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누구에게 '측은지심'을 느낀단 말인가? 관계의 선을 명확히 긋는다.
요즘 들어 날씨가 부쩍 쌀쌀해졌다.
주일 예배를 가는 길, 옅은 바람에도 나부끼는 은행잎들이 무수히 떨어지는 장관을 보면서 아이는 내게 물었다.
"엄마, 낙엽이 떨어지니까 이제 겨울인 거야?"
입동(立冬)에 들어섰으니 분명 겨울맞이가 시작된 것은 맞으나 살을 에는 추위는 아직이다.
"아니, 나뭇가지에 잎들이 하나도 없이 다 떨어져야 해. 그래야 비로소 겨울이야."
11월의 때 이른 겨울 타령이냐지만, 거리를 메우는 사람들 옷차림에는 롱패딩에 털코트까지 각양각색의 계절을 동반하고 있다.
우리 집도 별반 다르지 않다.
추위를 많이 타는 아이와 나는 전기요를 틀고 잔 지 10일이 넘어간다.
널찍한 거실과 애벌레
문제는 널찍한 거실에서 매트리스 하나 펴고 차렵이불을 둘둘 말고 자는 남편이었다.
그 모습을 보노라니 어느새 측은지심(惻隱之心)이 일었다.
'당장 칼에 베어도 돌아서면 내 탓이오 하는 거지 근성이 쉽게 사라지지 않지 뭐'라고 자책하면서도, 정말 모질게 굴고 싶지 않은 내적 갈등이 심하게 이는 요즘이었다.
내가 소크라테스의 악처처럼 구는 것은 절대 아니다.
다만, 혼자 식탁에 앉아 밥 먹기가 껄끄러워 일주일에 1~2번 먹는 식사로 겨우 연명하고 있는 처지이지만, 애벌레처럼 굽은 등을 말아 자는 모습은 정말 유쾌하지 않다.
해마다 그랬듯, 각자의 전기요가 있는 것을 알기에 추우면 꺼내 깔면 되는 것을, 그는 시위하듯 이불만을 둘둘 말고 지나갈 때마다 '아이고'를 남발한다.
그 꼴을 보노라면 욕지거리가 일다가도 괜히 측은해지는 건 어쩔 수가 없다.
하루라도 빨리 이 불편한 한 공간에서 벗어나고 싶은데, 아무리 눈을 감고 귀를 막아도 보이고 들리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반쪽 햄버거'가 증명한 관계의 파탄
주말 아침, 뜬금없이 아이가 햄버거를 먹고 싶다고 했다.
평생 햄버거 한 개를 온전히 먹었을까 싶을 정도로 좋아하지 않는 음식인데 갑자기 사달라고 하니 나로선 의아했다.
몇 번을 재차 확인 후 배달 주문하려고 보니 최소 금액 때문에 어쩔 수 없이 2개를 주문했다.
아침을 먹지 않는 나는, 아침부터 식탁에 앉아 냄새를 풍기면서까지 먹어대는 배짱은 없어 방으로 들어오면서 아빠랑 같이 먹으라고 했다.
그런데 웬걸...
잠시 후 아이가 방 문을 열고 들어서며 말했다.
"엄마, 아빠가 이거 엄마 먹으래."
남편은 자신에게 주어진 한 개의 햄버거를 칼로 정확히 반으로 나눠, 아이를 시켜 나에게 전달시켰다.
'진작에 좀 이렇게 하지...'라는 아쉬움이 드는 것은, 그와의 관계에 대한 미련이 아니었다.
이렇게 할 줄도 알면서 그동안 안 했던 최소한의 염치와 배려에 대한 부정적 감정이었다.
내가 사고 내가 베푼 나눔을, 그는 마치 자기의 것인 양 이용하고, 그걸 또 고마워하는 나를 보며 만족했을 것이다.
이 관계는 더 이상 회복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른 것이다.
그렇다.
처음 집으로 돌아온 날, 예전처럼 내가 지나가기라도 하면 자신의 분노를 억제하지 못해 기어이 입 밖으로 혼잣말의 욕으로 뱉던 그가, 재차 경찰에 신고당하면서 말을 삼킬 줄 알게 되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그는 자신의 감정을 충분히 컨트롤할 줄 알면서도 굳이 내겐 그러지 않았던 것이다.
그게 나는 너무나 괘씸하다.
그에게 나는 도대체 어떤 존재였을까?
사람들 앞에서 과시욕으로 데리고 다니던 용품 정도에 지나지 않았을까?
관계의 선을 명확히 못 박는다.
햄버거로 인해 잠시 누그러졌던 괘씸함이 겨우 하루를 보냈을까.
저녁상을 식탁에 차리고 집 근처 사우나에 다녀왔다.
덕지덕지 밥풀이 떨어진 채로, 식탁에는 말라비틀어진 그릇만이 덩그러니 놓여있었다.
그것을 보자니 또 억장이 무너졌지만, 겨우 비집고 들었던 측은함이 '네가 무슨 염치로, 내가 무슨 주제에...'라는 자조로 바뀌었다.
인간은 바뀌지 않는다는 옛말이 그른 게 하나도 없다.
무슨 기대를 했단 말인가?
내 주제에 누굴 동정한단 말인가?
이렇게도 나 자신을 모르니 이 나이에 이러고 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세상천지에 불쌍할라치면 둘째가라면 서러울 판인데, 누가 누구에게 측은지심을 느낀단 말인가?
더 이상 망설임도 미련도 없다.
나는 이 관계에 명확한 선을 못 박겠다.
앞으로 더 추워지는 겨울이 온다.
상황은 더 혹독해지고 여건은 형편없이 나빠질 것이다.
정신 차려라.
이래저래 현실에 안주하지 말고, 앞으로를 대비해라.