜 나는 늘 괜찮아야만 하는가.
왜 나는 유머로 나를 숨기며, 진짜 감정은 외면하는가.
이중적인 감정 속에서 나는 강해진 게 아니라, 어쩌면 더 어리석어졌는지도 모른다.
그림자가 아닌, 나의 빛으로
왜 나는 나의 슬픔을 온전히 나누지 못하는가.
무엇이 그리도 두려운가.
나 역시 이제는 어둠 속에서 벗어나야 한다.
누군가의 그림자가 아닌, 나 자신의 빛으로 서고 싶다.
그 빛이 아직 희미하더라도, 나는 알고 있다.
진짜 나로 살기 위한 계절이 오고 있다는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